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리 정책」깬 팽창 살림|국회로 넘어갈 내년예산안 문제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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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예산편성과정부터 팽창여부를 둘러싸고 논란이 많던 정부의 내년 예산안이 최종 확정돼 국회의 심의에 넘겨지게 되었다.
총 규모 23조2백54억 원의 내년 예산규모는 83년 이후 근래에 가장 높은 19·7%의 증가율을 기록했다는 점에서 일단 팽창예산이라는 딱지가 붙을 만하다.
사실 예산편성초기부터 정부는 내년 예산은 한자리숫자정책과 무관하며 재정기능의 정상화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 재정규모의 확대를 줄곧 시사해 왔다.
정치·사회의 민주화와 함께 경제부문에서도 그 동안 성장일변도의 정책수행과정에서 소외된 계층의 욕구가 크게 분출, 이를 수렴하려면 재정의 역할강화는 불가피하다는 것이었다.
또 한자리숫자정책만 해도 그 대상은 근로자·농민 등「없는 자」로 그들의 자제를 요구하려면 정부가 복지재정의 기능을 확대해야 정책자체가 설득력을 얻게 된다는 생각이다.
이와 더불어 대외개방과 국제화에 따른 국내산업전반의 시급한 구조조정지원과 도로·항만 등 그 동안 미흡했던 사회간접시설의 확충 등을 이제부터라도 충족하려면 예산의 증액을 감내 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었다.
실제 내년 예산을 부문별로 보면 농어촌·저소득층 지원 등 낙후부문투자를 강화해 본격적인 복지재정의 틀을 갖춘 것이 큰 특징이다.
물론 국민의 입장에선 복지증진은 바람직스러운 일이며 각종 투자사업을 증가시킨 결과 내년예산은 재정의 경기진작효과도 높아진 게 사실이다.
또한 이제까지 해마다 본예산은 긴축편성을 했지만 추경을 되풀이해 결국은 팽창예산을 초래해 온 점을 감안하면 처음부터 본예산을 규모 있게 짜겠다는 방침은 예산편성의 정상궤도로의 회복으로 평가될 만한 일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이같은 재정기능의 확대가 필연적으로 가져오는 것은 국민부담의 가중이다.
정부는 올해에도 2조3천여 억 원의 세계잉여금이 전망되는 점을 감안, 내년예산은 가급적 세계잉여금 없는 세수전망 하에 짠것으로 조세부담률은 올해의 18·2% (추정)에서 오히려 17·6%로 낮아져 국민들의 부담증가는 별반 없으리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내년도도 내국세 증가율은 23·9%로 높게 잡혀 있고 더군다나 우리의 징세 행정의 관행상 경기침체에도 불구하고 추가세수를 낼 것이 분명해 세금부담은 늘면 늘었지 가벼워질 전망이 아니다.
또 하나 팽창예산이 불러올 우려는 인플레와 안정기조의 저해다.
지난 2∼3년간의 재정운용을 보면 보수적 세수전망으로 큰 폭의 세계잉여금을 냄으로써 재정의 통화환수기능이 컸고 이점이 국제수지흑자시대의 물가안정에 적잖은 역할을 해 왔었다. 그러나 내년에는 세출자체가 세계잉여금을 내지 않는 방향으로 짜진 만큼 통화관리의 상당한 애로가 벌써부터 예상되고 있다.
더군다나 3년 연속의 높은 임금인상 등으로 물가상승압력은 여전한데다 재정마저 푸는 쪽으로 작용할 경우 안정기조가 밑바닥부터 흔들릴 우려가 크다.
예산과 임금안정은 별개 라지만 정부가 20% 가까운 예산증액으로 한자리숫자정책 자체가 추진의지를 훼손 받게 된 점도 부인하기 힘들다.
물론 선진국을 지향하는 현 경제상황에서 재정운용도 장기적으로 보면「고 복지 고 부담」으로 갈 수밖에 없고 국민들도 이점에서 어느 정도의 부담증가는 각오를 해야 할 필요성은 있다.
그러나 이러한 재정규모의 확대가 국민들에게 설득력을 가지려면 정부 스스로 재정의 비효율을 철저히 제거하는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
그러나 내년예산은 경직성 경비비중은 전체예산의 66·9%에 달하는 데다 6공의 공약사업이행등 정치적 부담이 예산편성자체를 팽창으로 이끈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이는 당정협의과정에서 주로 우선 순위에서 밀렸던 공약사업이 살아나 2천3백억 원이 추가된 데서도 단적으로 입증되고 있다. 정부와 여당이 상호견제를 통해 털어 낼 것은 터는 노력보다 추가요구를 반영하는데 급했던 결과다.
예산편성에 비효율이 크면 그 부담은 국민전체에 귀결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이번 국회심의과정이 어느 때보다 주목되고 있다. <장성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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