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 넘긴 전교조사태「진화의 타협」없이 불길만 확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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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전교조사태가 4일로 1백일을 넘겼으나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는커녕 오히려 일파만파로 확대되고 있다.
노조출범 당시만 해도 교육현장의 목소리로 머물렀던 전교조사태는 이제 학생·학부모들은 물론 대학가·노동계·종교계로까지 그 파문이 확산, 사회의 최대 현안문제로 떠올랐다.
문교당국의 가입교사들에 대한 대량징계강행과 공안당국의 강압적인 사법처리가 결코 사태의 치유책이 아니었으며 오히려 불씨를 사방으로 퍼뜨리는 바람역할을 했는지도 모른다.
정원식 문교부장관은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금주 내로 징계작업이 모두 마무리되며 따라서 전교조사태는 사실상 상황 끝』이라고 단언했으나 상황은 그와 정반대로 전개되고 있다.
1천5백명에 이르는 해직교사들은『이제 죽기 아니면 살기』식으로 더욱 강력한 투쟁을 전개해 나갈 것을 천명했으며「민주화실천 교수협의회」를 중심으로 한 대학교수들과 대학생·중고교생·재야·노동계·종교계도 조직적인 연대투쟁을 다짐하고 나섰다.
이들은「전교조지지투쟁」을 통해 현재 공안정국 하에서 얼어 붙어있는「민족민주운동」 에 불을 지펴보려는 속셈을 갖고있다.
전교조와 제반 운동세력의 집결체인「공동대책위」가 오는24일「전교조탄압 저지 및 합법성쟁취를 위한 제2차 국민대회」를 최대한의 인원을 동원해 전국 동시다발로 개최키로 한 것은 이 같은 맥락에서 특히 주목된다.
이처럼 전교조 사태가「정부」와「범 민주세력」간의 한판대결이 예상됨에 따라 사태가 확대되기 전에 해결할 길은 없었는가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전교조사태는 사실 1백일을 넘게 끌어오는 동안 교육계에 득과 실을 함께 가져다주었다.
우리교육이 안고있는 숱한 문제점이 적나라하게 노출돼 교육개혁이 시급하다는 당위성을 인정받은 것은 전교조사태의 가장 큰 성과라 할 수 있다.
교조교사들이 지적한 ▲열악한 교육환경 ▲비민주적인 교육행정 ▲빈약한 교원처우 ▲입시위주교육의 병폐 등에 대해서 사회의 폭넓은 공감대가형성, 문교당국으로 하여금 교육여건개선에 박차를 가하도록 압력을 넣었다.
정부·여당이「교육환경개선을 위한 특별회계법」과「교원지위 향상을 위한 특별법」을 제정키로 했으며 문교부도 앞으로 3년 간 총1조1천1백억 원을 투자, 교육환경을 대폭 개선하는 한편 장기근속 교원의 처우개선, 교장 임기제 도입 등을 주요골자로 하는 「학교교육 쇄신을 위한 당면시책」 을 내놓게된 것 등이 바로 그것이다.
대한교련이 평교사들의 뜻을 진정으로 대변할 수 있는 교원단체로 탈바꿈하기 위해 체질개선을 서두르게 된 것, 일선학교에서 교장·교감의 권위주의적 태도가 줄어들고 일반교사들의 입지가 강화된 것 등도 전교조가 가져다 준「선물」이라 할 수 있다.
실제로 문교부의 한 간부는『「힘없는」문교부가 엄청난 예산을 손쉽게 확보하게된 것은 사실 전교조 덕분』이라고 인정하고『전교조는 어쩌면 교육발전을 위한 희생양이 된 셈』 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전교조사태가 낳은 부정적인 면이라면 전통적 사제관의 파괴를 가속화시키고 지켜져야 할 「권위」나「질서」가 붕괴되는데 원하건 원하지 않았건 간에 큰 작용을 했다는 것이다.
전교조사태가 득과 실을 동시에 노출시키며 눈덩이처럼 커진 데에는 문교당국과 전교조간의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 견해차 때문이다.
