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시내 고시원 직접 가보니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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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 8명이 사망한 서울 잠실동 나우고시텔 화재현장에서 20일 경찰과 소방당국이 현장감식을 하고 있다. 신인섭 기자

"여기 사람들 대부분은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일용직 근로자들이지요. 뉴스를 보고는 불안한 듯 잠깐 두런거리긴 했지만 깊이 생각할 여력들은 없어요."(D고시원 총무 김모씨)

20일 오후 서울 용산구 동자동 고시원 골목. 서울역에서 도보로 10분 거리인 이곳은 낡은 간판을 단 고시원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취재진이 찾아간 D고시원은 4층짜리 건물의 3~4층을 쓰고 있다. 층마다 어른 한 명이 겨우 지나갈 만한 좁은 통로가 나 있고, 양쪽으로 1~2평짜리 방 30여 개가 다닥다닥 붙어 있다. 건물을 지은 지가 30년이 돼 곳곳에서 퀴퀴한 냄새가 난다. 방 안은 나무합판 책상 밑으로 발을 뻗어야 겨우 누울 만한 공간이다. 월세는 시내에서 비교적 저렴한 수준인 20만~22만원. 말이 고시원이지 고시생은 거의 없다. 입주자 대부분은 일용직 근로자며, 간혹 근처 학원을 이용하는 지방의 재수생이나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 과거 공단 지대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쪽방이 21세기에 재등장한 셈이다.

◆ 21세기판 쪽방=고시원은 1980년대 초반 서울대 주변의 신림동에서 처음 생겨났으며 90년대 들어 다른 대학가 주변으로 확산됐다. 원래는 고시생들을 위한 1인 주거시설이었으나 외환위기 이후 도시빈민.자취생 등이 주거비 절감을 위해 애용하는 시설로 성격이 달라졌다. 성냥갑만 한 방에 화장실.샤워실을 공동으로 사용한다. 현재 운영 중인 고시원은 서울에 2800여 곳, 전국적으로 4211곳에 달한다. 고시원이란 명칭 외에 고시텔.원룸텔 등의 간판을 내걸며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풍기려고 하는 곳도 많지만 기본 형태는 차이가 없다.

◆ 소방안전 사각지대=문제는 이번 나우고시텔 참사에서 드러났듯 고시원에 화재 대피 시설이 취약하다는 점이다. 동자동 D고시원의 경우 소화기가 한 층에 네 개, 복도 끝 계단에 설치된 소화전의 비상벨이 전부다. 벽면도 불연재가 아니라 일반 나무 합판이며 정전에 대비한 손전등도 보이지 않는다. 비상구도 없다. 대신 출입구 옆 창고 방에 도르래 모양의 완강기가 붙어 있다. 화재 발생 시 비상탈출용으로 설치한 것이나 30여 개 방에서 입주자들이 일제히 쏟아져 나올 경우 모든 사람이 이 완강기 하나로 탈출하라는 것은 억지에 가깝다. 3개월째 거주하고 있는 이모(28.보험회사 직원)씨는 "불이 난 고시원보다 오히려 여기가 더 시설이 열악할 텐데 마음이 편치 않다"고 말했다.

잠실 고시텔 화재 참사를 계기로 취재진이 이날 서울 시내 고시원 9곳을 방문해 소방시설을 점검해 본 결과 소방법 개정안에 따라 안전시설이 제대로 설치된 곳은 단 한 곳뿐이었다. 신림9동 R고시원 임모(45)사장은 "사고가 자주 나는 것도 아니라 설마 하는 생각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고 털어놨다.

내년 5월 시행되는 소방법 개정안에 따르면 고시원에는 소화기.휴대용비상등.비상벨 등을 방마다 구비해 둬야 한다.

권근영 기자, 박대규.연규리.유은영 인턴기자<young@joongang.co.kr>
사진=신인섭 기자 <shini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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