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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안 다니는데도 보육료 ‘꿀꺽’…보조금 12만건 줄줄 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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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집 원장 A씨는 어린이가 해외로 출국했지만 계속 어린이집에 다니는 것처럼 서류를 꾸며 보육료를 타다 적발됐다. 그가 이런 방식으로 허위 등록해 정부로부터 타낸 기본보육료는 1억원에 달했다.

B씨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현금으로 월급을 받았지만 소득 신고를 하지 않고 4대 보험에도 가입하지 않았다. 그는 소득이 있음에도 법적으로 ‘무직자’ 행세를 하며 각종 복지 지원을 받다가 꼬리가 잡혔다.

병원 대표 C씨는 서류상으로만 존재하는 ‘유령 직원’을 만들어내 보조금을 챙겼다. 그는 응급실에 근무하지 않는 인력을 응급실에 근무한 것처럼 속였고 건강보험급여비 등 11억원을 받았다.

자료: 기획재정부

자료: 기획재정부

정부가 이런 보조금 부정수급을 차단하기 위해 시스템을 대폭 손질한다. 정부 보조금이 눈먼 돈처럼 줄줄 새고 있다는 비판에서다. 정부는 8일 대통령 주재 국무회의에서 ‘보조금 부정수급 관리강화 방안’을 논의ㆍ확정했다.

이에 따르면 올해 1~7월에 부정수급은 12만869건(국고보조금 11만9511건, 지방보조금 1358건)에 달했다. 이는 지난해 1~12월에 적발된 부정수급 건수의 3배로 불어난 수치다. 금액은 총 1854억원으로 이 가운데 647억원을 환수하기로 확정했으며, 나머지 금액도 환수를 추진 중이다. 지난해 한 해 환수 결정액이 388억원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부정수급액도 급증했다.

분야별 국고보조금 환수 결정액은 고용 368억원(61.2%), 복지 148억원(24.6%), 산업 53억원(8.8%), 농림수산 16억원(2.7%) 순이다. 고용ㆍ복지 예산이 늘어나면서 일자리안정자금을 비롯한 보조금에 관리ㆍ감독 사각지대가 발생한 것으로 풀이된다.

보조금을 쌈짓돈처럼 챙긴 양심불량 수급자들의 수법은 다양했다. 저소득층에 지원하는 단열ㆍ창호 교체 보조금을 편취하기 위해 시공업체는 있지도 않은 가구를 사업대상으로 넣은 뒤 허위 공사 사진을 제출하는 식으로 보조금을 탔다. 도시에 사는 사람이 실제로는 직장에 계속 다니면서, 귀농한 것처럼 꾸며 귀농·귀촌 자금을 수령하기도 했다.

기초연금 수급자가 사망하거나 실종되면 기초연금을 받지 못하지만 가족이 신고하지 않으면 확인이 어렵다. 남은 가족이 이대로 계속 연금을 수령하는 사례도 적지 않았다. 복수국적자는 한국 여권과 외국 여권 두 가지를 가지고 있는데, 외국 여권을 이용해서 입출국하면 국내 체류 기간이 정확히 파악이 안 돼 몸은 외국에 있으나 기초연금을 지급받는 사례도 있다.

이외에도 이미 다니던 회사에 신규 취업한 것으로 위장해 청년내일채움공제에 가입하거나, 난방용으로 써놓고도 화물차 주유용으로 쓴 것처럼 결제해 유가보조금을 부정으로 받은 경우도 적발됐다.

자료: 기획재정부

자료: 기획재정부

정부는 이런 보조금 부정수급을 뿌리 뽑기 위해 현재 2억원인 신고포상금 상한을 폐지하고, 부정수급 환수액의 30%를 신고자에게 지급할 계획이다. 또 부정수급 적발 확대를 위해 특별사법경찰과 시도별 보조금 전담 감사팀을 설치, 연중 무작위 불시점검과 집중단속에 나서기로 했다.

관련 지침 개정을 통해 고의나 거짓으로 보조금을 부정수급한 혐의를 확인한 경우 담당 공무원은 바로 수사기관에 고발할 계획이다. 현행 보조금법에 따르면 부정수급을 하면 최대 10년 이하의 징역이나 1억원 이하의 벌금을 받는다.

관련법 개정을 통해 내년 하반기부터는 신고자에 대한 비밀보장, 신변보호, 불이익조치 금지 등 보호 강화를 위해 부정수급 신고자를 공익신고자 보호 대상에 추가할 계획이다. 또 통합수급자격 검증시스템을 구축해 부정수급자를 향후 모든 국고보조 사업에서 배제하고 보조사업 시공 납품 계약업체가 부정수급에 공모한 경우 일정 기간 보조사업 참여 자격을 제한하는 등 제재를 강화하기로 했다.

정부는 확장적인 재정 기조 속에 예산이 부정하게 의도치 않는 곳에 쓰이는 부정수급을 근원적으로 뿌리 뽑기 위해 이런 방안을 마련했다고 강조했다.

세종=손해용 기자 sohn.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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