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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기물 재활용률 86% 맞아? 전국 235곳에 ‘쓰레기산’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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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7호 12면

경상북도 의성군 단밀면에는 거대한 쓰레기 봉분이 솟아 있다. 아무렇게나 버려진 비닐과 나뭇조각·부직포 등이 흙과 섞여 산을 이루고 있다. 누군가 몰래 버린 방치폐기물이 쌓인 결과다. 인근 주민들은 “여름철이면 마을 전체에 쓰레기 썩는 냄새가 진동한다”며 “날이 더울 때 불이 나기도 한다”고 하소연했다. 이곳의 폐기물은 17만3000t에 이른다. 중형 승용차 12만3000대 정도의 무게다. 환경부는 이런 쓰레기 산이 전국 235곳, 총 120만t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일회용컵·우유팩 등 재활용 어렵고 #접착제 등 불순물 탓 페트병도 못 써 #영세 폐기물 업체 무단투기 다반사 #대체재 개발, 플라스틱 사용 줄이고 #제품 생산자가 회수해 재사용해야

의성에만 중형차 12만3000대 무게 쓰레기

이곳 쓰레기는 철재·플라스틱 등 재활용이 가능한 품목이 대부분이다. 한국은 정부가 주도해 폐기물을 분리배출하는 몇 되지 않는 나라다. 그런데도 많은 양의 재활용 쓰레기가 곳곳에 버려져 있다. 눈앞의 이익만 따진 생산 방식과 잘못된 정책 운용, 폐기물 처리 업자들의 욕심이 뒤엉킨 결과다. 환경부에 따르면 전체 폐기물 재활용률은 86.4%(2017년 기준) 수준이다. 다만 어디까지나 통계일 뿐, 실상과는 거리가 멀다. 생활폐기물 재활용은 ‘수거-선별-처리’의 세 단계 과정을 거친다. 시민들이 분리수거한 쓰레기는 수거 업체를 거쳐 선별 업체로 넘어간다. 정부는 선별 업체에 넘긴 비율을 재활용 통계로 삼는다. 86.4%는 재활용이 아닌 분리수거율에 가까운 수치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정작 선별 과정에서 39%의 재활용 쓰레기가 탈락한다. 선별 업체는 경제성 있는 폐기물만 솎아내고, 나머지는 매립하거나 태운다. 이 과정에서 일회용 아이스커피 컵처럼 폴리스티렌(PS)이 섞인 플라스틱은 대부분 버려진다. 재활용이 어려워서다. 가장 경제성 높은 페트병도 색상이나 뚜껑이 있으면 별도로 분류 작업을 해야 한다. 몸체에 라벨 접착제 등 불순물이 많아도 버리기 일쑤다.

종이도 마찬가지다. 비닐을 씌운 잡지 표지나 내부를 폴리에틸렌(PE)으로 코팅한 일회용 커피컵·우유팩 등은 재활용하기 어렵다. 재활용하려면 화학 처리를 거쳐야 한다. 재활용하더라도 두루마리 휴지나 페이퍼타월 등 부가가치가 낮은 제품으로만 쓴다. 국내에서 한 해 약 200억 개의 일회용컵이 쓰이는데, 이 중 5∼10%만 재활용되는 것으로 환경부는 보고 있다.

건설·산업 현장 등에서 발생하는 혼합폐기물 문제는 더 심각하다. 5t 이하의 혼합폐기물은 신고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목재·철재·플라스틱류를 구분하지 않고 배출할 수 있다. 폐기물 전문 처리 업체들은 이렇게 모인 폐기물을 인력을 동원해 분류하는데, 인건비 부담이 크다. 이 때문에 영세 업체들은 폐기물을 몰래 버리는 사례가 많다. 의성을 비롯한 전국 곳곳에 방치폐기물이 쌓이는 배경이다. 경기도가 올 초 폐기물 방치 우려가 큰 사업장 583개를 조사한 결과 87개 업체가 보관기준 위반, 불법소각 등 현행법을 어긴 것으로 나타났다. 자금난에 시달리다 폐기물을 잔뜩 쌓아둔 채 도산하는 사례도 빈번하다.

이에 따라 ‘생산자재활용책임제도(EPR)’로 재활용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는다. 포장재·제품 생산자가 발생한 폐기물을 회수해 재사용하거나, 용기 전체 재질을 하나로 통일하는 등 제조 단계에서부터 재활용 가능한 방식으로 생산해야 한다는 것이다. 강신호 대안에너지기술연구소 소장은 “대체재 개발 등으로 플라스틱 사용량을 줄이는 한편 제품 생산 때 재활용에 무게를 둔 디자인이 필요하다”며 “EPR·재활용기금·환경부담금 등의 재활용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주장이 커지자 정부도 내년부터 생산자재활용책임제도를 단계적으로 시행하기로 했다.

연 200억 개 일회용컵 중 5~10% 재활용

기업 차원에서의 변화의 움직임이 있다. 코카콜라·펩시는 캔을 따로 수거하는 자판기를 공급하거나 친환경 소재의 포장재 사용을 늘리기로 했다. 일본에서는 재활용률을 높이기 위해 페트병보다 캔을 주로 사용하고, 페트병을 사용하더라도 라벨에 접착제를 붙이지 않는다. 이런 조치로 기업 이미지를 높이는 한편, 포장재 비용도 줄일 수 있다.

국내에서도 재활용품을 사용할 수 있게 처리·분류하는 쓰레기통을 제작하거나 건설 혼합폐기물 자동 분류 시스템을 개발한 벤처 기업도 등장하고 있다. 폐기물 처리 업체 이도(Yido)의 사공명 소장은 “폐기물을 제대로 분류하지 않고 매립하면 토양 오염 등 2차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며 “폐기물 처리와 관련한 국가 예산을 분류 기술 향상과 관리 기법 정교화에 더 많이 써야 한다”고 말했다. 육상 쓰레기뿐만 아니라 해양으로 버려지는 폐수나 공기 중으로 퍼져나가는 분진을 재활용하는 기술도 등장하고 있다. 세라믹 여과기로 물을 정수한 후 찌꺼기를 화석연료로 사용하거나, 수질 변화를 분석해 폐수 처리 효율을 올리는 기술이 최근 산업현장에서 쓰이고 있다. 분진을 포집해 잉크나 흑연을 만드는 기술도 나와 관심을 끌고 있다.

의성·인천=김유경·이창균 기자 neo3@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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