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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세 이건희' 거론하며···이재용 향한 재판부의 이례적 질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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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전 대통령과 '비선실세' 최순실 씨 측에 뇌물을 준 혐의 등으로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5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파기환송심 첫 공판에 출석하며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근혜 전 대통령과 '비선실세' 최순실 씨 측에 뇌물을 준 혐의 등으로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5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파기환송심 첫 공판에 출석하며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2019년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과) 똑같이 만 51세가 된 삼성그룹 총수 (이재용 부회장)의 선언은 무엇이고 무엇이어야 할까.”

정 부장판사 “삼성그룹이 몇 가지를 해결하지 않는다면 이 사건과 같은 범죄를 다시는 저지르지 않을 것이라고 누구도 장담 못 할 것”

627일 만에 법정에 선 이재용(51)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서울고법 형사1부 재판장인 정준영 부장판사가 물었다. 부친인 이건희(77) 삼성그룹 회장 얘기에 이 부회장은 진지한 표정으로 재판부를 응시했다.

“이재용 피고인에게 당부드린다”는 말에 꾸벅 인사한 이 부회장

서울고법 형사1부(부장판사 정준영)는 25일 오전 뇌물 공여·횡령 등의 혐의로 기소된 이 부회장의 국정농단 파기환송심 첫 재판을 열었다. 이 부회장의 첫 재판은 재판장이 이례적으로 피고인에게 당부하는 말을 덧붙이기 전까지는 여느 재판과 다르지 않았다.

재판 말미 정 부장판사는 “공판을 마치기 전에 몇 가지 사항을 덧붙이고자 한다”며 운을 뗐다. 그는 “삼성그룹이 몇 가지를 해결하지 않는다면 이 사건과 같은 범죄를 다시는 저지르지 않을 것이라고 누구도 장담 못 할 것”이라며 이 부회장의 부친인 이건희 회장의 사례를 언급했다.

굳은 표정으로 재판부를 응시하던 이 부회장은 정 부장판사가 “마지막으로 이재용 피고인에게 당부드린다”고 하자 재판장을 향해 고개를 꾸벅 숙였다.

'국정농단' 사태에 연루돼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5일 오전 서울 서초구 고등법원에서 뇌물공여 등 파기환송심 첫 공판을 마친 후 차에 타고 있다. 이 부회장이 피고인 신분으로 재판정에 나온 것은 지난해 2월 징역형의 집행유예 판결을 받은 이후 627일 만이다. [뉴스1]

'국정농단' 사태에 연루돼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5일 오전 서울 서초구 고등법원에서 뇌물공여 등 파기환송심 첫 공판을 마친 후 차에 타고 있다. 이 부회장이 피고인 신분으로 재판정에 나온 것은 지난해 2월 징역형의 집행유예 판결을 받은 이후 627일 만이다. [뉴스1]

정 부장판사는 “1993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당시 만 51세의 이건희 삼성그룹 총수는 낡고 썩은 관행을 모두 버리고 사업의 질을 높이자는 이른바 ‘삼성 신경영’을 선언하고 위기를 과감한 혁신으로 극복했다”며 “2019년 똑같이 만 51세가 된 이재용 삼성그룹 총수의 선언은 무엇이고 또 무엇이야 하는지”를 이 부회장에게 물었다.

그러면서 “어떠한 재판 결과에도 책임을 통감하고 겸허히 받아들이겠다는 자세로 심리에 임해달라”며 “심리 중에도 당당히 기업 총수로 해야 할 일과 할 수 있는 일을 해주시기 바란다”고 덧붙였다.

“실효적 준법감시제도 마련 및 재벌 체제 폐해 시정” 주문

정 부장판사는 이 회장에 대한 당부의 말과 함께 삼성그룹 내부에 실효적 준법감시제도를 마련하고 재벌 체제의 폐해를 시정해 달라고도 주문했다.

그는 “이 사건은 삼성그룹 총수와 최고위직 임원들이 계획하고 가담한 횡령 및 뇌물범죄”라며 “삼성그룹 내부에서 기업 총수도 무서워할 정도의 실효적인 준법감시제도가 작동되고 있었다면 법정에 앉아있는 피고인들뿐 아니라 이 사건에서 박근혜(67) 전 대통령,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63)씨도 범죄를 생각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정 부장판사는 “이 사건은 대기업집단 재벌 총수의 지배력 강화를 위해 저지른 범죄라는 점”을 강조하며 “혁신기업의 메카로 탈바꿈하는 이스라엘의 최근 경험을 참고해달라”고 말했다. 재벌경영 체제의 폐해를 바로 잡고, 혁신기업으로 변화하라고 촉구한 것이다.

“앞으로의 재판은 양형 문제에 집중”

재판부는 유무죄 관련 공판기일과 양형 관련 공판기일을 나눠 진행하기로 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에 대해서 거의 모든 쟁점의 유·무죄 판단이 내려진 상태”라며 양형을 집중해서 보겠다는 뜻을 보였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지난 8월 삼성이 최씨에게 제공한 말 3마리와 동계스포츠영재센터 지원금 등을 뇌물이라고 판단해 2심의 판결을 뒤집었다. 이에 이 부회장의 뇌물 및 횡령 혐의액이 86억원으로 늘었다. 법원 양형 규정상 횡령 액수가 50억 원을 넘으면 무기징역 또는 5년 이상의 징역형이 내려진다. 이 부회장에게 2심에서 선고된 징역 2년 6개월, 집행유예 4년보다 더 높은 형량이 선고될 수도 있다.

하지만 재판부가 최대 절반까지 재량으로 형을 조정할 수 있는 만큼 양형을 두고 치열한 공방이 예상된다.

백희연 기자 baek.heeyo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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