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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실망표현 자제" 요청에도···美국방·국무부 보란듯 "실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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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에스퍼 미 국방장관이 28일 조지프 던포드 합참의장과 회견에서 지소미아 종료에 "양측이 관여한 데 매우 실망하고 있다"고 말했다. 몇 시간 전 조세영 외교부 차관이 해리 해리스 주한 미 대사에 공개 실망 표명을 자제를 요청한 지 한나절도 안 돼 국방부 수뇌부가 총출동해 실망 표명에 가세했다.[EPA=연합뉴스]

마크 에스퍼 미 국방장관이 28일 조지프 던포드 합참의장과 회견에서 지소미아 종료에 "양측이 관여한 데 매우 실망하고 있다"고 말했다. 몇 시간 전 조세영 외교부 차관이 해리 해리스 주한 미 대사에 공개 실망 표명을 자제를 요청한 지 한나절도 안 돼 국방부 수뇌부가 총출동해 실망 표명에 가세했다.[EPA=연합뉴스]

그간 한·미동맹을 놓고 ‘빛 샐 틈이 없다’고 강조해 왔던 미국이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ㆍ지소미아) 종료를 놓곤 한국 정부와의 공개 충돌도 피하지 않고 있다. 외교부가 28일 해리 해리스 주한 미 대사에게 지소미아 종료에 대한 실망 표명 자제를 요청했는 데도 국방부ㆍ국무부가 일제히 “실망”을 표출했다. 한국의 자제 요청을 사실상 거부하면서 지소미아 복귀를 계속 요구하고 있다.

외교부 자제 요청 당일 워싱턴서 '실망' 거론 #미 국방장관ㆍ합참의장 "양국에 매우 실망" #국무부, VOA에 "문 정부에 결정 실망" 반복 #외교부 "계속 이야기를 해 나갈 것" 밝혀

28일(현지시간) 워싱턴에서 미 국방장관과 합참의장이 공개적으로 지소미아 복귀를 촉구했다. 다만 국방부 수장들은 국무부와는 달리 한ㆍ일 양국에 실망을 함께 표출하고 해결을 촉구했다.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은 이날 공개 기자회견에서 지소미아 종료에 대해 “양측이 관여한 데 매우 실망했고 여전히 실망하고 있다”며 “서울과 도쿄의 내 상대에게도 이를 표명하고 해결을 촉구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공유한 더 많은 이익과 가치에 기반해 신속하게 이 문제를 해결하고, 필요한 중요한 궤도로 복귀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조지프 던포드 합참의장도 “나는 이를 한ㆍ일 관계의 후퇴로 본다는 점에서 에스퍼 장관과 실망을 공유한다”며 “우리가 효율적인 관계를 맺는 것이 세 나라 공통 이익이기 때문에 긍정적 방향으로 돌아가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 국무부는 이날 조세영 외교부 1차관과 해리스 대사의 면담과 관련 미국의소리(VOA) 방송에 “비공개 외교 대화의 구체적 내용은 언급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어 “미국은 문(재인) 정부의 지소미아 갱신 보류 결정에 강한 우려와 실망을 표명한다”며 지소미아 종료에 대한 ‘우려와 실망’을 또 거론했다. “미국은 문 정부에 이 결정이 미국과 동맹의 안보 이익에 부정적 영향을 주며, 문 정부의 동북아 안보적 도전에 대한 심각한 오해를 반영한다고 분명히 밝혔다”며 지난 22일 지소미아 종료 결정 당일 ‘문 정부’라는 표현까지 쓰며 발표했던 반대 성명을 다시 발표하는 형식이었다. VOA는 이를 놓고 “(국무부는) 지난 22일 밝힌 공식 입장에서 바뀐 게 없으며 이를 철회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한 것"이라고 전했다.

국방부의 랜들 슈라이버 인도·태평양 차관보는 해리스 대사 면담 이후 수 시간 만에 워싱턴의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에서 진행된 강연 행사 도중 이 성명을 그대로 낭독했다. 슈라이버 차관보는 또 “당장 가까운 시일 내 우리는 한국이 지소미아에 재가입하고, 협정을 갱신할 것을 촉구한다”며 “양측이 이견 해소를 위해 의미 있는 대화에 나설 것도 촉구한다”라고도 말했다. 이어 질의응답에선 “이번 결정은 분명히 안보 환경보다는 국내 정치를 앞세운 것”이라며 “이 문제를 계속 협의해 왔지만, 지소미아를 갱신하지 않겠다는 실제 결정은 사전 경고(통보)를 받지 못했다”고 불만도 표출했다.

빅터 차 CSIS 한국 석좌는 중앙일보에 “슈라이버 차관보가 밝혔듯 지소미아 유지를 협의했던 트럼프 정부 관리들은 문재인 정부가 지소미아 종료 결정을 사전 통보해주지 않은 데 대한 불만도 상당히 크다”며 “최소한 이 사안이 해결될 때까지 압박이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정부에 정통한 소식통은 “에스퍼 장관이 한ㆍ일 양측에 실망감을 표명하는 중립적 표현을 썼지만, 한국 외교부가 자제를 요청한 당일 공개 회견에서 ‘매우 실망했다’고 밝힌 건 미국의 분명한 거부 의사”라고 지적했다.

크리스토퍼 힐 전 주한미국대사는 VOA에 “솔직히 말해 어떤 미국 대사가 한국 외교부로 초치됐다는 기억이 나지 않으며 다소 이례적"이라면서도 "미국측 공개 성명은 이런 진행 중인 사안엔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고 했다.

해리스 대사에게 자제 요청을 했는데도 에스퍼 장관 등의 발언이 나온 데 대해 외교부 당국자는 “계속 이야기를 해나갈 것”이라며 “에스퍼 장관의 발언은 한ㆍ미ㆍ일 간 안보 협력이 중요한데 역사 문제, 수출 규제 문제 등으로 한ㆍ일 관계가 좋지 않으니 그에 대한 실망을 표현하고 이를 해결했으면 좋겠다는 뜻을 표한 것으로 이해한다”고 말했다.

워싱턴=정효식 특파원 jjpo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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