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진보진영, 北을 바로보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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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송두율 사건'이 우리 사회를 뒤흔들고 있다. 시민들은 경악과 환멸을 감추지 않고 있다. 호기를 잡았다고 판단한 보수세력은 대대적인 이념 공세를 펼 태세다. 그동안 宋교수 건에 대해 동정적이고 우호적 태도를 취해온 진보 진영조차 황당함과 놀라움 속에 말을 아끼고 있는 형편이다.

宋교수의 학문적 이력에 대해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여온 필자도 참담함을 금할 수 없었다. 한 영민한 학자의 '경계인적' 자의식을 파탄에 이르게 할 만큼 분단의 현실이 엄혹하다는 교훈이 다시 한번 입증되었기 때문이다.

분단체제 아래서 역사의 무게는 그만큼 심중한 것이다. 매서운 역사의 추궁 앞에 서게 된 송두율씨는 자신이 선택한 길에 대해 지식인으로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구차하게 들리는 변명을 그만두고, 모든 것을 진솔하게 석명해야 마땅하다. 그것만이 '민주인사'로서의 그를 믿고 성원해준 이들을 실망시키고 한국 민주화 운동의 대의에 큰 타격을 준 자신의 행적을 사과하는 최소한의 개인적 도리일 것이다.

또한 宋교수 사건은 우리 사회의 지식인 문화에 대한 총체적 성찰을 불가피하게 한다. 해방 이후 분단체제에 기생해 자신의 기득권 수호에 여념이 없었던 한국 보수는, 제대로 된 보수주의에 수반되는 건강성과 책임을 방기했으며 자유민주주의를 왜곡시키는 데 앞장서 왔다. 그 결과 보수가 도매금으로 수구와 동일시되었으며, 우익도 극우와 어깨동무하게 된 것이다.

군사독재와 싸우면서 민주화를 이끈 진보세력이 볼 때 보수는 극복되어야 할 역사의 잔재에 불과했다. 한국 보수가 자신의 기득권을 영속화하는 방안으로 북한을 악의 집단으로 채색하는 만큼 진보세력이 북한의 실상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도 따라서 이해할 만한 일이었다.

그러나 매사에 중요한 것은 균형감각이다. 일부 진보 인사들은 한국 보수를 너무나 미워한 나머지 그런 균형감각을 상실했으며, 송두율 사건은 그 한 비극적 결말인 것이다. 남한의 군사독재도 혐오스러운 것이었으나 북한의 봉건적 전체주의는 그것과 비교가 불가능할 만큼 끔찍하다는 명명백백한 사실을 외면하고 만 것이다.

그간 진보는 민주화를 견인하면서 냉전 반공주의의 색맹을 깨뜨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단계에 진입한 지금 상황에서도 진보의 의미는 결코 소진되지 않았다. 바꿔 말하면 진보 지식인들은 평면적인 반독재 노선을 넘어선 입체적 진보논리와 운동노선을 건설할 막중한 임무를 지고 있는 것이다.

진보 진영이 그런 임무를 달성하는 데 있어 최대 장애 가운데 하나가 바로 북한에 대한 사실 판단과 균형잡힌 시각의 문제다. 바꿔 말하면, 공존과 상생의 상대이면서도 동시에 대량 탈북과 인권탄압, 그리고 최악의 아사 사태로 압축되는 주체사회주의의 암울한 현실에 대한 태도를 이제 분명히 할 때가 됐다는 것이다.

남북교류 시대에 정부나 관료들은 순탄한 남북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일정한 정책적 고려를 아니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지식인의 경우는 다르다. 지식인의 임무는 현실을 투명하게 보고, 사실에 입각한 비판과 진단을 내놓는 데 있기 때문이다.

그 사실과 현실이 아무리 고통스럽고, 자신의 이념적 믿음에 위협이 된다 해도 그렇다. 사실의 힘은 그만큼 위대한 것이다. 이론과 신념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는 진보 지식인들은 이 평이한 교훈을 종종 망각한다.

모든 종류의 억압과 착취, 배제와 차별에 대항해 싸운다는 진보가 주체사상이라는 시대착오적 사실과 북한 사회주의의 처참한 현실을 외면한다면 이는 자기모순적 사태가 아닐 수 없다. 진보의 재생을 위해서도 주체사회주의에 대한 공론 영역에서의 엄정한 비판과 토론이 필수적이다.

여러 현란한 변설을 늘어놓으면서 북한 문제를 피해가는 관행은 더 이상 진보의 덕목이 될 수 없다. 바꿔 말하면 북한에 대한 솔직한 '커밍아웃' 여부는 조만간 한국 진보 지식인들의 진정성을 시험하는 결정적 잣대가 될 것이다.

윤평중 한신대 교수.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