오피니언 취재일기

주최 몽골 … 후원 일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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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몽골에서는 건국 800주년 기념행사가 여기저기서 열리고 있다. 13세기 세계를 호령했던 칭기즈칸의 정신을 되살려 나라를 부흥시키자는 의도에서다. 행사는 '몽골 정부 건국 800주년 기념사업 위원회'가 주최하고 있다. 그런데 거의 같은 이름의 위원회가 일본에도 있다.

현지에서 만난 한 관계자는 "몽골 정부의 위원회는 형식적인 주최자이고, 실무 작업은 대부분 일본에 있는 민간위원회가 했다"고 말했다. 일본 민간위원회의 위원장은 관광업체인 HIS의 사장이, 고문은 1989~91년 총리를 지낸 가이후 도시키(海部俊樹)가 맡고 있다.

800주년 기념행사의 핵심은 칭기즈칸 기마부대의 재현인데, 이 아이디어도 몽골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일본의 몽골 전문가인 사카이야 다이치(堺屋太一) 전 경제기획청 장관이 제안했다고 한다. 이를 증명하듯 행사 안내책자에는 사카이야가 기마부대를 사열하는 사진이 자리를 잡고 있다. 안내책자도 일본에서 인쇄한 것이었다.

기마부대의 전투 재현 행사장의 안내방송도 몽골어와 일본어로 나왔다. 글로벌 시대의 세계 공용어인 영어 안내는 나오다 말다 했다. 행사를 참관한 외국인 중 대부분이 일본인이었기 때문이다.

칭기즈칸 부대의 '부활'을 위해 갑옷과 무기를 역사책에 근거해 만들고 몽골 현역 군인 500여 명을 1년간 훈련하는 데 거의 100억원이 들어갔다고 한다. 그런데 이 비용도 일본 자본이 설립한 몽골의 통신회사인 모비콤(Mobicom)과 일본의 다이와(大和)증권이 거의 다 댄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은 몽골이 체제개혁을 시작한 1990년대 초반부터 큰 공을 들여왔다. 몽골에 매장된 금.동.석탄 등 광물자원에 관심이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본 기업들은 몽골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으며 이번 건국 800주년 행사도 앞다퉈 지원했다.

그러나 한국 기업들은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인구가 270만 명에 불과해 시장이 작고, 1인당 국민소득이 600달러밖에 안 돼 물건을 팔아먹기도 힘들다고 판단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미리 투자를 하고 관심을 기울이면 비용이 훨씬 적게 든다는 점은 몰랐을까. 자원을 포함해 아직 발굴하지 않은 몽골의 가치는 결코 작지 않기 때문이다.

강병철 국제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