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제 어려운데 최저임금·주 52시간 정책 충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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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은 나와 있는데 실행을 못 하고 있다. 지켜보기 안타깝다.”

경제 전문가 ‘위기의 한국경제’ 진단 #생산성 낮은 상태서 노동공급 감소 #한국 성장률 둔화 속도 너무 빨라 #일본식 장기 불황 빠질 우려 커져

3분기 한국 경제 성장률 쇼크에 한 전직 경제부처 장관은 답답함을 토로했다. 전 장관 A씨는 “투자가 나쁘니 아무리 정부 지출을 늘려도 큰 효과를 볼 수 없다”며 “해법은 투자와 순수출을 늘리는 건데, 이는 결국 기업이 해야 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규제를 완화하고 기업의 활력이 되살아나야 투자도 자연스럽게 늘어난다는 얘기였다.

경제부처 전 장관 B씨는 “정부 정책 기조를 전반적으로 바꿔야 하는데, 정부는 그럴 생각이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현 정부의 경제 낙관론을 걱정했다. B씨는 “아무리 ‘경제는 심리’라고 하더라도 정부가 너무 낙관적으로 얘기하면 정부 정책의 신뢰를 얻기 힘들다”며 “국민을 상대로 ‘희망고문’을 그만하고 솔직하고 과감하게 정부의 경제전망치부터 하향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성태윤

성태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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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중앙일보가 인터뷰한 학계·재계·금융계 전문가 3명도 한국 경제가 일본식 장기 불황에 빠질 수 있다며 민간 투자를 활성화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3분기 성장률 쇼크에는 ‘정책발 요인’이 컸다고 진단했다. “반도체 경기가 악화하는 등 대외 경제 여건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정부가 주 52시간 근무제와 최저임금 상승을 동시에 시행한 것이 기업에 부담으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성 교수는 노동생산성이 낮은 상태에서 노동 공급을 감소시켜 장기침체를 부른 과거 일본과 현재의 한국이 유사하다고 봤다. 그는 “주 52시간제가 시행되면 기업은 더 많은 근로자를 고용해야 생산성을 유지할 수 있다”며 “그러나 최저임금이 급격히 오르면서 기업이 고용마저 제대로 할 수 없게 됐다”고 진단했다. 또 “경기침체형 디플레이션으로 기업매출과 자산가격이 하락하면서 향후 추가적인 경기 하락이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배상근. [연합뉴스]

배상근. [연합뉴스]

재계에선 획기적인 민간투자 활성화 대책 없이는 내년 경제도 어두울 것으로 우려했다. 배상근 전국경제인연합회 전무(경제학 박사)는 “정부 재정으로 성장을 견인하는 방식의 한계를 확인한 만큼 기업의 투자를 유도하는 과감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배 전무는 “29일부터 민간택지로 분양가 상한제를 확대하는 것은 공급요인을 위축시킬 것”이라며 “일련의 정책들이 경제를 더 어렵게 만들고 있어 내년 경제도 현재로선 어두워 보인다”고 말했다.

배 전무는 “3분기 GDP 성장률 자체보다도 국내총소득(GDI) 성장률이 3분기 연속 부진한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민의 호주머니 사정이 나아지지 않고 있다는 얘기로, 이렇게 소비가 부진하고 기업 실적이 나쁘면 가계와 기업이 세금을 내기 어려워진다. 그러면서 배 전무는 “제조업 설비 가동률이 하락세라는 의미는 기업이 현재 가진 설비도 멈춰 세웠다는 얘기”라며 “미래 먹거리를 개발하려는 연구개발(R&D) 투자라도 정부가 적극 지원하는 정책을 확대해 민간 부문의 경제 성장 기여도를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김학균

김학균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성장률의 경향적 둔화를 받아들여야 하는 측면도 있지만 한국은 그 속도가 너무 빠르다”며 “성장률이 이렇게 급격하게 떨어지면 국민 사이에 아노미(혼돈 상태)가 생길 수 있다”고 진단했다.

박성우·박수련·허정원 기자 sohn.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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