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닥 친 크루거 신한동해오픈 ‘힐링’의 우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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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신한동해오픈 우승자 제이비 크루거가 우승트로피를 가리키며 기뻐하고 있다. [뉴시스]

신한동해오픈 우승자 제이비 크루거가 우승트로피를 가리키며 기뻐하고 있다. [뉴시스]

아시안 투어는 골프 선수에게 오아시스 같다. PGA 투어나 유러피언 투어 등 엘도라도로 가려고 하는 야심 만만한 젊은이가 거치는 실크로드의 거점이다. 빅 리그에서 좌절을 겪은 이들이 상처를 치유하며 재기를 노리는 곳이기도 하다.

합계 15언더파, 세계 743위 반전 #한때 유러피언 투어 선수로 활약 #스윙 고치다 슬럼프, 자신감 찾아 #재미교포 김찬 13언더파 준우승

제이비 크루거(33·남아공)가 22일 인천 베어즈베스트 청라 골프장에서 열린 신한동해오픈 최종라운드에서 6언더파 65타를 쳐, 합계 15언더파로 우승했다. 한때 유러피언 투어 선수였던 그는 세계 743위까지 밀려났는데, 이번에 다시 반등을 위한 ‘힐링’의 샘물을 찾았다. 우승 상금은 2억1600만원이다.

이번 대회는 사상 처음 아시아 3개 투어(코리안 투어, 아시안 투어, 일본 투어)가 공동 주관했다. 3대 투어 선수들을 비교할 기회였다. 코리언 투어 소속 선수는 53명 중 20명(38%)이 컷을 통과했다. 아시안 투어는 44명 중 23명(52%), 일본 투어는 41명 중 22명(54%)이 컷을 넘어섰다. 일반적으로 상금이 많은 투어일수록 수준이 높다. 올해 시즌 총상금은 코리안 투어 143억원, 아시안 투어 250억원, 일본 투어 330억원(PGA 투어 조조 챔피언십 제외) 정도다.

싱가포르에 본부가 있는 아시안 투어는 상금 구성이 복잡하다. 굵직한 대회는 대부분 유러피언 투어와 공동 주관 대회다. 코리안 투어, 일본 투어와도 공동 주관 대회를 한다. 순수 아시안 투어 대회는 대부분 상금 3억원 정도의 작은 대회다. 그린 등 경기장 조건이 말끔한 일본 투어와는 달리, 아시안  투어는 코스 관리가 완벽하지 않다. 실제 상금도 많지 않아 선수들 생활도 윤택하지 않다. 신한동해오픈 관계자는 “외국 선수에게 공식 호텔을 싸게 이용할 기회를 줬는데, 일본 선수들은 방을 두 개 잡아 매니저까지 자게 하는 경우가 많았다. 반면 아시안 투어 선수는 대부분 공식 호텔을 이용하지 않고 더 저렴한 숙소를 이용했다”고 말했다.

한 골프계 관계자는 “아시안 투어 공동 주관은 거칠게 표현하면 남의 집 밥상에 숟가락 하나 얹어서 경기하는 셈이다. 전 세계에서 온 선수들이 대회를 찾아 동남아는 물론, 한국과 일본, 호주까지 다닌다. 어떤 환경에서든 살아남아야 하므로 적응력은 좋다”고 평가했다. 신한동해오픈은 2016년부터 아시안 투어 공동 주관으로 진행했는데, 4번 중 3번을 아시안 투어 선수가 우승했다.

크루거는 아시안 투어의 전형적인 선수다. 크루거는 “경기를 따라 세계를 돌아다니는 게 프로골퍼의 인생”이라며 “한국 등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는 잔디도, 날씨도 다르다. 그래도 살아남으려면 적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남아공 출신인 그는 단신(1m66㎝)이지만 매섭게 공을 쳐 거리는 짧지 않다. 같은 체격이라면 가장 멀리 치는 선수에 꼽힐 것이라는 평가다. 그린 주위 쇼트 게임과 퍼트가 뛰어나다.

올해 9경기에 나와 6번 컷 탈락했다. 가장 좋은 성적이 22위였다. 올해 한국에서 열린 대회로는 GS칼텍스 매경 오픈에 나왔다가 컷 탈락했다. 슬럼프가 길었던 크루거는 “스윙을 바꾸다가 5년 가까이 고생했는데 2주 전에 감을 다시 찾았다. 이번 우승으로 자신감도 얻었다. 앞으로 PGA 투어 진출을 노려보겠다”고 말했다.

일본 투어에서 뛰는 재미교포 김찬(29)이 합계 13언더파로 준우승했다. PGA 투어에서 올해 우승한 강성훈(32)은 11번 홀에서 1온을 노리고 친 티샷이 OB가 나는 바람에 우승 경쟁에서 밀려 4위를 했다. 전역 후 첫 경기에 나선 노승열(28)은 이븐파 공동 45위로 대회를 마쳤다.

인천=성호준 기자 sung.ho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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