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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이즈미 차남 단숨에 '포스트 아베'로···그뒤엔 실세 스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11일 단행된 개각에서 단연 눈에 띄는 것은 고이즈미 신지로(小泉進次郎) 자민당 의원의 발탁이다. 일본 조간신문들은 일제히 1면 머릿기사 제목을 ‘고이즈미 환경상 내정’으로 꼽았을 정도다.

"아직 이르다" 예상 뒤엎고 전날 밤 극적 발표 #같은 지역구 스가 장관이 '핫라인' 역할 #"기시다, 고노와 경쟁시키려는 의도" #야스쿠니 매년 참배... 포퓰리스트 행보

당초 고이즈미는 이번 개각 명단으로 거론되지 않았다. 자민당 총재선거에서 2번 연속 아베 총리의 경쟁자인 이시바 시게루(石破茂)를 공개적으로 지지하는 등 아베 정권과 거리를 둬왔기 때문이다. 고이즈미에 대해서는 당내에서도 부담스러워하는 시선이 많았다. 튀는 발언과 젊은 나이 등을 고려해 “아직은 때가 아니다”라는 반응이 지배적이었다. 지지통신은 개각 전날인 오후 4시 “이번 개각에서 고이즈미의 입각은 없을 것”이라는 속보를 내보냈을 정도다.

고이즈미 신지로의 입각을 1면 머릿기사로 보도한 일본 조간. 윤설영 특파원

고이즈미 신지로의 입각을 1면 머릿기사로 보도한 일본 조간. 윤설영 특파원

하지만 이 같은 당 안팎의 예상을 뒤엎고 고이즈미가 극적으로 등용된 데에는 실세 장관인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스가 장관은 고이즈미와 같은 가나가와(神奈川)현 지역구 의원으로 스가 장관이 그의 입각을 적극 추천했다고 한다.

교도통신 기자 출신의 TV아사히의 고토 겐지(後藤健司) 코멘테이터는 “아베 총리가 동방경제포럼 참석 뒤 블라디보스톡에서 귀국한 6일 이후 스가 장관이 두 사람의 핫라인 역할을 했다. 스가 장관이 고이즈미 의원을 설득한 것”이라고 전했다.

고이즈미 신지로(小泉進次郞·38) 중의원 의원이 다키가와 크리스텔(42) 아나운서와 함께 도쿄 총리 관저에서 기자들에게 결혼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교도=연합뉴스]

고이즈미 신지로(小泉進次郞·38) 중의원 의원이 다키가와 크리스텔(42) 아나운서와 함께 도쿄 총리 관저에서 기자들에게 결혼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교도=연합뉴스]

스가 장관은 최근 발행된 월간지에서 고이즈미를 “포스트 아베의 자격이 있는 사람”이라고 치켜세우기도 했다. 고이즈미도 그동안 총리와 거리를 뒀던 자세를 바꿔 지난 8월 총리관저를 찾아 아베 총리에게 직접 결혼 보고를 했는데, 여기서 아베 총리가 고이즈미에게 후한 점수를 주었다는 후문이다.

이제 4선인 고이즈미가 입각에 성공함과 동시에 단숨에 ‘포스트 아베’ 후보 명단에 이름을 올리게 됐다. 산케이 신문은 “고이즈미를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정조회장, 고노 다로(河野太郎) 전 외상과 경쟁시킴으로서 ‘포스트 아베’ 후보를 육성하겠다는 게 아베 총리의 생각”이라고 전했다. 지지통신은 ‘미래의 총리 후보’를 자기 손으로 키워서 미리 자기편으로 만들겠다는 의도라고 분석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의 차남 고이즈미 신지로의 페이스북 사진. 자민당의 '젊은 피'로 입지가 탄탄하다. [페이스북]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의 차남 고이즈미 신지로의 페이스북 사진. 자민당의 '젊은 피'로 입지가 탄탄하다. [페이스북]

요미우리 신문도 고이즈미 발탁에 대해 “안정과 도전 중 도전에 강한 의지를 보여줌과 동시에 ‘포스트 아베’ 후보를 경쟁시키려는 의도가 있다”고 분석했다. 아베 총리 자신이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郎) 총리 시절인 2003년 중의원 3선일 때 자민당 간사장으로 발탁돼, 2005년 관방장관, 2006년 총리로 취임했다. 자민당의 한 간부는 “고이즈미도 각료로서 실적을 남길 수 있다면, 그 기세로 차기 총리 입후보하지 않겠나”(요미우리 신문)라고 전했다.

그러나 환경상이라는 자리가 녹녹치만은 않은 포스트다. 후쿠시마(福島) 제1원전 오염수 처리 문제에 있어서 지역 주민들을 설득하는게 당장 눈앞에 놓인 과제다. 전날 하라다 요시아키(原田義昭) 환경상이 임기 마지막날 “오염수를 바다에 방출해 희석하는 수 밖에 없다”고 폭탄을 던진 상태다.

고이즈미의 발탁은 측근을 대거 기용한 임기 중 마지막 인사라는 비판을 의식한 ‘서프라이즈’ 인사의 측면도 있다. 비판의 눈을 돌리기 위한 깜짝인사인 셈이다. 마이니치 신문은 “고이즈미를 서프라이즈로 발탁했지만, 진용은 ‘우리편 중시’ 색채가 짙다. 자신의 퇴임후 까지 고려해 그동안 자신을 지지해준 측근의 존재감을 높이기 위한 논공행사 인사”라고 분석했다.

당 안에서는 “총리가 친구들을 모아서 즐기고 있다”는 불만도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한 각료경험자는 “아베 정권에 공헌하면서 햇빛을 보지 못했던 사람의 재고처리다”라고 비판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의 차남으로 장래 총리 후보로 꼽히는 고이즈미 신지로 자민당 의원이 지난해 8월 15일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기 위해 차에서 내리고 있다. [연합뉴스]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의 차남으로 장래 총리 후보로 꼽히는 고이즈미 신지로 자민당 의원이 지난해 8월 15일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기 위해 차에서 내리고 있다. [연합뉴스]

인기를 의식하는 행보로 ‘포퓰리스트’라고도 불리는 그는 지난해와 올해 8월 15일 종전기념일에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 우익 지지층을 고려한 행보다. 그러나 우익 단체인 ‘일본회의’ 소속은 아닌 것으로 알려졌다.

도쿄의 한 외교소식통은 “한·일관계나 개헌에 대해 본인의 소신을 밝힌 적이 없지만, 앞으로는 주목을 끌기 위해 한국에 오히려 강경한 발언을 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도쿄=윤설영 특파원 snow0@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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