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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파 던질 권리?…성희롱 당하고도 돈 물어내야할 佛 여성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성희롱 피해 사실을 트위터에 밝힌 한 프랑스 여성 언론인이 명예훼손 소송에서 패소한 가운데, 성희롱 가해자가 “추파를 던질 권리”를 주장했던 사실이 알려지며 논란이 일고 있다.

프랑스 기자 7년 전 성희롱 사건 #"가슴 크다" "오르가즘 줄게" 발언에 #"추파 던질 권리"라며 변호한 가해자 #트위터에 가해자 실명·직장 공개하자 #법원 "명예훼손, 1만5000유로 위자료 줘라"

2012년 성희롱 피해를 겪은 뒤 이를 SNS에 알린 프랑스 출신 여성 언론인 상드라 뮐러가 25일 명예훼손 소송에서 패소 판결을 받은 뒤 기자회견에 나선 모습. [EPA=연합뉴스]

2012년 성희롱 피해를 겪은 뒤 이를 SNS에 알린 프랑스 출신 여성 언론인 상드라 뮐러가 25일 명예훼손 소송에서 패소 판결을 받은 뒤 기자회견에 나선 모습. [EPA=연합뉴스]

프랑스 파리민사법원은 25일(현지시간) 성희롱 당한 사실을 자신의 트위터에 올리며 가해자의 실명을 공개한 프랑스 출신의 기자 상드라 뮐러에게 위자료와 소송비용 등 총 2만유로(약 2600만원)를 지급하라고 결정했다고 르 피가로 등 프랑스 언론이 전했다.

또 법원은 뮐러에게 문제의 트윗을 지우고, 명예훼손 소송에서 패소했다는 사실을 언론에 알릴 것을 요구했다.

뮐러는 2012년 프랑스 깐느에서 열린 한 TV 페스티벌 자리에서 프랑스의 유명 방송 프로듀서 에릭 브리옹에게 성희롱 피해를 당한 뒤, 2017년 자신의 트위터에 브리옹의 이름과 함께 피해 사실을 밝혔다.

2012년 여성 언론인을 성희롱한 사실이 SNS에서 폭로돼 명예훼손 소송에 나선 에릭 브리옹이 지난 25일 승소 판결을 받은 뒤 언론과 인터뷰하고 있는 모습. [사진 RTL 캡처]

2012년 여성 언론인을 성희롱한 사실이 SNS에서 폭로돼 명예훼손 소송에 나선 에릭 브리옹이 지난 25일 승소 판결을 받은 뒤 언론과 인터뷰하고 있는 모습. [사진 RTL 캡처]

이때 성범죄 가해자를 세상에 알리자는 취지로 뮐러가 만들어낸 '발랑스통포크'(balancetonporc) 해시태그는 수천번 리트윗되며 프랑스판 미투 운동으로 회자되기도 했다. '발랑스통포크'는 '너의 돼지를 폭로하라'라는 뜻으로, 프랑스에서 '돼지'(porc)는 성적으로 행실이 바르지 못한 남성을 속되게 이르는 용어다.

뮐러는 당시 트위터에 “돼지를 폭로하세요. 직장 내 성폭력 피해 경험과 함께 가해자 이름을 공유해주세요”라고 썼다. 몇 시간 후에는 “당신은 큰 가슴을 가졌다. 당신은 내 타입이다. 내가 밤새도록 당신에게 오르가즘을 주겠다”는 글과 함께 브리옹이 자신에게 이처럼 말했다며 그의 실명과 과거 직장도 공개했다.

산드라 뮬러의 2017년 트윗. 뮬러는 이 트윗을 통해 가해자인 브라이온에게 들은 성희롱 발언이 무엇이었는지 밝히며 브라이온의 이름과 전 직장을 공개했다. [사진 트위터]

산드라 뮬러의 2017년 트윗. 뮬러는 이 트윗을 통해 가해자인 브라이온에게 들은 성희롱 발언이 무엇이었는지 밝히며 브라이온의 이름과 전 직장을 공개했다. [사진 트위터]

영국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브리옹과 그의 변호인단은 지난 5월에 열린 재판에서 “추파를 던질 권리(right to flirt)”를 행사한 것뿐이라고 변론했다. 브리옹은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 등에서 “부적절한 방식으로 접근한 것은 맞지만, 성적으로 괴롭히려는 의도는 없었다. 그녀가 마음에 들어서 그렇게 말했을 뿐”이라고 항변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나는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했다. 뮐러에게 거절당한 뒤에는 그와 같은 말을 두 번 다시 꺼내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결국 자신의 ‘도의적’ 잘못을 인정하면서도 뮐러를 명예훼손죄로 고소한 것이다.

브리옹은 뮐러가 트위터에 “당신도 직장 내 성폭력 피해를 겪었다면 공유해달라”고 쓴 것을 문제 삼기도 했다. 이 문장의 뉘앙스 때문에 자신이 직장에서의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하급자인 뮐러를 성희롱한 것처럼 오독됐지만, 뮐러와 자신은 함께 일한 적이 없다는 주장이다.

뮐러는 지난 5월에 열린 재판에서 그와 같은 폭로는 표현의 자유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법정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그들의 피해 사례를 공유하도록 격려하기 위해 트윗을 올린 것”이라며 “성적 모욕은 심각하게 받아들여져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25일 법원은 뮐러가 트위터에 브리옹을 가리켜 ‘돼지’(porc)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 등을 문제 삼았다. “표현의 자유를 넘어 인신공격으로 변질됐다”며 브리옹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NYT는 뮐러가 트위터에 브리옹의 실명을 거론했고 SNS의 특성상 이와 같은 폭로는 가해자의 방어권을 심각하게 해칠 수 있다는 점을 법원이 고려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뮐러는 이날 패소 판결을 받은 후 페이스북에 "끝까지 법적 싸움을 이어나갈 것이다. 이번 재판이 성폭력과 어떻게 싸울 것인지에 대한 진정한 토론의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고 썼다. 또 재판 결과에 대해서는 “표현의 자유에 대한 억압이며 여성들에게 재갈을 물리는 시대착오적 판결”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언론에 항소하겠다고 밝혔다.

프랑스의 유명 여배우 까뜨린느 드뇌브가 지난 9월 북프랑스 영화제에 참석한 모습. [AFP=연합뉴스]

프랑스의 유명 여배우 까뜨린느 드뇌브가 지난 9월 북프랑스 영화제에 참석한 모습. [AFP=연합뉴스]

프랑스에서 ‘추파를 던질 권리’에 대한 논란이 일어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프랑스 여배우 까뜨린느 드뇌브는 미투 운동이 한창이던 지난해 1월 “성폭행은 범죄지만 서툰 유혹은 범죄가 아니다”며 “사전 동의가 없는 구애 행위를 전부 성폭행으로 몰아가면 성적인 자유가 오히려 축소된다”고 주장했다.

이에 호주 출신 칼럼니스트 반 배댐이 영국 일간 가디언에 드뇌브의 주장에 반박하는 칼럼을 써 화제가 되기도 했다. 배댐은 “우리에겐 부적절한 성행위와 집요한 구애를 혼동하지 않을 정도의 통찰력은 있다”며 “나뿐만 아닌 성적인 접촉에 불쾌감을 느끼는 다른 모든 여성도 그렇다”고 일침했다.

홍지유 기자 hong.jiy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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