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대생' 박기동은 대구와 비상을 꿈꾼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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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동이 대구FC의 사상 첫 스플릿 라운드 상위 그룹행을 확정하는 골을 넣었다. [사진 프로축구연맹]

박기동이 대구FC의 사상 첫 스플릿 라운드 상위 그룹행을 확정하는 골을 넣었다. [사진 프로축구연맹]

"이 한 골은 제 축구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될 것입니다."

대구 구단 첫 상위스플릿 이끈 골 #"제주전 골, 인생 터닝포인트 될 것" #태극마크 달아준 조광래 믿고 입단 #"팀 목표 챔피언스리그 티켓 도전"

프로축구 대구FC의 임대 공격수 박기동(31)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동안 쌓인 마음의 짐을 내려놓은 듯한 목소리였다. 박기동은 28일 열린 K리그1(1부 리그) 정규리그 32라운드 제주 유나이티드와의 홈 경기에서 1-2로 뒤진 후반 47분 극적인 동점골을 터뜨렸다. 대구 입단 후 5경기 만에 터진 첫 골(시즌 2호골).

박기동의 골로 2-2로 비긴 대구(승점 47)는 상·하위 스플릿을 결정하는 33라운드까지 2경기를 남긴 7위 상주 상무(승점 40)와 승점 차를 7로 벌리면서 구단 역사상 첫 상위 그룹(1~6위)을 확정했다. 경기 후 박기동은 본지 통화에서 "이번 골은 지금까지 내가 넣은 골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라며 "대구에서 처음 넣은 골이자, 상위 그룹을 확정하는 골을 넣어 기쁘고 영광"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박기동은 올 시즌을 앞두고 수원 삼성에서 경남FC 유니폼을 갈아입었다. 맹활약을 다짐했지만, 전반기 7경기 1골로 기대 이하의 성적에 그쳤다. 여름 이적시장을 통해 임대 이적한 대구는 출전 기회를 잡기 위해 선택한 대안이었다. 당시 대구는 주전 공격수 에드가의 부상으로 대체자가 필요했다. 무엇보다 대구엔 그에게 태극마크를 달아준 조광래 사장이 있었다. 박기동은 광주FC에서 뛰던 2011년 처음이자 마지막 A매치(온두라스전)에 출전했는데, 당시 축구대표팀 사령탑이 조광래 감독이었다.

박기동은 "경남에서 자신감이 떨어진 상태였는데, 8년 만에 다시 만난 조광래 사장님의 한마디에 도전할 수 있었다"며 "'대구엔 젊은 선수들이 많은데, 잘 이끌어달라'고 하셨는데, 그 말이 동기부여가 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대구 적응기도 순탄치 않았다. 입단 후 첫 두 경기인 FC서울·수원전에 선발로 나서서 골을 넣지 못한 그는 에드가가 부상에서 복귀하면서 후보로 밀렸다. 박기동은 숙소 생활을 자원했다. 따로 집을 구하는 것보다 숙소 생활이 운동량과 식단 관리에 도움이 될 거라고 판단했다. 박기동은 "대구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이지 못하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독하게 마음 먹었다"며 "사소한 것부터 지켜나가며 오직 컨디션 유지에만 집중했다"고 털어놨다.

이후 2경기에서 5~10분 정도의 기회만 얻던 박기동은 이날도 후반 23분이 돼서야 그라운드를 밟았다. 하지만 이번엔 그냥 물러나지 않았다. 그는 패색이 짙던 후반 추가시간 오른쪽에서 넘어온 크로스를 가슴으로 트래핑한 뒤, 오른발 인사이드로 침착하게 제주 골망을 갈랐다. 박기동은 "가슴 트래핑 후 슛은 그동안 내가 수천 번 연습했던 상황으로 가장 자신 있었다"며 웃었다.

자신감을 회복한 박기동은 대구와 함께 더 높은 곳을 바라본다. 그는 "홈팬의 뜨거운 응원으로 활력 넘치는 구장에서 첫 골로 그동안 마음의 짐을 조금이나마 내려놓았다"면서 "팀의 목표가 곧 나의 목표인데, 꼭 3위를 해서 내년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티켓을 따내겠다"고 다짐했다. 골 욕심은 없냐고 묻자 "단 1분을 뛰든, 골과 어시스트 가리지 않고 희생하겠다"고 했다.
피주영 기자 akap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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