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글들의 재테크모임 "작업보다 돈"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 14일 금요일 밤,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한 호프집에는 재테크에 심취한 싱글 남녀 10여명이 모였다. 온라인 싱글 클럽 '세이큐피드'의 오프라인 모임, '이젠 재테크를 알아야 할 나이' 멤버들이다. 이 클럽 멤버들의 재테크 실력이 범상치 않다는 말을 전해 듣고 기자 역시 싱글 멤버로 합류했다. 오프 모임에는 처음이라며 어색해하던 분위기도 잠시, 재테크 얘기가 나오자 모두들 귀를 쫑긋 세우고 주의를 귀울였다. 명색이 싱글 모임인데 이성보다도 돈 되는 소식이 더 절실한 분위기다.

먼저 카페장 최수정씨(29)가 유인물을 나눠 준다. 전설의 투자가 윌리엄 오닐의 저서, '최고의 주식, 최적의 타이밍'을 A4 10장 분량으로 요약한 자료다. 발제가 끝나자 이번에는 주요기업 2분기 예상 실적 자료를 나눠 준다. Fn가이드 컨센서스와 대우증권 자료를 참조해 만든 것이다. 직접 작성한 데이터인지 묻자, 친한 PB로부터 얻은 자료라고 실토했다. 어쨌든 개인 투자자가 이 정도 공을 들여 학습시간을 갖는 것이 범상치 않아 보인다.

이윽고 회원들 간의 자기소개 차례가 돌아왔다. 하는 일, 재테크 경력, 관심 분야, 보유종목, 재테크 전망부터 역시나 싱글인 만큼 피해갈 수 없는 질문, 이상형까지. 재테크에 관심을 갖고 정보를 공유하는 싱글들, 이날 멤버 전원이 30대였다. 믿거나 말거나지만 열심히 일하고 자산을 불리느라 이성엔 관심이 없었던 것이라고. 대형 회계법인 회계사, 투자자문사 펀드매니저, 대기업 회계담당, 전직 증권사 브로커, 국회의원 보좌관, 한의사, 파이낸셜 어드바이져, 부동산전문대학원 학생까지 다양한 직업 만큼이나 투자 경력도, 대박 난 종목도 각양각색이었다.

카페장 최수정씨는 M&A주에 관심이 많다. 한 때 창업에도 관심이 있어서 인터넷 관련 사업을 하기도 했지만 크게 재미를 보지는 못했다. "창업이 재테크의 막장이라고 하잖아요. 그 말이 맞는 것 같아요. 재테크라는게 자기 본업을 유지하면서 과외 소득을 늘리는 것이지 본업을 바꿔서 올인한다고 재테크에 성공했다고 하기는 어렵죠. 본업을 바꿔서 성공하기도 어렵고요."

최씨는 부동산 경기가 가라 앉으면서 투자 기회가 많지는 않지만 10 ̄11월 세금을 피하기 위한 급매물이 나오면 저가에 매입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 나이로 서른, 가벼운 입담으로 들리지는 않는다. 주말이면 주식 강연회를 찾아 순례한다는 최씨는 개인투자자들이 위험하다고 꺼리는 ELW까지 투자를 감행했다. ELW 투자 성적은 현재 마이너스 80%, 1000만원 원금이 200만원으로 줄어든 상태다.

"수업료 치고는 비싼 셈이죠. 만약에 ELW가 출시되자마자 삼성전자 '콜'을 샀다면 큰 수익을 냈을 겁니다. 들어간 시기가 애매했어요. 연초에 들어갔는데, 그 땐 아직 '풋'은 상장되지 않았을 때였죠. 종합주가지수가 1360선에 이르고 며칠 후에 '풋'이 상장됐는데 그 때 '풋'을 샀었어야 했던 거죠. 항상 지나고 나면 후회지만 교훈은 남았어요. 새로운 시장이 열릴 때는 기회가 많다. 기회는 그 만큼 일찍 준비하고 일찍 들어가는 사람에게 돌아간다는 거죠."

최 씨가 주식으로 손해만 본 것은 아니다. ELW의 타격이 컸지만 지난해까지의 주식 투자 실적은 나쁘지 않았다. 그녀는 용인 동백지구에 아파트를 분양 받아 입주를 기다리고 있다. 현재는 여의도의 한 오피스텔에서 전세로 살고 있다. 최씨를 포함해 용인 동백지구를 분양받은 클럽 멤버는 총 3명. 지역주민 모임을 할 날도 머지 않았다. 이 클럽에는 재테크로 10억원 이상을 벌고 은퇴한 멤버가 2명 있다.

