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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 의견 정면충돌? 싸우기 전 XYZ 공식을 기억하세요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박혜은의 님과 남(57)

몇 달 전, 한 모임에서 행사를 진행했습니다. 행사가 잘 마무리되고 참여자분들께 문자로 안내를 하게 되었습니다. [사진 pixabay]

몇 달 전, 한 모임에서 행사를 진행했습니다. 행사가 잘 마무리되고 참여자분들께 문자로 안내를 하게 되었습니다. [사진 pixabay]

몇 달 전이었습니다. 한 모임에서 행사를 진행하며 진행비를 제가 먼저 일괄적으로 부담한 후 차후에 각출해 채우기로 했습니다. 행사가 잘 마무리되고 며칠 후 행사에 참여한 분들에게 개별적으로 문자를 보내 금액을 안내해 드렸죠. 행사 준비에 다들 고생이 많았던 터라 금액만 달랑 적어 보내자니 마음이 쓰였습니다. 그래서 문자 말머리에 바쁘신데 다들 시간 내서 고생이 많았다는 내용의 글을 적어 함께 보냈죠.

그렇게 몇 주가 더 지나고 저의 문자 메시지로 인해 누군가 곤란했다는 말을 전해 들었습니다. 듣자 하니 전체 메시지는 보이지 않고 문자의 한두 문장만 보이는 상태에서 메시지를 보게 된 모임 참석자 중 한 분의 아내가 제 문자로 오해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살다 보면 부부 사이라도 여러 이유로 밖에서의 일들을 시시콜콜 다 전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죠. 아내와 오해가 생긴 분께서는 회사 일로도 바쁜 상황이었습니다만, 미안한 마음에 모임에 잠시나마 참석을 했던 터였습니다.

어쩌다 아내에게 상황을 전하지 못한 채 시간이 흘러갔는데 마침 그 문자를 부인이 보게 된 것이죠. 일로 바쁘다더니 집에는 늦고, 마치 회사 일을 핑계로 놀러 다닌 것 같은 오해가 생긴 겁니다. 더구나 문자를 보낸 제가 여자라고 생각되니 더한 서운함이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속상했던 아내는 가까이 지내는 친지에게 마음을 털어놓았고 이야기는 다시 남편에게 도착했습니다. 일주일이 넘도록 이유 없이, 아니 이유도 모른 채 입을 다문 아내의 속사정을 늦게야 알아차린 거죠.

물론 아내 입장에서는 내가 왜 화가 났는지 어떻게 당신이 모를 수 있겠냐고 생각할 수도 있을 터이고, 아니면 굳이 내 입으로 그 상황을 말하고 싶지 않을 만큼 화가 났을 수도 있었겠지요. 어쩌면 부부 사이에 흔하게 있을 법한 상황인 듯도 하지만, 저의 과한 친절함이 만든 오해인 것 같아 한쪽으로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커플 사이의 오해할 일을 만들지 않는 것은 서로를 위한 예의겠지요? 하지만 그러한 경우가 생겼다면 혹시 지금의 상황이 나의 오해는 아닌지 직접 상대방에서 확인하는 것도 서로에게 필요한 약속입니다.

 커플 사이에 오해가 생겼다면 직접 상대방에게 확인하는 게 먼저입니다. [사진 pixabay]

커플 사이에 오해가 생겼다면 직접 상대방에게 확인하는 게 먼저입니다. [사진 pixabay]

부부싸움을 크게 하고 나면 가까운 친구나 이웃들에게 내가 뭘 그렇게 잘 못 했는지를 토로하며 속상함을 늘어놓게 되는 경우가 있죠. 서운한 마음에 누군가의 동의 혹은 생각을 듣고 싶겠지만, 사실 누구보다 상대방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나’입니다. 둘의 대화가 필요한데 답을 자꾸 밖에서 찾다 보면 둘의 대화는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문득 우리 집 한쪽을 오래도록 지키고 있던 몬스테라 화분이 생각났습니다. 모양도 이쁘고 해서 요즘 집집이 많이들 키우는 몬스테라를 이년 전쯤 집에 들여놓았습니다. 생각보다 너무 잘 커 주어서 그간 친정이며 시댁, 주변 친구들까지 분양해 줄 정도였죠.

그리고도 쑥쑥 더 커 주어 큰 화분을 구해와 분갈이를 하는데 뿌리가 너무 많이 자라 있는 겁니다. 그래서 적당히 건강한 뿌리만 남기고 정리한 후 예쁘게 새 화분에 심어 주었죠. 그런데 적당히 정리한다는 것이 너무 많이 잘라버린 모양입니다. 잎들이 조금씩 노랗게 변해가더니 비실비실 죽어가기 시작합니다. 맞습니다. 필요한 뿌리까지 잘라버린 셈입니다.

그런데 나쁜 조짐이 분갈이를 하자마자 바로 보인 것은 아니었습니다. 아주 조금씩 시들기 시작하더니 서너 달쯤 지날 무렵 확연히 달라져 보이기 시작했죠. 정작 뿌리가 상한지도 모른 채 물도 더 주어보고 영양제도 주었지만, 몬스테라는 다시 살아나지 못했습니다. 밖으로 보이는 초록 잎들을 지탱하기 위해선 튼튼한 뿌리가 필요하죠. 그러나 혹 뿌리가 상했다고 해도 바로 변화가 나타나진 않습니다.

튼튼한 뿌리가 있어야 건강한 몬스테라가 될 수 있는 것처럼, 부부도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사진 pixabay]

튼튼한 뿌리가 있어야 건강한 몬스테라가 될 수 있는 것처럼, 부부도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사진 pixabay]

사랑에 빠지는 순간에는 누구나 상대에게 나를 맞추려 노력하죠. 하지만 결혼해 함께 지내다 보면 어느 부부나 생각의 차이를 발견합니다. 이미 알고 있듯 우린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니까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도 줄어듭니다. 다름을 일방적인 상대방의 문제로 인식하는 순간 우리 부부 사이도 몬스테라 화분처럼 시들시들해집니다.

부부 사이에 문제가 생겼을 때 먼저 이 문제를 서로가 함께 인식하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혹시 상대방이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면 대화가 필요하겠죠.

미국의 관계전문가 Les Parrott과 Leslie Parrott는 그들이 함께 쓴 책에서 ‘X-Y-Z 공식'을 이야기합니다. 부부가 대화를 나눌 때 "X라는 상황에서 당신이 Y를 하면, 나는 Z라는 감정을 느끼게 된다"고 말하는 습관을 지니라는 것입니다. 너로 인해 생긴 나의 감정을 앞세우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대한 입장과 의견을 명확히 전달한 후에 감정을 전하는 말하기 습관을 들여야 한다는 것이죠. 나의 감정을 앞세우면 상대를 비난하는 말을 먼저 하게 됩니다.

명절 연휴, 바쁜 일정에 서로가 예민해지기 쉬운 시기입니다. 불편한 상황이 생겼을 때 그 순간을 피하는 것, 우리의 상황을 서로가 아닌 타인을 통해 해소하려는 행동은 나도 모르는 사이 서로를 단단히 세워주고 있는 뿌리를 썩게 하는 일입니다.

박혜은 굿커뮤니케이션 대표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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