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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월의 가을 밤하늘 수놓은 300대 드론의 군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경제 07면

300대의 드론이 강원도 영월의 동강 상공 밤하늘에 다양한 형상을 연출하는 드론쇼를 선보였다. 최승식 기자

300대의 드론이 강원도 영월의 동강 상공 밤하늘에 다양한 형상을 연출하는 드론쇼를 선보였다. 최승식 기자

2019 DSI 국제 드론스포츠 챔피언십 스피드레이싱(단체전) 경기가 열린 12일 오후 강원도 영월스포츠파크. 경기장은 발 디딜 틈도 없었다. 5000여 관중은 출발대에 놓인 30㎝(축간 길이)의 드론을 호기심 넘치는 표정으로 쳐다봤다. ‘장난감처럼 생긴 게 날 수 있을까’라는 미심쩍은 표정이었다.

DSI 챔피언십 성황리에 마쳐 #한국 ‘아스트로-X’ 레이싱 우승 #개막 드론쇼에 5000 관중 환호

경기가 시작되자 상황은 달라졌다. 최고 시속 180㎞를 넘나드는 드론의 비행에 관중석에선 ‘와’하고 탄성이 쏟아졌다. 드론이 장애물을 피해 아슬아슬한 곡예비행 구간에 진입하자, 관중은 일제히 드론의 궤적을 따라 고개를 위아래로 움직였다. 관중은 드론의 움직임에 따라 자리에 앉았다가 일어섰다가 들썩였다. 드론레이싱은 선수가 1인칭 시점(FPV) 고글을 착용하고 드론을 조종해 게이트를 통과하는 경기다. 선수는 드론에 장착된 카메라를 통해 전송되는 실시간 영상을 보며 조종한다.

스피드 레이싱에서 우승한 팀 아스트로-X의 12세 김재종 선수. 최승식 기자

스피드 레이싱에서 우승한 팀 아스트로-X의 12세 김재종 선수. 최승식 기자

스피드레이싱 결승전(3전 2승제)에선 한국 대표인 팀 아스트로-X(김재종, 이상훈, 최준원)가 러시아의 DSR을 상대로 2-0의 역전드라마를 연출했다. 아스트로 첫 번째 파일럿(선수) 김재종(12)의 드론은 500m 트랙 세 바퀴를 도는 레이스 도중 두 차례나 장애물과 부딪혀 추락했다. 김재종은 당황하지 않고 드론을 다시 띄워 올리는 기적의 레이스를 펼쳤다. 일반적으로 경기 중 추락한 드론은 파손돼 다시 날아오르기 어렵다. 김재종은 앞서가던 러시아 파벨 라스자크(16)의 드론이 장애물에 부딪혀 추락한 사이 승부를 뒤집었다. 첫판 승리로 기선을 제압한 아스트로는이어진 2경기를 따내며 우승했다. 우승 상금은 2만 달러(약 2400만원). 김재종은 9세 때 드론에 입문한 ‘드론 천재 소년’이다. 국내 1세대 드론 레이서인 아버지 김형섭(42) 씨 덕분에 기체 조립과 수리도 거뜬히 해낸다. 드론 과학자를 꿈꾸는 김재종은 “드론을 타고 하늘을 달리는 기분이다. 최고 파일럿이 되는 게 목표”라며 웃었다.

경기 후 진행된 개막식에서는 드론쇼가 펼쳐졌는데, 이날 행사의 백미였다. 오후 7시 정각에 맞춰 동강 위로 일제히 떠오른 300대의 드론이 빨강, 초록, 파랑, 보라색 불빛으로 밤하늘을 수 놓았다. 드론들은 대형을 일사불란하게 바꿔가며, 거대한 드론을 형상화하는가 하면, ‘드론의 영월’이라는 글씨를 공중에 아로새겼다.

2016년 처음 개최돼 올해로 4회째인이 대회는 강원도, 영월군, 국제드론스포츠연합(DSI)이 공동 주최했다. 이번 대회에선 국가 차원에서 연구·개발(R&D)한 새 시스템도 선보였다. 3차원 코스를 빠르게 질주하는 드론의 이동경로를 정확히 추적해 화면에 그래픽으로 구현하는 TV 중계 기술이 대표적이다. 레이싱 장애물이 기존의 투박한 깃발에서 발광 다이오드(LED)가 달린 장애물로 바뀐 점도 흥미로웠다. 이 LED 장애물은 올해 DSI 총회에서 표준으로 채택될 예정이다. 이밖에 1m(축간 길이)급 대형 드론도 선보여 큰 관심을 모았다.

류영호 DSI 사무총장은 “참가 선수들이 서킷의 수준과 첨단 시스템, 체계적인 운영 방식을 극찬했다. 경기장을 가득 메운 관중은 경기와 드론 쇼에 놀랐다. 이번 대회를 계기로 한국은 세계 드론스포츠 트렌드를 이끄는 선도자로서의 입지를 굳혔다”고 평가했다.

영월=피주영 기자 akap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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