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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 생활·교통 vs 철새·환경 보호…날개 못 펴는 흑산공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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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경비행장 건설이 추진 중인 전남 신안 흑산도 전경. 프리랜서 장정필

경비행장 건설이 추진 중인 전남 신안 흑산도 전경. 프리랜서 장정필

전남 목포항에서 92㎞ 떨어진 흑산도. 주민 2300여명이 사는 섬은 올해 태풍 ‘링링’과 ‘미탁’ 때 외부로부터 고립됐다. 유일한 교통편인 여객선이 10일간 운항하지 않아서다. 주민 김선희(55·여)씨는 “나주에 사는 어머니가 편찮으시다는 소식을 듣고도 배편이 없어 일주일이 지나서야 뵐 수 있었다”며 “비행편이 있으면 좋은데 국립공원이라는 이유로 주민이 참아야 한다는 환경단체나 정부의 주장은 가혹하다”고 했다.

흑산도·울릉도 공항 다른 운명 #10년 전 국가사업 지정됐지만 #작년 10월 환경부 심의도 중단 #주민 “국립공원 해제” 농성 계획

국가 사업으로 추진됐던 흑산공항이 수년째 난항을 겪으면서 주민 반발이 커지고 있다. “섬 주민의 교통·의료를 위해 공항은 필요하다”는 주민들과 “환경훼손”이라는 환경부의 입장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는 형국이다.

21일 신안군 등에 따르면 흑산도 주민들은 다음 달 청와대와 환경부 앞에서 집회를 갖고 흑산권역을 국립공원에서 해제해 줄 것을 촉구할 계획이다. 그동안 정부와 환경단체들이 흑산공항 건설을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로 국립공원의 환경훼손과 철새 보호 등을 꼽아왔기 때문이다.

흑산공항 건설 계획.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흑산공항 건설 계획.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흑산공항은 잦은 선박통제로 인한 교통불편 해소와 흑산권역의 관광활성화를 위해 추진됐다. 흑산도 일대는 1년 중 3분의 1 정도가 여객선 운항이 중단되는 교통의 오지(奧地)다. 이곳은 기상악화로 인한 여객선 결항만 1년 평균 50여일에 달한다. 또 60일 정도는 안개나 풍랑 때문에 여객선 운항횟수가 제한되기 일쑤다.

배를 타고 육지를 오가는 불편도 크다. 부식이나 자재 등을 차량에 싣고 육지를 오가려면 4시간 30분~5시간 30분이 걸리는 철부선을 이용해야 한다. 쾌속선을 타면 2시간10분이면 목포로 나갈 수 있지만, 작은 기상이변만 있어도 운항하지 않는다.

흑산공항은 2000년 민간차원의 경비행장 건설을 목표로 시작됐다. 총 1833억 원을 들여 흑산도 북동쪽 끝 지역인 예리 일대에 1200m 길이의 활주로를 만드는 게 골자다. 원래 2017년 하반기 공사를 시작해 2020년에 경비행기가 흑산도를 오가는 게 목표였다.

흑산공항 건설 추진일지.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흑산공항 건설 추진일지.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서울에서 흑산도를 1시간대로 연결하는 사업은 2009년 국토부가 검토용역을 추진하면서 국가사업이 됐다. 2013년 예비타당성 조사 통과, 2015년 기본계획 수립 등을 통해 탄력을 받았던 사업은 2016년 암초를 만났다. 환경부의 국립공원위원회 심의과정에서 조류와의 충돌 등을 이유로 보류 결정이 내려진 것이다. 이후 2018년 10월에는 환경부가 심의 중단 방침을 밝히면서 국립공원위 재개마저 불투명해졌다. 환경단체들 역시 흑산도가 조류 337종이 모인 세계적인 철새 도래지라는 점에서 공항 건설을 반대하고 있다.

주민들은 “흑산공항 반대는 주민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행위”라고 주장한다. “단순한 교통 불편 외에도 응급환자 발생 때 발을 구르는 경우가 많다”는 입장이다.

흑산공항은 이낙연 국무총리가 전남도지사 시절 역점적으로 추진했던 사업이기도 하다. 당시 이 총리는 “흑산공항이 2020년 완공되면 흑산도와 서울·중국 간 접근성이 1시간 거리로 개선되는 ‘세기적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고 했다.

일각에서는 흑산도와 함께 공항 건설이 추진됐던 울릉도와 형평성 논란도 제기하고 있다. 지질공원인 울릉도 내 공항은 흑산공항과는 달리 내년 4월 공항 착공을 앞두고 있어서다.

전남 신안군 흑산면 주민들이 지난해 9월 19일 서울 마포구 국립공원관리공단 서울사무소 앞에서 흑산공항 건설을 촉구하고 있다. [뉴스1]

전남 신안군 흑산면 주민들이 지난해 9월 19일 서울 마포구 국립공원관리공단 서울사무소 앞에서 흑산공항 건설을 촉구하고 있다. [뉴스1]

앞서 국토부는 2015년 ‘제5차 공항개발 중장기 종합계획’ 발표 당시 흑산공항을 울릉공항과 함께 신규 사업으로 제시한 바 있다.

흑산공항추진단 관계자는 “울릉공항은 흑산공항보다 건설비가 3배 넘게 드는 데도 국립공원이 아니라는 이유로 허가를 받았다”며 “국립공원이 공항건설의 제약조건이라면 해제를 촉구하는 투쟁을 해 나가겠다”라고 말했다.

신안=최경호 기자 choi.kyeong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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