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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비오 신부와 헬기 사격 봤다” 천주교 신도 전두환 재판 출석

중앙일보

입력

5·18 민주화운동 당시 고(故) 조비오 신부와 같은 공간에서 헬기 사격을 목격했다는 천주교 신도의 증언이 전두환 전 대통령의 사자명예훼손 재판에서 처음으로 나왔다. 조비오 신부는 지난 1989년 국회 광주 진상조사특위, 1995년 검찰 조사 등을 통해 계엄군의 헬기 사격을 증언해왔지만, 또 다른 목격자는 언급하지 않았었다.

전두환 전 대통령

전두환 전 대통령

광주지법은 7일 형사8단독 장동혁 부장판사 심리로 전 전 대통령에 대한 사자명예훼손 재판을 진행했다. 이날 증인으로 출석한 이광중(72)씨는 "1980년 5월 21일 오후 1시 넘어서 조비오 신부와 함께 헬기 사격을 봤다"고 했다.
전 전 대통령은 2017년 4월 펴낸 자신의 회고록에서 헬기 사격을 증언해온 조비오 신부를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고 표현해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됐다. '헬기 사격 여부'가 이 재판의 쟁점이다.

"1980년 5월 21일 오후 1시 넘어서 헬기 사격 목격" #"총소리 직후 조비오 신부가 부르는 소리에 나가봐"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전두환 전 대통령에 대한 일곱번째 공판기일이 열린 7일 오후 광주법원에서 증인으로 출석한 이모씨가 재판을 마치고 법원을 나서고 있다. [뉴스1]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전두환 전 대통령에 대한 일곱번째 공판기일이 열린 7일 오후 광주법원에서 증인으로 출석한 이모씨가 재판을 마치고 법원을 나서고 있다. [뉴스1]

이씨의 증언에 따르면 조비오 신부는 헬기 사격을 목격한 이 날 낮 12시를 넘겨 호남동성당을 찾았다. 이씨는 조비오 신부가 호남동성당에 머무는 동안 '전두환 물러가라'는 내용의 현수막을 제작하고 있었다.
이씨는 조비오 신부가 먼저 헬기 사격을 목격한 것으로 기억했다. 이씨는 "갑자기 '탕탕탕'하는 기관총 소리가 들린 순간 뒤를 돌아봤는데 조비오 신부가 '보스코(이씨의 세례명) 총무 이리 와보소'라고 불렀다"며 "나가봤더니 호남동성당에서 약 100m 떨어진 불로동 다리 위에 헬기가 떠 있었고 광주천을 향해 사격했다"고 말했다.

이씨는 "빠르게 연사하는 총소리를 2번 들었고 공중에 멈춰있는 헬기의 총구에서 화염을 봤다"고 했다. 이씨는 당시 목격한 헬기의 기종은 정확히 몰랐고 '원형'과 '국방색'이란 특징만 기억했다. 이씨는 전 전 대통령의 변호인 정주교 변호사가 공격형 헬기 500MD와 수송용 헬기 UH-1H 사진을 보여주자 500MD를 자신이 목격한 헬기라고 지목했다.
정 변호사가 "지상에서 나는 총소리와 헬기 사격을 착각할 가능성은 없냐"고 물었다. 이씨는 "굉장히 빠른 속도로 총소리가 났기 때문에 일반 총소리와는 다르다"고 답했다. "헬기 사격을 목격한 또 다른 사람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단둘이서만 봤다"고 했다.

이씨는 "조비오 신부와 달리 왜 헬기 사격을 증언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대해 "1980년 5월 25일께 부인이 서울에서 출산하게 돼 광주를 빠져나갔는데 도망쳤다는 오해를 받아 5·18을 잊고 싶었다"고 답했다.
이씨는 10년 전 우연히 마주친 조비오 신부의 조카 조영대 신부에게 "조비오 신부와 함께 헬기 사격을 목격했었다"고 말했었다. 이씨의 전 전 대통령 재판 출석은 이씨의 증언을 잊지 않은 조영대 신부의 요청에 이뤄졌다.

이날 재판에는 5·18 당시 시민군 상황실장 박남선(65)씨와 1980년 5월 27일까지 옛 전남도청에 남았던 시민군 김인환(60)씨도 증인으로 출석했다. 박씨는 "1980년 5월 27일 새벽 전일빌딩 상공에 정지한 헬기에서 총소리와 불빛을 봤고 5~10분 뒤 계엄군이 도청에 진입했다"고 증언했다. 김씨는 "도청 상공에 뜬 헬기에서 군인이 로프를 타며 하강하던 순간 옆에 있던 친구가 총을 맞았다"며 "주변은 막혀있어 총을 쏠 수 있는 곳은 헬기밖에 없었다"고 했다.

광주광역시=진창일 기자 jin.changi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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