부동산 투자로 덕을 봤다는 파이낸셜 어드바이져 최희정씨(36, 남, 가명). 2년 동안 매월 40만원씩 부은 적립식 펀드가 지금은 원금 960만원과 투자수익을 합해 1500만원이 돼 있다. 연초 들어간 일본펀드는 불행히도 20% 손실을 봤다. 단기로 생각하고 투자한 일본펀드가 비자발적 장기투자가 돼 버렸다고 너털 웃음을 짓는다. 직업 때문에 사돈의 친척 포트폴리오까지 주문을 해준다는 최 씨는 개인연금펀드를 추천했다. 설사 투자 수익이 크지 않더라도 10년이상 유지하면 세금환급액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부동산은 지난해보다 확실히 투자 기회가 줄었어요. 하지만 어차피 부동산은 주식과 달리 1년에 한 번입니다. 여러번 움직이기 어려운 투자대상인 만큼 1년에 한 번만 타이밍을 잡으면 돼죠. 이렇게 생각하면 기회가 없지는 않아요. 무조건 발로 뛰고 공인 중개업자를 내 사람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가능하면 적어도 2 ̄3명 정도요. 중요한 건 너무 어리숙해 보이면 좋지 않은 물건으로 뒤통수를 맞는 일이 생길 수 있으니까 그 쪽 생리를 몰라도 조금은 아는 척하면서 접근해야 한다는 거에요."

클럽 멤버들에게 용인 동백 신규 분양을 추천한 것도 최씨다. 그는 신규 청약하려는 클럽 회원들에게 화성 동탄과 하남 풍산을 추천했다. 하남 풍산의 경우 대부분 대형 평형이라 초보 투자자가 들어가기 쉽지는 않지만 부모님과 함께 거주하는 상황이라면 평수를 넓혀가는 측면에서 접근해 볼 만한 곳이라고 말했다.

제약회사 자금부에서 회계업무를 맡고 있는 김창근씨(34,가명)는 중국 주식에 관심이 많았다. 김씨는 여름휴가를 중국에서 보낼 계획이다. 국내 증권사를 통해 주식을 살 경우 거래비용과 수익에 대한 세금을 제하고 나면 실수익률은 떨어질 수 밖에 없다. 이 때문에 김씨는 휴가기간 동안 중국을 둘러보면서 현지에서 직접 계좌를 트고 유망 종목을 매입할 계획이다. 회계사 한혜진(32)씨는 이미 국내 증권사를 통해 페트로차이나 주식을 매입한 상황이다.

일명 '대박이 형'으로 불리는 곽정흠씨(33, 가명)는 이 클럽이 생긴 4년전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모임에 나오고 있는 고정멤버다. 장외주식 투자로 10억 자산을 일궜다. 곽씨는 아직도 목이 마르다. "4년전 처음 재테크 클럽이 생겼을 때는 모두 10억만 있으면 소원이 없겠다 말했었죠. 맞벌이 부부가 평생 부지런히 모으면 언젠가 도달할 수 있는 고지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4년 전의 10억과 지금 10억의 가치는 판이하게 다릅니다. 강남에 집 한 채 사기도 어려운 자금이죠. 물론 10억원은 큰 돈이고, 근로소득으로 모으려면 뼈를 깎는 노력이 필요하죠. 문제는 실물자산 가치가 너무 올라버렸다는 겁니다. 그러니 상대적 박탈감이 클 수 밖에요."

인터뷰가 끝나고 거나하게 소주잔을 기울이면서 우스갯소리로 재테크 때문에 이성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는 얘기가 흘러나왔다. 소개 받은 여자친구를 집 앞까지 데려다주면서 어느 순간 그 동네의 아파트 시가를 떠올리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깜짝 놀란다는 것이다. 똑소리나는 싱글들을 바라보면서 한 편으로는 야무지다는 생각과 또 한편으로는 머리속에서 '재테크'라는 단어가 떠나지 않는 한 이 싱글 모임에서 진정한 '작업'은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업의 정석'보다 '재테크의 정석'이 더 아쉬운 솔로, 서글프지만 이것 또한 대한민국 싱글 남녀의 자화상이다.

<머니투데이>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