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금통위원들 “물가 낮아 고민…금리인하 여력 남아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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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8일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의 한국은행 국정감사에 출석해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변선구 기자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8일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의 한국은행 국정감사에 출석해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변선구 기자

“화폐유통속도가 떨어져서 돈을 풀어도 돌지 않는다. 금리 인하로 경기회복세를 끌어올리는 게 한계가 있는 것 아닌가.”(유승민 바른미래당 의원)

“통화정책 효과가 제약돼있다. 의견을 같이한다.”(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지난 8월 열린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의 한국은행 국감장에서는 이런 질문과 답이 오갔다. 기준금리를 내려 돈을 푸는 전통적인 통화정책으로는 한계가 있음을 한은 총재도 인정한 것이다.

이러한 중앙은행의 고민은 13일 김성식 의원(바른미래당)이 공개한 한은 금융통화위원회실 사전질의 답변서에서도 드러났다. 기준금리를 내려도 실물경제에 큰 효과가 없지만, 그렇다고 물가가 이렇게 낮은 데 금리를 내리지 않을 수 없는 딜레마 상황이다. 답변서는 7인의 금통위원 입장 중 다수의 의견을 중심으로 작성됐다.

이에 따르면 금통위원들은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물가안정목표(2%)를 크게 하회하는 가운데 앞으로도 당분간 낮은 수준을 지속할 것으로 예상되는 점이 통화정책의 큰 고민”이라고 답했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013년 이후 일부 기간(2017년 1~5월과 7~9월, 2018년 10~11월)을 제외하고는 2%를 한참 밑돈다. 9월엔 첫 공식 마이너스 상승률(-0.4%)을 기록하기도 했다.

 금통위원들은 최근 국정감사용 사전질의서 답변에서 "낮은 물가가 통화정책의 큰 고민"이라고 밝혔다. 사진은 8월 30일 열린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 [뉴스1]

금통위원들은 최근 국정감사용 사전질의서 답변에서 "낮은 물가가 통화정책의 큰 고민"이라고 밝혔다. 사진은 8월 30일 열린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 [뉴스1]

금통위원들은 “낮은 물가 오름세엔 국제유가 하락, 정부 복지정책 강화뿐 아니라 글로벌 경제통합과 기술 진보 같은 구조적 요인 영향이 있다”며 “물가가 중앙은행이 통제하기 어려운 요인에 영향받아, 통화정책만으로 대응하긴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답했다.

동시에 “대내외 경제여건의 불확실성과 우리 경제 구조 변화로 통화정책의 실물경제로의 파급효과가 다소 약화됐다”고 지적했다. 경제적 불확실성이 커지면 기업과 가계 모두 신중해지기 때문에 기준금리를 내려도 소비와 투자가 그다지 늘지 않는다. 고령화, 가계부채 증가, 생산성 하락 같은 구조적 변화 역시 기준금리 인하 효과를 제약한다.

그렇다면 물가와 경기를 끌어올리기 위해 기준금리를 더 내릴 필요는 없는 것일까. 금통위원들은 그래도 아직은 기준금리 인하 카드를 쓸 만 하다는 입장이다. 이들은 답변서에서 “현재로써는 정상적인 금리정책으로 대응할 수 있는 여력이 남아있다”며 “제로금리 또는 양적완화 같은 비전통적 정책수단의 시행을 고려할 단계는 아니다”라고 밝혔다. “국채를 매입하는 식의 양적완화는 심각한 경기침체와 디플레이션 발생 우려가 높아지는 경우에 시행할 수 있다”며 선을 그었다. 제로금리 역시 기축통화국이 아니기 때문에 자본유출 압력을 키울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럼 한국은행은 기준금리를 어디까지 내릴 수 있을까. 한은은 통화정책이 효과를 볼 수 있는 ‘실효하한’을 내부적으로 추정 중이다. 앞서 이주열 총재는 8일 국감에서 “영국 영란은행은 소폭의 플러스 금리를 실효하한이라고 얘기한다”며 “한국은 기축통화국이 아니므로 그런 나라보다는 실효하한이 높을 수 있겠다”고 언급한 바 있다. 시장 전문가들은 한국의 실효하한이 0.75~1.0%로 보고 있다. 만약 16일 예정된 한은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기준금리를 1.25%로 인하한다면, 실효하한까지 한번 또는 두 번 밖에 남지 않는 셈이다.

그러나 한은이 실효하한을 추정해도 이를 외부에는 공개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이날 답변서에 따르면 추정치 공개를 두고 금통위원의 의견이 갈렸다. 일부 금통위원은 시장과 소통하자는 의견이지만 다른 일부 위원은 추정의 불확실성 때문에 구체적인 추정치를 밝히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한애란 기자 aeyan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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