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몽의 평양···공항서 X레이 놔두고 "소지품 다 적어내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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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국 인터뷰 도중 이마를 쓸어내리는 파울루 벤투 축구대표팀 감독. [뉴스1]

귀국 인터뷰 도중 이마를 쓸어내리는 파울루 벤투 축구대표팀 감독. [뉴스1]

2박3일간의 평양 체류 기간에 대해 축구대표팀과 동행한 대한축구협회 관계자는 ‘악몽’이라는 표현을 썼다. 우리 축구팬들이 연락이 두절된 축구대표팀 선수들의 안부를 걱정하는 동안 선수단도 크고 작은 압박과 위협에 시달려야 했다.

우리 대표팀은 북한땅에 도착하자마자 북측의 견제가 시작됐다.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한 직후 북한 세관은 우리 선수들이 가방에 담아온 소지품을 모두 손으로 적어내도록 했다.

통상적으로 출입국 짐 검사는 X-레이 투시기를 통해 진행하며, 문제가 있을 경우 직접 개봉해 육안으로 확인하는 절차를 거친다. 여행객이 가지고 온 물품을 직접 적어서 내는 경우는 드물다. 우리 선수들의 육체적, 심리적으로 피로도를 높이기 위해 북측이 일부러 진행한 걸로 추측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 때문에 공항을 빠져나오는 데만 세 시간 가까이 소요됐다.

29년 만에 열린 평양 남자축구 남북 대결은 관중석을 텅 비운 채 진행됐다. [사진 대한축구협회]

29년 만에 열린 평양 남자축구 남북 대결은 관중석을 텅 비운 채 진행됐다. [사진 대한축구협회]

인터넷 상황 또한 열악했다. 월드컵, 아시안컵 등 국제축구연맹(FIFA)과 아시아축구연맹(AFC)이 주관하는 경기에서는 현장 취재 기자들을 위해 일정 수준 이상의 인터넷 환경을 제공해야하는데, 북측은 이 규정을 지키지 않았다. 축구협회 직원들이 확인한 결과 김일성 경기장 미디어센터에서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는 컴퓨터는 단 한 대 뿐이었다. 그나마도 속도가 지나치게 느려 사용 불가능한 수준이었다.

결국 남측과의 소통은 숙소 호텔에서 주로 이뤄졌다. 축구협회 관계자는 “호텔측으로부터 랜선을 제공 받아 축구대표팀 소식을 전하는 이메일을 보냈다”면서 “메일을 작성할 때마다 북측 관계자들이 뒤에 서서 내용을 일일이 확인했다”고 말했다. 선수들은 숙소 호텔에 머무는 동안 사실상 감금 생활을 했다. 주변을 산책하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았다.

축구협회는 향후 FIFA를 통해 북한축구협회를 제소하는 방안을 검토할 예정이다. 선수단장으로 평양을 다녀온 최영일 축구협회 부회장은 “일단 축구협회에서 회의를 진행하면서 (제소와 관련한) 규정을 검토하겠다”면서 “장거리 이동으로 모두가 지쳐 있다. 회의를 해봐야할 것 같다”고 말했다. 송지훈 기자 milkyman@joongang.co.kr

평양 남북대결은 부상을 우려할 정도로 거친 플레이가 난무하는 상황속에서 치러졌다. [사진 대한축구협회]

평양 남북대결은 부상을 우려할 정도로 거친 플레이가 난무하는 상황속에서 치러졌다. [사진 대한축구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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