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지금이 한국 경제 바로 세울 마지막 기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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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권태신 전국경제인연합회 상근부회장

권태신 전국경제인연합회 상근부회장

“연말에 한국 경제에 퍼펙트 스톰(Perfect Storm)이 올 수 있습니다.”

조국 사태를 생각한다 #사면초가 한국 경제에 위기 신호 #편가르기 이념 자판기 걷어치워야

얼마 전에 전경련 ‘한·미 재계 회의’ 개최를 위해 방문했던 미국에서 만난 고위 인사의 말이다. 요지인즉 지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탄핵 위기가 생각보다 심각한데 럭비공 같은 그의 스타일상 앞으로 북핵과 관련해 어떤 행보를 보일지 모르는 상황이라고 했다.

그는 이에 더해 한국이 미국과 통상 갈등, 방위비 분담금 협상 문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 파기에 따른 한·미·일 안보 균열 등의 악재가 겹쳤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지금 한국 경제의 체력이 예전 같지 않기 때문에 생각보다 큰 피해를 볼 수 있다고 경고했다. 밖에서도 한국 경제를 이렇게 불안하게 보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그의 말대로 한국 경제는 사면초가의 위기다. 대외적으로 교역 규모 1위인 중국과는 ‘사드 사태’에 따른 갈등 이후 냉랭한 관계를 이어가고 있다. 2위인 미국과는 관세와 방위비 분담금 문제 등으로 경제·외교적 난제가 얽혀있다. 3위인 일본과는 정치·경제·안보 등 최악의 전방위적 갈등을 겪고 있다.

이뿐 아니다. 미·중 무역분쟁, 브렉시트, 중국의 성장률 저하 등 수출로 먹고사는 한국경제에 악재가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지금도 수출이 10개월 연속 마이너스인데 어디까지 곤두박질쳐야 하는지 까마득하다.

대내 환경은 더 나쁘다. 단적으로 기업인들이 한국에 투자하려 하지 않는다. 기업인들은 지금 “내가 한국에서 기업을 경영하는 것을 보니 전생에 큰 죄를 지었나 보다”라거나 “한국 탈출은 지능 순”이라는 자조 섞인 푸념을 늘어놓는다. 기업을 파는 방법, 해외 투자 정보 등을 공유하고 있다.

실제 지난해 한국 기업들의 해외 투자 금액은 498억 달러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반면 외국인들의 한국 투자는 3분의 1에 불과한 172억 달러 정도였다. 중소기업도 해외 투자 대열에 합류한 지 오래다. 지난해 중소기업의 해외 투자는 무려 100억 달러로 역대 최대였다. 기업들 사이에 ‘탈한국’은 유행어가 아니라 현실이다.

이러니 한국 경제가 좋을 수가 있겠나. 최근 IMF는 한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을 2.6%에서 2.0%로 낮췄다. 1%대를 전망하는 기관도 많다. 민생 경제의 바로미터인 자영업자 폐업률은 90%에 달한다. 우량기업이라는 10대 그룹의 상반기 영업이익도 반 토막 났다.

청년 실업은 재난 수준이다. 청년 4명 중 1명이 실업자다. 양극화도 심해졌다. 대표적인 분배 지표(5분위 배율)는 올 2분기 역대 최악을 기록했다. 소비자물가 지수도 두 달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하며 디플레이션 우려마저 커지고 있다. 이대로 가다간 한국 경제가 모래성처럼 무너질까 걱정이다.

사방에 위기의 사이렌이 요란하게 울렸건만, 안타깝게도 지난 2개월여간 ‘조국 사태’에 묻혀 위기 신호를 제대로 주목하지 못했다. 선진국들은 1분 1초를 아끼며 달리고 있는데, 우리는 방치된 응급환자처럼 누워서 허송세월하고 있다. 조국 전 장관의 사퇴로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으니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다.

중요한 건 앞으로다. 누군가를 탓할 생각도, 의미도, 필요도 없다. 오직 경제에 올인해야 한다. 경제는 도미노와 같아서 세우기는 어려워도 무너지는 건 순식간이다. 편 가르고 기계적 갈등만 유발하는 좌우 이념 자판기는 당장 철거하자.

사방에서 우리를 흔들고 있는데 자신도 중심을 잡지 못한다면 어떻게 이 위기를 극복하겠나. 수많은 경고음에 귀를 기울이고, 모두가 머리를 맞대야 한다. 정답도 나와 있다. 규제 개혁, 노동시장 개혁으로 기업을 경영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면 된다. 지금이 마지막 기회다.

권태신 전국경제인연합회 상근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