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女 23만 동원 가능"···조선총독부는 악랄하게 쥐어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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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일 부산 연제구 국가기록원역사기록관에서 노영종 국가기록원 학예연구관이 1940년 조선총독부가 생산한 ‘노무자원 조사에 관한 건’이란 기록물 원본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박해리 기자

31일 부산 연제구 국가기록원역사기록관에서 노영종 국가기록원 학예연구관이 1940년 조선총독부가 생산한 ‘노무자원 조사에 관한 건’이란 기록물 원본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박해리 기자

경기도 12~19세 여성 중 동원 가능 인력 6017명, 강원도 4760명, 충북 3만9967명….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가 강제동원을 위해 전국의 노동인력을 조사했다는 문건이 공개됐다. 일본은 면(面)마다 5명의 조사원을 동원해 조사했다.

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은 31일 부산 연제구에 위치한 국가기록원 역사기록관에서 1940년 조선총독부가 생산한 ‘노무자원 조사에 관한 건’이란 기록물 원본을 공개했다. 고(故) 김광렬 씨가 기증한 조선인 강제동원 관련 문서와 사진, 도면 등 2337권 중 일부도 공개했다.

여성은 12~19세 대상 조사...“군 위안부 연관 가능성” 

1940년 조선총독부가 생산한 ‘노무자원 조사에 관한 건’이란 기록물 원본. 당시 조선총독부는 남성은 20~45세, 여성은 12~19세 대상으로 노동력을 조사했다. 박해리 기자

1940년 조선총독부가 생산한 ‘노무자원 조사에 관한 건’이란 기록물 원본. 당시 조선총독부는 남성은 20~45세, 여성은 12~19세 대상으로 노동력을 조사했다. 박해리 기자

‘노무자원 조사에 관한 건’에는 1940년 3월부터 9월까지 전국 각 도가 조선총독부에 보낸 공문과 통계 자료가 담겨있다. 조선총독부는 당시 도지사에게 지역의 남녀별·연령별 노동력 현황을 조사하도록 지시했다.

조사는 부나 읍을 제외한 면에만 실시했다. 당시 행정구역은 규모 순으로 도·부·군·읍·면·리 등으로 나뉜다. 농업지역을 대상으로 하기 위해 규모가 작은 면 단위로 조사했다. 지역의 실정에 맞게 '이상 경지면적'을 설정한 후 그 면적 미만의 토지를 가진 사람을 과잉인력으로 봤다. 이렇게 산출된 과잉인력과 출가·전업이 가능한 인력, 희망인력 등을 조사했다. 동원 가능인력은 남자 92만7536명, 여자 23만2641명 등 총 116만177명이다. 당시 조선인 총인구는 2354만명이었다.

남성은 20~45세, 여성은 12~19세를 조사했다. 노영종 국가기록원 학예연구관은 “확정된 사실은 아니지만, 남성과 달리 여성은 12~19세를 한정해 조사한 것은 군 위안부와 관련된 게 아닐까 조심스럽게 추측된다”고 말했다.

문서에 따르면 자발적으로 전업을 희망 인력은 남자 24만2314명, 여자 2만767명이다. 일제 노무동원계획에 포함된 조선인 동원수는 1940년 8만명, 1941년 13만명, 1942년 12만5000명, 1944년 29만명으로 희망인력보다 훨씬 더 많은 수가 동원됐음을 알 수 있다. 노 연구관은 “일본은 징용으로만 강제동원을 한다고 주장하지만 이미 징용 이전 모집방식과 관 주도 방식으로도 강제동원이 일어나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설명했다.

“탄광서 절반 도주...희망 아닌 강제동원 증거”

‘가이지마 오노우라 제6ㆍ7갱 탄광직원 명부’ 원본이 공개됐다. 이 명부는 40여년 동안 조선인 강제동원 관련 기록물을 수집한 재일교포 故 김광렬(1927~2015)씨의 기증품이다. 박해리 기자

‘가이지마 오노우라 제6ㆍ7갱 탄광직원 명부’ 원본이 공개됐다. 이 명부는 40여년 동안 조선인 강제동원 관련 기록물을 수집한 재일교포 故 김광렬(1927~2015)씨의 기증품이다. 박해리 기자

40여년 동안 조선인 강제동원 관련 기록물을 수집한 재일교포 고(故) 김광렬(1927~2015)씨의 기증품인 ‘가이지마 오노우라 제6·7갱 탄광직원 명부’에서도 일제가 강제동원을 했다는 증거가 나온다.

이 명부는 1900~1950년대 탄광직원의 인적사항 등을 기록한 것으로 총 8486명 중 1896명이 조선인(본적 기준)으로 추정된다. 이들의 이름·생년월일·본적·가족관계·고용시기· 해고사유·해고 시기가 기록돼 있다. 상세한 정보가 담겨 있어 기존 공개된 명부에는 없는 피해자가 추가 확인될 가능성도 있다.

가이지마 탄광은 아소 탄광 다음으로 조선인이 가장 많이 동원된 곳이다. 그동안 관련 자료가 부족했다. 허광무 일제 강제동원 평화연구회 연구위원은 “동원된 조선인 중 절반은 도주·탈주했다는 것을 기록을 통해 알 수 있다”며 “탄광에서 일한 조선인들이 계약으로 인한 자유 의지가 아닌 자신의 의지에 반해서 끌려온 것이 확인된다”고 말했다.

탄광에는 나이가 어린 여성이 일한 기록도 있다. 김영지 국가기록원 연구원은 “1945년에 15세 여성이 고용된 것으로 나타난다. 맡은 직책은 배급부로 채굴이 아닌 잡무를 봤다”며 “남성뿐 아니라 여성들도 탄광에 동원된 것으로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이소연 국가기록원장은 “이번 자료들은 지난해 기증 당시 일부가 공개됐으나 대부분은 관련 전문가들조차도 실체 확인이 쉽지 않았던 희귀 기록물이다”며 “피해 진상규명과 권리구제, 연구 등에 쓰일 수 있는 귀중한 사료”라고 설명했다.

부산=박해리 기자 park.hae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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