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구에 총을 든 군인이 서 있었어요. 우리와 눈도 안 마주쳐서 마네킹인줄 알았어요.”
15일 평양서 북한과 월드컵 예선 #2년 전 뛴 이민아 “축구 아닌 전쟁”
2년 전 북한 평양에서 경기를 치러본 한국여자축구대표팀 미드필더 이민아(28·고베 아이낙)의 이야기다. 선수들이 입장하기 전에 대기하는 터널에서 본 관경이라고 했다.
한국남자축구대표팀은 오는 15일 오후 5시30분 평양의 김일성경기장에서 북한과 2022년 카타르월드컵 아시아 2차예선 3차전을 치른다. 남자축구의 평양 원정은 1990년 통일축구 이후 29년 만이다. 앞서 여자대표팀이 2017년 4월7일 김일성경기장에서 북한과 아시안컵 예선전을 치른 적이 있다. 당시 이민아가 본 터널을 손흥민(27·토트넘)도 통과할 것이다.
서울을 출발해 직항로나 육로를 이용하면 평양까지 2~3시간이 걸린다. 북한은 아직 이동경로와 관련해 별도의 언급이 없다. 현재로서는 한국남자대표팀이 13일 중국 베이징에서 하루 묵으며 비자를 받고, 14일부터 2박3일 일정으로 방북할 가능성이 크다.
이민아는 8일 중앙일보와 전화 인터뷰에서 “여자대표팀도 2년 전 중국을 경유했다. 중국 호텔에서 웨이트트레이닝을 했고, 경기 이틀 전 북한으로 들어갔다. 비행기가 지연돼 경기 전날에야 첫 훈련을 할 수 있었다. 돌아오는 비행기도 많이 지연됐다”고 전했다.
북한 호텔에는 도청장치가 있다는 말이 있다. 이민아는 “혹시나 해서 혼잣말로 ‘수건 좀 갖다 주세요’라고 외쳐봤다. 우연인지 모르겠지만 5분 후 청소하는 분이 노크 하더니 수건을 주셨다”고 했다. 당시 여자대표팀은 주중 한국대사관에 휴대폰을 반납한 뒤 북한에 갔다. 훈련과 경기 외에는 외출할 수가 없어서 호텔 주위에서 태블릿PC로 사진 몇 장만 찍었다.
여자대표팀은 1-1로 비겨 2019 여자월드컵 1차예선을 통과했다. 북한은 탈락했다. 이민아는 “축구가 아니라 전쟁이었다. 월드컵 티켓이 걸려있어서 죽기 살기로 뛰었다”고 했다. 당시 한 북한선수가 “죽이고 나가자”고 소리쳤다. 그러자 지소연(첼시)이 “우리도 죽이자”고 받아칠 정도로 분위기가 살벌했다고 한다.
김일성경기장은 ‘원정팀의 무덤’이다. 북한남자축구는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113위에 불과하지만, 2005년 이란에 패한 이후 14년째 이곳에서 진 적이 없다. 여기서 사우디아라비아와 일본도 무릎을 꿇었다. 5만여 명의 관중의 열성적인 응원과 군무가 원정 선수들을 압도한다. 천연잔디가 아닌 인조잔디가 깔린 점도 상대 선수들을 당황하게 한다.
이민아는 “우리가 경기장에 나갈 땐 조용했는데, 북한 선수들이 나오니 응원소리가 어마어마했다. 인조잔디는 길고 딱딱했다”며 “정신력이 중요하다. 우리 남자선수들은 경험이 많다. 기량도 북한보다 좋은 만큼 충분히 이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전에 앞서 한국은 10일 오후 8시 화성종합경기타운 주경기장에서 스리랑카와 2차전을 치른다. 8일 파주 축구대표팀 트레이닝센터에서 만난 공격수 황의조(27·보르도)는 “(평양 원정은) 당연히 특수성이 있다. 하지만 월드컵으로 가는 길 중 하나”라고 말했다. 16세 대표팀 시절 북한을 상대로 해트트릭을 기록했던 공격수 황희찬(23·잘츠부르크)은 “당시 북한은 굉장히 강했고 거칠었다”고 떠올렸다.
파주=박린 기자 rpark7@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