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펀드·보험에 맛들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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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시중은행의 간판을 '금융 종합상사'로 바꿔 달아야 할 판이다.

자체 예금.대출 상품보다 다른 금융사에서 수수료를 받고 대신 팔아 주는 위탁판매 상품을 더 많이 취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상품 수로는 전체의 80%가 넘는다.

이는 은행들이 수익처 다변화를 내세워 최근 1~2년 새 펀드.보험 등 판매 수수료가 짭짤한 타금융사 상품 판매를 앞다퉈 늘린 데 따른 것이다.

판매경쟁이 심화하면서 부작용도 커지고 있다. 금융상품의 특성이나 정보를 고객에게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 채 파는 '불완전 판매'가 가장 심각한 문제다. 여기에다 은행의 안정성이 흔들릴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20일 "은행이 방카슈랑스 등 보험업을 확대할수록 이익은 늘지만 안정성은 크게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경고했다.

◆은행이 증권사?=국민.신한.우리.하나.한국씨티 등 주요 5개 시중은행이 취급하는 금융상품(ELS 등 파생상품 제외)은 총 1075개에 달한다. 이 중 은행권 예.대출 상품 등 자체 품목은 193개(17.95%)로, 전체 취급상품의 5분의 1에도 못 미친다.

반면 주식형 펀드 등 간접투자 상품은 전체 판매 상품의 55.81%(600개)에 이른다. 증권사가 주로 설계하는 주가연계증권(ELS)도 상반기에만 이들 5개 은행 창구에서 55개나 판매됐다.

은행에 위탁 상품은 중요한 수수료 수입원이다. 주식형 펀드 판매 수수료는 평균 1.7%(펀드 순자산 기준), 방카슈랑스 보험 역시 2~3%(보험료 기준)에 달한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국내 은행의 총이익 중 비이자 수익 비중이 여전히 미국 은행보다 20%포인트 낮은 40%에 그치고 있어 취급 상품을 더욱 늘려야 할 상황"이라며 "은행의 취급 상품이 늘어나는 것은 고객에게도 좋은 일"이라고 말했다.

◆판매의 질을 높여야=은행이 다양한 상품들을 제대로 소화할 능력이 안 된다면 고객에게 되레 피해가 갈 수 있다. 판매상품에 대한 확실한 안내를 해 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은행의 위탁상품 판매가 양적으로 팽창하곤 있지만 질적인 수준이 뒷받침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금융감독원 정갑재 팀장(자산운용감독국)은 "은행권의 펀드 불안전 판매와 관련된 문제가 아직 개선되지 않고 있다"며 "조만간 '표준판매행위 준칙'을 제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 금융연구원 이명활 금융시장팀장은 "은행권에서 파는 금융상품의 구조가 갈수록 복잡해지고 있다"며 "개별 은행은 물론 업계 차원의 판매 교육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표재용 기자, 김정혁 인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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