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일 벗은 송두율] 사과는 애매하게 반박은 조목조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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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두율씨의 2일 기자회견이 '대국민 사과' 성격이 될 것이라는 예상은 빗나갔다. '양심을 걸고 밝힌다'면서 국가정보원이 발표한 자신의 혐의 내용을 조목조목 반박하는 데 치중했다. 국정원 발표를 토대로 한 언론 보도가 '왜곡'됐다는 표현까지 썼다.

다만 회견문 말미에 '국민께 깊이 사죄하고자 한다'는 문구를 넣었지만 무엇을 사죄한다는 것인지는 명시하지 않았다. 공안당국이 구상한 처리 방안 중 하나인 '진지한 반성을 전제로 한 선처'는 이로써 사실상 깨진 셈이다.

◇노동당 가입=宋씨는 1973년 처음 입북하면서 노동당에 가입했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나 그는 노동당 가입에 대해서는 남한에서 외국 출국시 소정의 소양교육을 받는 것과 같은 일종의 불가피한 통과의례였다고 주장했다.

전날 국정원은 그가 73년 입북해 2주간의 주체사상 교육을 받았다고 발표했다. 또 노동당 가입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도, 간단한 절차로 가능한 것도 아니며, 이는 이미 자체 수집한 정보와 과거의 간첩사건 등에서 밝혀진 바 있다는 게 국정원 측의 입장이다.

◇정치국 후보위원=국정원은 "宋씨가 91년 김철수라는 가명으로 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으로 선출됐으며 이를 조사 과정에서 자백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宋씨는 후보위원으로 선출되거나 활동한 적이 없으며 북측에서 아무런 통보도 받은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94년 김일성 주석의 장례식에 참석했을 때도 행사장 명패에는 송두율이라는 이름으로 기재돼 있었다"는 것이다. 자신이 김철수로 지칭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건 "이미 독일 국적을 취득(94년 7월)한 후였다"고 덧붙였다.

이 대목은 반국가단체에 단순 가입한 것이냐, 간부로서 임무를 수행한 것이냐를 가름하는 잣대다. 宋씨에 대한 사법처리 수위가 달라질 핵심 혐의다. 국정원이 검찰에 제출한 기록에는 宋씨가 후보위원으로 활동했음을 입증할 증거와 진술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공작금 여부=국정원은 宋씨가 91년부터 5년간 재독 북한 공작원을 통해 연구비 등 명목으로 매년 2만~3만달러씩 총 15만여달러를 받았다고 밝혔다.

그러나 宋씨는 북측에서 받은 돈은 7만~8만달러 정도며, 독일 소재 한국학술연구원 지원 경비로 대부분 지출했고 나머지는 북한을 다녀올 때 항공료 등으로 썼다고 주장했다. 宋씨 주장이 사실이라고 해도 독일 국적을 얻기 전 북한에서 거액을 받은 사실만으로도 국가보안법상 금품수수에 해당할 것으로 보인다.

◇충성서약서 작성=국정원은 宋씨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생일 등에 '만수무강 기원 충성맹세문' 등 충성서약서를 십여차례 작성해 북한에 보냈다고 밝혔다.

그러나 宋씨는 "북한은 공화국 창건일 등 특별한 날에 축하문을 해외 인사에 요구하는 게 관례여서 축전이나 조의문 보내듯 형식적으로 몇번 보내기는 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런 그의 주장이 사실이더라도 북한의 요구대로 축전을 보냈다면 굳이 충성서약서라는 이름이 아니어도 이에 준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전진배 기자<allonsy@joongang.co.kr>
사진=최승식 기자 <choissi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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