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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 시구, 개념 개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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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김승현 기자 중앙일보 사회 디렉터
김승현 논설위원

김승현 논설위원

2005년 7월 8일은 한국 문화사(史)적으로 기억할 만한 날이다. 이날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하나의 ‘의미’가 만들어졌다. 프로야구 두산과 삼성의 경기에 앞서 열아홉살 여성 탤런트가 투수 마운드에 올랐다. TV 시트콤에서 상큼 발랄 연기로 인기를 끌기 시작한 홍수아가 시구자였다. 그런데, 포수를 향해 던진 공이 시속 80㎞로 스트라이크 존에 꽂혔다. 선수급 구위와 컨트롤에 함성이 터졌다.

대중은 그 장면에서 뭔가를 느꼈다. 한껏 꾸미고 운동장에 나와 약한 척, 예쁜 척하던 과거의 몸짓이 아니었다. 대신 옆집 누이 같은 칠부바지에 운동화, 힘쓰느라 일그러진 얼굴, 근육이 불거진 팔뚝이 있었다. 홍수아의 시구엔 야구 본래의 모습이 군더더기 없이 담겨 있었다. 거짓과 가식 없는 그 반전을 네티즌들은 ‘개념(槪念)’이라는 명사로 수식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개념 시구’가 탄생했다. 이후 시구 연예인이 최선을 다해 제대로 던질 때면 어김없이 개념 시구라는 찬사가 따라왔다.

개념은 그 생성 과정에 본질이 깃들어 있는 단어다. 개념에 충실해야 개념이라 불릴 수 있다. 모두가 함께 인정하는 그 무엇인 셈이다. 국어사전에는 ①어떤 사물이나 현상에 대한 일반적인 지식 ②구체적인 사회적 사실들에서 귀납하여 일반화한 추상적인 사람들의 생각 ③여러 관념 속에서 공통된 요소를 뽑아내 종합해서 얻은 하나의 보편적인 관념이라는 ‘개념 설명’이 나온다.

그런 개념이 최근 오·남용되는 것 같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수호 집회를 응원한 개그맨은 ‘개념 연예인’으로 추앙받고, “조국 딸의 기분”이란 표현을 쓴 ‘무개념 개그맨’은 친문 네티즌의 비난에 팟캐스트를 접었다. 이런 식이면 대통령 아니라 대통령 할아버지도 풍자와 해학의 대상이 되는 ‘개념 개그’를 구경이나 하겠는가.

김승현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