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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바루기] 가을 하늘은 파랗습니까?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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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가을 하늘은 “물감이라도 풀어 놓은 듯 파랗습니다” “구름 한 점 없이 파랍니다”와 같은 말로 종종 묘사된다. 가을 하늘이 유독 파래 보이는 이유가 있다. 날씨가 건조해지면서 햇빛을 산란시키는 과정에서 하늘을 뿌예 보이게 했던 수증기량이 줄어들어서다.

밝고 선명한 하늘을 ‘파랗습니다’ ‘파랍니다’로 달리 표현할 때가 많다. 모두 써도 되는 말일까? ‘파랍니다’로는 활용되지 않는다. ‘-ㅂ니다’는 받침이 없는 용언의 어간과 ㄹ받침인 용언의 어간에 붙는 어미다. ‘갑니다(←가다)’ ‘웁니다(←울다)’처럼 사용한다. ㄹ을 제외한 받침 있는 용언의 어간엔 ‘-습니다’를 붙인다. ‘파랗습니다’가 올바른 활용형이다. “구름 한 점 없이 파랗습니다”로 고쳐야 한다. ‘그럽니다’ ‘동그랍니다’도 ‘그렇습니다’ ‘동그랗습니다’로 활용하는 게 바르다.

이런 혼란이 생긴 건 1994년 12월 맞춤법 ㅎ불규칙용언의 용례를 손보기까지 ‘파랍니다’ ‘그럽니다’ ‘동그랍니다’로 써 왔기 때문이다. ㅎ이 탈락하고 ‘-ㅂ니다’로 활용하던 예를 삭제한 이후 어간 ‘파랗-’에 ‘-습니다’가 붙은 꼴을 표준어로 인정하게 됐다.

용례를 손본 이유는 개정된 표준어 규정 17항과 충돌하는 면 때문이었다. 예전에는 모음과 ㄹ받침인 용언의 어간엔 ‘-ㅂ니다’를, 그 외 받침이 있는 어간엔 ‘-읍니다/-습니다’ 두 형태를 사용했다. 받침에 ㅅ이 있는 ‘했다’는 ‘했읍니다’와 같이 ‘-읍니다’를 붙였다. 그러다 ‘-읍니다’를 버리고 입말에서 널리 쓰이는 ‘-습니다’로 통일하기로 규정을 바꿨다. 이 규정이 ㅎ불규칙용언의 용례 손질에 영향을 미치게 됐다.

이은희 기자 lee.eunhee@jt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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