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소미아 종료' 펄펄 뛰는 美…그 뒤엔 의아한 靑 여론조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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랜들 슈라이버 미 국방부 인도태평양 담당 차관보가 28일 전략국제연구소 세미나에서 "한국 정부의 지소미아 복귀가 미 정부의 명확한 입장"이라고 말했다. [정효식 특파원]

랜들 슈라이버 미 국방부 인도태평양 담당 차관보가 28일 전략국제연구소 세미나에서 "한국 정부의 지소미아 복귀가 미 정부의 명확한 입장"이라고 말했다. [정효식 특파원]

정부의 한ㆍ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ㆍ지소미아) 종료 결정과 관련한 미국의 비판이 계속되고 있다. “안보 환경보다는 국내 정치를 앞세운 결정”(28일 랜들 슈라이버 국방부 인도ㆍ태평양 차관보)이란 지적까지 나왔다.
슈라이버 차관보의 발언은 조세영 외교부 1차관이 해리 해리스 주한 미 대사를 불러 공개적 비판 자제를 요청한 이후에 나왔다. “그만 좀 하라”는 한국의 요청을 미국은 “수용할 생각이 없다”고 사실상 받아친 셈이다.

美 이해한다→실망 당연→실망 표명 그만

이와 관련 지소미아 종료 결정 전은 물론이고 이후의 정부 대응에서도 미국을 자극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결정 이후 정부의 대미 메시지 관리가 정교하지 못한 측면이 지적받는다. “미국은 이번 우리 정부의 결정을 이해하고 있다”(22일 지소미아 종료 결정 발표 직후 청와대 관계자)→“미국이 희망한 대로 (지소미아를 연장하는) 결과가 안 나왔기 때문에 실망했다는 것은 당연하다”(23일 미 국무부의 실망 표명 직후 청와대 관계자)→“‘실망’은 미국이 동맹국이나 우호국과의 정책적  차이가 있을 때 대외적으로 표명하는 표현이다”(28일 일본의 화이트 국가 조치 시행 이후 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실망한다는 공개 메시지는 이제 자제해달라”(28일 해리스 대사 면담시 조세영 차관) 등으로 널뛰었다.

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이 28일 오후 청와대 브리핑실에서 일본의 한국에 대한 2차 경제 보복 조치인 '화이트리스트 배제'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이 28일 오후 청와대 브리핑실에서 일본의 한국에 대한 2차 경제 보복 조치인 '화이트리스트 배제'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청, 여론조사를 근거로 대 의아”

워싱턴의 외교 소식통은 “미 정부는 한국 정부가 지소미아 종료가 역내 안보 환경에 미칠 영향, 즉 미국이 우려하는 정확한 포인트가 무엇인지를 여전히 모르거나 알면서도 무시하려 한다고 느끼는 것 같다”며 “다양한 방법으로 불쾌감을 표명하는 것은 이 때문”이라고 전했다.

김유근 청와대 국가안보실 1차장이 2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와대 춘추관에서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연장 여부 논의에 대한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뉴스1]

김유근 청와대 국가안보실 1차장이 2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와대 춘추관에서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연장 여부 논의에 대한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뉴스1]

특히 미국은 지소미아 종료 결정 직후 청와대가 여론조사를 결정의 근거 중 하나로 든 것을 가장 의아하게 여겼다고 한다. 당시 청와대 관계자는 “정무적으로 국민들 의사를 파악하기 위해 청와대 내부 참고용으로 거의 매일 여론조사를 실시했다”며 “국가 이익이라는 것은 명분도 중요하고 실리도 중요하고 국민의 자존감을 지켜주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안보 사안인 지소미아 관련 결정에 반일 정서가 영향을 미쳤다고 해석될 소지가 있는 데다 더 나아가 이를 언론에 공개함으로써 국내정치적 효과를 노린 것 아니냐는 오해를 사고 있는 셈이다.

이원덕 국민대 일본학과 교수는 “국내 여론조사와 국가적인 자존심을 들며 ‘우리가 열심히 노력했는데도 일본이 무시해서 참을 수가 없었다’는 식의 설명을 한 것은 국내정치적으로 보일 수 있는 측면이 있었다. 지소미아 종료 결정 자체보다 미국을 이해시킬 설명 논리가 취약했다는 게 문제”라고 분석했다.

해리스 면담 공개…언론플레이 소지

조세영 차관이 28일 해리스 대사와의 면담에서 미국의 입장 표명 자제를 요청했다는 사실을 외교부가 선제적으로 공개한 것도 언론플레이로 비칠 가능성이 크다. 주한 미 대사가 업무 협의차 외교부 청사를 방문하는 일은 종종 있다. 하지만 장관 공식 예방이나 주요 사안 가서명식 등 공개 행사가 있는 게 아니면 보도자료를 내는 경우는 별로 없다. 특히 예민했던 이번 면담의 성격을 고려하면 협의 사실 자체에 대해 보안을 유지하는 게 통상적이다.

하지만 이번에 외교부는 언론의 요청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알아서 보도자료를 냈다. 특히 기자들과 만난 정부 소식통은 “조 차관이 해리스 대사를 ‘불렀다’”는 표현까지 쓰며 관련 내용을 상세히 소개했다.

조세영 외교부 1차관. [뉴스1]

조세영 외교부 1차관. [뉴스1]

외교부가 아무리 항의의 의미를 담은 초치가 아니라고 해도 외교가에선 “그게 항의가 아니면 뭐냐”는 해석이 지배적인 이유다. 해리스 대사를 불러 사실상 따진 내용이 모조리 공개됐기 때문이다. 주한 미국 대사관은 해리스 대사의 외교부 방문에 대해 “비공개 협의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는 짤막한 공식 입장을 냈다. ‘비공개 협의’라는 문구에는 “한국은 왜 비공개 협의 내용을 공개했느냐”는 불만이 깔렸다는 해석이 나온다.
이에 대해 외교부 당국자는 “(동맹 간에도)각자의 입장이 있어서 이야기를 할 수도 있고, 때로는 이야기한 것을 좀더 대외적으로 알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동맹관계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유지혜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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