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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등+9등=4등 ‘카마겟돈’ 뭉쳐야 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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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카를로스 타바레스 CEO(左), 존 엘칸 회장(右)

카를로스 타바레스 CEO(左), 존 엘칸 회장(右)

세계 자동차 업계에 다시 지각변동이 시작됐다.

피아트·크라이슬러 이사회 #푸조·시트로엥과 합병 승인 #미래차 준비 위한 생존전쟁 가속 #프랑스 정부 등 외부 지분 변수

지난 5월 프랑스 르노그룹과 합병을 추진했던 피아트·크라이슬러(FCA)가 다른 프랑스 완성차 업체인 푸조·시트로엥(PSA)과 합병조건에 합의했다.

31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전날 PSA 이사회는 FCA와의 합병조건을 승인했다. 두 회사의 시가총액을 더하면 약 484억 달러(약 56조원)로 최근 자동차 업계 인수·합병(M&A) 가운데 최대 규모다. 성사되면 2009년 피아트그룹이 미국 완성차 3위 업체 크라이슬러를 인수한 이후 10년 만의 대형 M&A다.

합병조건은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으나 월스트리트저널은 존 엘칸 FCA 회장이 이사회 의장을 맡고, 카를로스 타바레스 푸조 최고경영자(CEO)가 합병법인 CEO에 취임하는 데 합의했다고 전했다. 이사회는 타바레스 CEO를 비롯해 PSA에서 6명, FCA에서 5명이 참여할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기준 전 세계 판매량은 FCA가 484만대, PSA가 388만대다. 두 회사의 판매량을 더하면 폴크스바겐그룹(1083만대), 르노·닛산·미쓰비시 연합(1076만대), 도요타(1059만대) 등에 이은 세계 4위 완성차 업체가 된다.

글로벌 완성차 업계 판매순위. 그래픽=심정보 shim.jeongbo@joongang.co.kr

글로벌 완성차 업계 판매순위. 그래픽=심정보 shim.jeongbo@joongang.co.kr

존 엘칸 회장은 피아트 창립자 잔니 아넬리의 외손자다. 지난해 사망한 세르지오 마르치오네 전 회장의 뒤를 이어 FCA그룹 회장에 오른 뒤 대규모 M&A를 추진해 왔다. 이른바 ‘카마겟돈(자동차와 종말을 뜻하는 아마겟돈의 합성어)’ 시대를 맞아 규모를 키우지 않고선 생존이 어렵다고 판단해서다. 막대한 미래차 연구·개발(R&D) 비용을 분담하고 시장 포트폴리오를 넓히는 것도 목적이다.

FCA는 피아트·란치아·알파로메오·마세라티 등을 거느린 이탈리아 최대 완성차 업체다. 엘칸 회장은 FCA 모기업인 엑소르그룹을 통해 슈퍼카 페라리도 소유하고 있다. 하지만 크라이슬러를 인수한 뒤 경영상황이 나빠졌고 세계 시장 점유율은 제자리걸음을 면치 못했다.

전임 마르치오네 회장 때부터 M&A를 추진해 왔고, 한때 현대차그룹의 인수설이 나오기도 했다. 엘칸 회장은 지난 5월 르노그룹과의 합병을 추진했지만 노조의 반대와 프랑스 정부의 미온적 태도로 한 달 만에 제안을 철회했다.

이번 협상의 또 다른 주역인 타바레스 CEO는 르노그룹 최고운영책임자(COO)을 지냈다. 포르투갈 출신인 그는 지난해 불명예 퇴진한 카를로스 곤 전 르노·닛산 얼라이언스 회장의 후계자로 꼽혔지만 사실상 곤 전 회장에 의해 축출됐다. 2013년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서 “회사 밖에서 기회를 찾고 싶다”고 인터뷰했던 것이 화근이었다.

이후 PSA그룹으로 옮긴 타바레스 CEO는 재기에 성공했다. 자신을 견제했던 곤 회장이 비리 혐의로 일본 검찰에 구속되는 등 추락한 것과 대비된다. 프랑스 언론은 “FCA와의 합병에 성공하면 타바레스 CEO가 프랑스 완성차의 새로운 얼굴로 떠오를 것”이라고 보도했다.

세계 자동차 업계는 미래 차 변혁을 맞아 ‘적자생존’의 싸움을 벌이는 중이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수석부회장도 최근 타운홀 미팅에서 “자동차 시장은 공급 과잉 상태이고 미래 자동차 업계에서 사라지는 회사가 많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합병이 성공적으로 끝날지는 알 수 없다.  PSA는 2014년 경영 위기 당시 프랑스 정부와 중국 둥펑기차(東風汽車)로부터 각각 13%씩의 지분을 투자받았다. 창업자 가문의 지분은 14%에 불과해 향후 협상에서 투자자의 이해관계가 변수가 될 가능성이 크다.

이동현 기자 offram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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