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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짓값 받아도 3년 못 버티면 파산” …시름 깊은 돼지열병 살처분 농가

중앙일보

입력

아프리카돼지열병 확진 판정을 받은 인천시 강화군 강화읍 한 양돈농장에서 굴착기가 살처분 작업을 위해 땅을 파고 있다. [연합뉴스]

아프리카돼지열병 확진 판정을 받은 인천시 강화군 강화읍 한 양돈농장에서 굴착기가 살처분 작업을 위해 땅을 파고 있다. [연합뉴스]

“지금 정부가 주는 보상금은 돼지 값이지 2~3년 영업 못 하는 데 대한 진정한 보상금이 아닙니다. 그런데 그 돼지 값 책정 기준마저 형평성에 어긋나니 힘없는 농가들은 답답하기만 합니다.”

인천시 강화군에서 30년 넘게 돼지를 키워온 이상호(51)씨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강화군은 일부 지역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ASF) 양성 반응이 나온 이후 확산을 막기 위해 관내에서 사육하는 돼지 약 4만3000두를 모두 살처분했다. 이씨 역시 지난달 30일, 10월 1일 이틀에 걸쳐 기르던 돼지 6000두를 살처분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이에 대한 보상금을 살처분한 당일 전국 평균 돼지 시가로 100% 지급하고 보상금 평가가 완료되기 전이라도 일부를 우선 지급한다는 보상안을 발표했다. 하지만 돼지 농가들은 ASF 발생 이후 돼지 시가가 급락하고 있다며 개선안을 요구했다.

경기도 김포시 양촌읍 가현리의 한 돼지농가에서 방역당국 관계자들이 살처분을 진행하고 있다. [뉴스1]

경기도 김포시 양촌읍 가현리의 한 돼지농가에서 방역당국 관계자들이 살처분을 진행하고 있다. [뉴스1]

이씨는 “ASF를 확진한 농가는 바로 살처분해 시가 하락 영향을 덜 받지만 예방을 위해 발병하지도 않은 돼지를 늦게 살처분한 농가들은 손해를 보게 된다”고 지적했다. 대한한돈협회 시세에 따르면 ASF가 국내 처음 발생한 지난달 17일 돼지 탕박(머리·내장을 제외한 고기) 가격은 ㎏당 5838원이지만 강화 지역 살처분이 끝난 무렵인 지난 4일 가격은 3509원으로 40% 정도 하락했다.

ASF가 발생한 경기 김포·파주·연천 역시 사정이 비슷하다. 대한한돈협회에 따르면 파주·연천 지역 돼지 농가에서는 첫 발생일의 전월 평균, 즉 지난 8월의 평균 돼지 시가를 기준으로 해달라고 요구했다. 또 다른 가축 질병인 구제역은 이 기준을 따른다.

농식품부 “보상 평가 기준 바꾸기로” 

살처분 가축 보상금을 두고 농가와 갈등을 빚자 농림축산식품부는 ‘살처분 가축 등에 대한 보상금 등 지급요령’ 고시 개정 절차에 들어갔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질병 발생 이후 가격이 폭락한 문제를 보완하기 위해 의견 수렴 중”이라며 “개정 이후 보상금 평가 결과가 개정 전 책정한 것보다 적게 나오면 보상금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게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첫 발생일 전월 평균 돼지 시가와 살처분 당일 평균 돼지 시가 중 더 유리한 기준을 선택할 수 있게 하겠다는 얘기다. 이 관계자는 “최종 보상금을 지급하기까지 한 달 정도(살처분한 날 기준) 걸릴 예정”이라며 “보상금 평가가 이뤄지기 전이라도 지역별로 보상금 일부가 지급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아프리카돼지열병 관련 이미지. [연합뉴스TV]

아프리카돼지열병 관련 이미지. [연합뉴스TV]

최종 지급까지 한 달 정도 예상

하지만 돼지 농가의 걱정은 여전하다. 이씨는 “돼지를 들여 키워서 고기로 팔 때까지 최소 1년 6개월 정도 걸리는 데다, 재입식(다시 돼지를 들이는 것) 허가가 나기까지 빨라야 6개월이고 현재로썬 허가가 언제 날지 몰라 길게는 3년 정도 영업을 못 할 수 있다”고 걱정했다. 또 다른 축산 관계자 역시 “살처분 보상금은 돼지를 다시 들일 때 고스란히 다 써야 하며 다시 수익이 날 때까지 은행 이자를 감당하지 못하면 파산하는 것”이라면서 “입식 지연 보상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이에 관해 “ASF 바이러스가 오래 생존하기 때문에 전문가들이 지역별로 위험도 평가를 하고 있다”며 “평가 결과에 따라 입식 지연 보상 부분도 검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최은경 기자 choi.eunk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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