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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취향 다른 부부의 바람직한 영화 관람법은?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박혜은의 님과 남 (60)

아버지는 손에 익어 편하고 전혀 불편하지 않다고 오랫동안 낡은 지갑을 고집하셨습니다. 답답한 마음에 바꾸자고 이야기를 던져보아도 아버지는 끄떡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사진 pixabay]

아버지는 손에 익어 편하고 전혀 불편하지 않다고 오랫동안 낡은 지갑을 고집하셨습니다. 답답한 마음에 바꾸자고 이야기를 던져보아도 아버지는 끄떡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사진 pixabay]

주말 친정에 들렸다가 탁자 위에 올려둔 친정아버지의 낡은 지갑을 보게 되었습니다. 긴 시간 지녀온 지갑을 편하게 여기는 걸 잘 알고 있었지만 못 본 사이 아버지의 지갑은 훨씬 더 낡아 있었습니다. 솔직히 제 눈엔 당장 쓰레기통에서 발견된다고 해도 어색함이 없을 정도의 낡음이었죠. 그간 선물 받았던 지갑도 여러 개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아버지는 길이 들어 편하고, 쓰는 데 전혀 불편함이 없다는 이유로 지갑을 새것으로 바꾸길 거부하셨습니다.

아버지가 결혼할 즈음 저의 외할머니, 아버지의 장모님께 받았던 선물로 알고는 있지만, 의미를 담아 쓰기에도 시간이 오래 지나 보이는 건 사실입니다. 집에서 이런 것도 신경 안 써주는 줄 알고 밖에서 괜히 엄마를 탓한다는 말을 던져봤지만, 전혀 아랑곳없으셨죠. 아버지의 왠지 쓸데없는 고집 같아 보이기도 하여 한 켠으로는 답답하기도 합니다.

생각해보면 아버지는 평생 남의 시선은 크게 중요하지 않은 분이셨습니다. 옷 한번 사는데도 늘 어머니와 실랑이를 벌이기 일쑤죠. 지금 있는 것들도 충분하다는 것이 항상 이유였습니다. 아버지의 취향이라고 하기엔 정도가 조금 지나쳐 보이기도 합니다. 내 남편이 아버지 같다면 답답하겠다 종종 생각하기도 하죠.

취향이란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방향, 또는 그런 경향을 말합니다. 많은 사람이 취향이 비슷한 사람에게서 편안함을 느끼게 되죠. 하지만 취향이 같다고 사랑을 느끼고 결혼하게 되는 것은 또 아닌 것도 같습니다. 서로 다른 취향은 종종 결혼 후 걸림돌이 되기도 합니다. 서로 다른 취향 정도는 충분히 맞출 수 있다고 생각해 결혼을 결심하지만, 결혼 후 자꾸 부딪히다 보면 그 생각의 방향이 달라지기도 하죠.

작년 말 한 시장조사 전문기관에서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취향’에 관한 인식 조사를 한 바 있습니다. 조사 결과 대개의 사람은 누군가로부터 취향을 인정받기보다는 공감을 얻고 싶어하는 마음이 강한 것으로 조사되었습니다.

사회 전반적으로 예년보다 개인의 취향을 존중하는 분위기가 강해진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자신의 취향만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는 지적도 많았습니다. 10명 중 7명인 70.4%가 우리 사회에는 타인이 내 취향에 맞춰주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고 바라보았는데 남성보다는 여성이, 아주 큰 차이는 아니었지만 젊은 세대에서 이러한 생각을 더 많이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평소 사람들이 취향을 이야기할 때는 기호식품이나 콘텐츠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뤘습니다. 요즘은 전반적으로 전보다 개인의 취향을 존중하는 분위기가 강해진 것 같습니다. [중앙포토]

평소 사람들이 취향을 이야기할 때는 기호식품이나 콘텐츠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뤘습니다. 요즘은 전반적으로 전보다 개인의 취향을 존중하는 분위기가 강해진 것 같습니다. [중앙포토]

평상시 사람들이 자신의 취향을 잘 드러내는 관심사나 분야는 커피와 술 등의 기호식품이었습니다. 식품이나 문화콘텐츠에 대해서는 취향을 밝히는 데 주저함이 없었죠. 그러나 인간관계에 대해서는 본인의 호불호를 잘 드러내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사회생활에서도 서로의 취향을 이해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날마다 맞대어 사는 부부 사이에 있어 취향 존중은 무엇보다 필요합니다. 많은 사람이 인식 조사에서도 말했듯 인정하지는 않아도 상대의 취향을 공감하는 것은 중요하죠. 어쩌면 취향 존중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나의 취향만을 존중받고 싶어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손에 익은 물건을 더 좋아하는 것이 아버지의 물건에 대한 취향일 수 있는데, 바꾸기를 강요하는 저는 어쩌면 아버지의 취향을 공감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합니다. 아버지니 웃으며 조용히 권유했지만, 혹시 남편이었다면 나도 모르게 톤을 높여 궁상스럽게 왜 이러느냐 말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따로 또 같이’라는 제목의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방영된 적이 있었습니다. 연예인 부부가 같은 목적지로 여행을 떠나지만, 각자의 취향에 따라 따로 여행하는 모습을 담은 리얼리티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아무리 사랑한다고 해도 취향이 같을 순 없죠. 프로그램의 기획자는 결혼에 대해 서로 다른 취향을 가진 두 남녀가 만나 취향 차이를 극복해 가는 것이 결혼이라 생각한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그리고 프로그램에 참여한 연예인 부부의 모습을 통해 다른 취향을 가진 부부가 그로 인해 생긴 문제와 그 문제들을 극복해 가는 과정을 볼 수 있었습니다. 프로그램에는 10년 차 이하의 부부와 20년 이상을 함께 하는 부부가 참여했죠. 그리고 그들은 여행 당시에는 몰랐지만, 스튜디오에 와서야 알게 된 상대의 생각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여행 취향이 같지 않다면 여행지가 같더라도 하루 정도 각자의 시간을 보내보는 겁니다. 영화의 취향이 다르다면 같이 영화관을 가지만 본인의 취향에 맞춰 다른 영화를 각자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겠죠. 집을 꾸밀 때도 서로의 취향만을 고집하지 않고 공간별로 각자의 취향에 맞는 공간을 갖거나 일부분 양보할 필요가 있겠죠.

『좋아하는 곳에 살고 있나요? 』라는 제목의 한 공간디렉터의 책을 재미 읽게 읽었던 적이 있습니다. 내용보다 먼저 제목이 눈에 들어왔던 책이었습니다. 글을 쓰다 보니 ‘나의 취향을 존중받고 살고 있나요?’ 혹은 ‘내 배우자의 취향을 존중하며 살고 있나요?’로 달리 발음해보게 됩니다.

굿커뮤니케이션 대표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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