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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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독일 전설에 이런 얘기가 있다. 빌리라는 요정은 결혼을 앞두고 바람기 있는 만인에 의해 버림을 받았다. 춤을 좋아하던 그 요정은 스스로 목숨을 끊고도 생전에 춤을 추던 열정과 연인에의 복수심을 버리지 못했다. 무덤 속에서도 그는 편안히 잠들 수 없었다. 밤이면 무덤을 헤치고 나와 숲을 무대로 춤을 추고, 젊은이를 잡아다가 그가 지쳐 죽을 때까지 함께 춤을 추곤 했다.
이 전설에 반한 시인 하이 네는 서정시인답게 빌리를 더 한층 극적으로 묘사했다.
『요정들은 눈부신 흰 드레스를 입고 머리엔 화관을 얹고 손가락엔 빛나는 반지를 끼고 엘프(작은 요정)들처럼 달빛을 받으며 춤을 춘다. 그것은 환상 아닌 슬라브 특유의 춤이었다. 그의 얼굴은 눈처럼 희고 그의 젊음 또한 그지없이 아름다웠다. 그들은 오묘한 미소를 지으며 환희를 찾고 있었다. 『레 미제라블』의 작가 빅토르 위고도 그의『동방시집』에서 「유령」이라는 제목으로 비슷한 내용의 시를 쓴 일이 있었다. 프랑스의 낭만파시인 고티에는 이들 문호의 시에 마음이 끌려 발레대본을 쓰기로 작심했다. 바로 그것이 오늘 로만틱 발레의 최고걸작으로 불리는『지젤』이 되었다.
발레『지젤』을 두고 시와 극과 언어가 어울린 회화적인 작품이라고 평한다. 당대의 괴테, 스코트, 위고, 베르트랑과 같은 낭만파 문호들은 모두 이 작품에 환호와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더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사람들은 발레리나 자신들이다. 발레리나 치고『지젤』의 무대에 한번 등장해 보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그래야 비로소 최상의 발레리나 캐리어를 갖게 된다고 믿는다.
존 그룬의 명저『발레의 세계』에는 이런 얘기가 있다. 미국 최대의 발레리나 나탈리아 마카로바가『지젤』에 등장할 때의 일이다. 『그때 무대에 발을 딛는 순간, 별안간 저의 몸과 머리와 팔과 음악은 하나가 되었어요. 다른 것은 생각나는 것이 하나도 없어요. 저는 무대를 가득 메운 한 폭의 그림을 생각했지요. 그 순간의 행복감이라니…. 저는 저의 몸밖에서가 아니라 저의 몸 안에서 춤을 추고 있었지요.』
그『지젤』이 머지않아 서울에서 헝가리 국립발레단의 공연으로 볼 수 있게 되었다. 풀 멤버의 동구 발레를 보는 것도 인상적이지만「세계는 하나」를 실감하는 즐거움 또한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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