전교조주장의 주요골자는 민족·민주·인간화교육으로 대표되는「참교육」이 실현되어야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교사들이 힘없는「단체」가 아닌 힘있는「노조」의 보호 하에 교육내용과 환경개선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문교당국은「참교육」을 편향된 의식화교육에 다름 아니며 신성한 교직자가「돈 받고 품을 파는」노동자일수는 없다는 점에서 이를 불허해왔다.
양측의 이 같은 공방은 사실 사회각계각층으로부터 찬반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고형일 전남대교수는『이제까지의 교육내용은 정권유지차원의 권위주의·계층상승·반공·사대주의 이데올로기 등의 각축장이었기 때문에「참교육」이 새로운 교육목표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지금까지 자주적인 교원단체가 현실사정으로 숱하게 굴절되어왔기에 교육노동의 특성상 권력·행정으로부터 자유스럽기 위해서는 노조형태를 유지해야한다』고 전교조 측을 지지했다.
반면 김종철 전서울대교수는『민족·민주·인간화교육은 교육이념과 명분상 그럴 듯해 보이지만 참교육의 이름 하에 사실상 계급의식과 사회갈등을 부추기는 편향된 의식화교육이라는 것이 문제』라며『빗나가고 있는 교육풍토의 개선을 위해서라면 전문직교직단체의 테두리 내에서도 얼마든지 뜻을 이룰 수 있다』고 전교조의 주장을 반박했다.
이처럼 각자 다른 입장의 양측이 큰 시각차를 좁히려는 노력을 보이는 대신 서로의 주장을「관철」시키려고만 한 것이 사태악화의 최대원인이다.
특히 문교부는 옥석을 가리지 않은 일괄징계로 교조교사 전원을「적」으로 만들어 버렸다.
전교조에 가입했다가 결국 탈퇴한 김모 교사(34)는『교조교사들이라고 다 같지는 않다』 며『전교조운동에 참여한동기에 따라 크게 이념파와 동조파로 나눌 수 있으며 이중 이념파도 전교조운동을 사회운동으로 몰고 가려는 층과 순수한 교육운동차원에 머물려하는 층으로 세분될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극소수의사회운동 이념 파를 제외한 대부분의 교사는 우리나라 교육현실개선에 대한 순수한 열정에서 전교조운동을 해왔으며 이들마저 좌경용공 시 되고 교단에서 축출 당한 것은 너무 억울하다』며『이 때문에 나 자신도 비록 탈퇴는 했지만 심정적으로는 전교조를 지지하게 된다』고 말했다.
통치권의 의사 등 제반 사정을 모두 고려의 대상으로 넣어야할 문교부로서는 사실원리원칙만으로 따져드는 전교조의 논리에 자칫 휘말려들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했던 것으로 보인다.
사회 저명인사들이「범 국민중재 단」을 구성, 대화의 다리를 놓으려 하기도 했으나「반전교조」인사들이 빠진 채「찬 전교조」인사들이 주축이 됨으로써 중재를 위한 권위를 인정받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정치권에 의한 해결도 기대하기 힘든 형편이다.
민정·공화당은 전교조불허의 뜻을 이미 천명한바 있고 평민·민주당도 대다수가학부모인 유권자들의 표를 의식한 때문인지 교육관계법 개정에 적극 나서기를 꺼리는 눈치다.
그러나 이 같은 어려움에도 불구, 전교조사태의 원만한 해결을 위한 노력은 정부당국이나 전교조·사회일각으로부터 끊임없이 시도되어야할 것으로 보인다.
전교조사태를 대화와 타협에 의하지 않고 힘으로 눌러 해결해 보려하는 것은 지극히 위험한 발상이라는 것이 많은 교육계인사들의 지적이다. 이는 마치 끓는 냄비 뚜껑을 억지로 닫아놓았다가 결국 냄비전체가 폭발하는 것으로 비유될 수 있다.
명분이나 눈앞의 이해득실보다 우리나라교육 전체를 위한다는 대승적 견지에서 진지하게 전교조사태를 들여다본다면 ▲최고책임자의 교육민주화선언 ▲법외노조로 전교조를 인정한 뒤 교련과 함께 복수교직단체로 운용 ▲교육민주화이행을 전제로 한 전교협 차원으로의 후퇴 등 방법은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국민들은 전교조사태로 또다시 교육현장은 물론 정국까지 파국에 이르는 것을 원치 않는다.<김동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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