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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이번엔 블룸버그에 5877자 영문 기고문으로 한국 비난

중앙일보

입력

지난 8월 중국 베이징(北京) 구베이수이전(古北水鎭)에서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고노 다로(河野太郞) 일본 외무상이 3국 회담을 마친 뒤 한일 양자 회담에 앞서 악수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8월 중국 베이징(北京) 구베이수이전(古北水鎭)에서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고노 다로(河野太郞) 일본 외무상이 3국 회담을 마친 뒤 한일 양자 회담에 앞서 악수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고노 다로(河野太郞) 일본 외상이 4일 블룸버그통신에 기고문을 내고 한ㆍ일 관계 악화 책임을 한국 정부에 돌렸다. 영문으로 5877자에 달하는 이 기고문에서 고노 외상은 한ㆍ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파기에 대해 “(한국 정부의 파기) 결정은 동북아의 안보 정세를 완벽히 오판한 것(a total misapprehension)”이라고 주장했다. 기고문 제목은 ‘일본과 한국 사이의 진짜 문제는 신뢰’로 달았다.

고노 외상은 이 글에서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문제로 한ㆍ일 관계가 경색됐으며 이는 한국이 1965년 일본과 국교를 정상화하면서 맺은 청구권 협정을 준수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강제징용 피해자들은 영어로 “과거 민간 부문 노동자(former civilian worker)”라고 일본에게 유리하게 해석될 수 있는 표현을 골랐다. 기고문엔 고노 외상이 뒷짐을 진 채 강경화 외교부 장관의 말을 들으며 굳은 표정을 짓고 있는 사진이 함께 게재됐다.

고노 다로 일본 외상의 블룸버그 기고문 온라인판 캡처

고노 다로 일본 외상의 블룸버그 기고문 온라인판 캡처

고노 외상은 이어 청구권 협정 조항들을 일일이 소개하면서 일본 정부는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 문제에서 자유롭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한국 대법원이 징용 피해자들에게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린 것과 관련해선 “청구권협정의 명확한 위반”이라며 “한국 정부는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구체적 조치를 하는 데 실패했다”고 적었다. 기존 일본 정부의 입장을 영어 기고문으로 되풀이한 셈이다.

그는 또 일본 정부가 한국을 화이트 국가(안보우호국)에서 제외하며 수출 규제 조치를 강화한 것을 두고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과 관련한) 보복(retaliation)이나 대응(countermeasure)이 결코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일본 측의 새로운 주장이 없다는 점에서 이번 기고문은 고노 외상이 외교 수장이라는 점에서 영어로 일본측 주장을 세계에 전파하는 역할을 맡았다는 해석이 나온다. 고노 외상의 교체설이 일본 매체에 보도되고 있는 시점이라는 점도 미묘한 파장을 낳고 있다. 최근 일본 외무성은 한·일 관계 주무 부처임에도 불구하고 정책 결정 과정에서 소외되고 있다는 관측이 일본 내에서 나오고 있다.

영문 기고문을 띄운 것도 주목되는 대목이다. 고노 외상은 영어를 특기로 삼아왔다.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사죄한 ‘고노 담화’의 주인공인 고노 요헤이(河野洋平) 전 총리의 아들인 그는 총리직에 대한 야심을 종종 드러냈다. 대일 외교소식통은 고노 외상이 “총리가 될 재목이라면 영어를 어느 정도는 해야 한다”는 취지의 말을 하며 영어 공부에 공을 들였다고 전했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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