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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가 “징용 판결 해결하라” 김현종 “역사 바꿔쓰는 건 일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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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일본이 결국 한국을 ‘화이트국가(안보우호국)’에서 배제했다. 일본 정부는 28일부터 첨단소재·전자·통신·센서·항법장치 등 전략물자를 포함한 1100여 개 품목을 한국에 수출할 때 적용해 온 우대 혜택을 걷어냈다. 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은 이날 춘추관 브리핑에서 “일본의 이번 조치에 강한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이 전날 “한국이 역사를 바꿔쓰고 싶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불가능하다”고 언급한 것에 대해 김 차장은 “역사를 바꿔쓰고 있는 것은 바로 일본”이라고 말했다.

일본, 화이트국서 한국 배제 강행 #문 대통령 “우리경제 스스로 지켜야” #이낙연 “WTO 제소 차질없이 진행” #정부 “소재·부품 3년간 5조 지원” #기업 “배터리 소재 막히면 답 없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울산 이화산업단지에서 열린 현대모비스 친환경차 부품 울산공장 기공식에 참석해 “자유롭고 공정한 무역체제가 흔들리고 정치적 목적의 무역보복이 일어나는 시기에 우리 경제는 우리 스스로 지킬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일본이 화이트국가에서 한국을 배제한 첫날 경제적 자강(自强) 의지를 강조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어 문 대통령은 “어려운 시기에 유망한 기업들의 국내 유턴은 우리 경제에 희망을 준다”고 강조했다. 중국 부품공장 두 곳의 가동을 중단한 현대모비스는 대기업 공장의 첫 국내 ‘유턴’ 사례다.

정부, 화학물질 허가 패스트트랙 도입 

일본의 ‘불 지르기’에 대한 정부 대응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된다. 먼저 맞불을 놓는 ‘방화(放火)’ 전략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12일 일본을 화이트국가에서 배제한다고 발표했다. 군용 물자와 첨단 소재, 전자통신 부품 등 일본이 이번에 규제한 품목과 비슷하다. 다음달 중 시행 예정이다. 세계무역기구(WTO) 제소도 병행한다. 이낙연 총리는 28일 확대 관계장관 회의에서 “일본의 부당한 경제보복 조치를 바로잡기 위해 WTO 제소를 차질없이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정부는 WTO 제소 문제를 고심해 왔는데 이 총리가 이날 WTO 제소를 다시 언급하며 대일 압박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발등에 떨어진 불부터 끄는 ‘소화(消火)’ 전략도 마련했다. 정부는 지난달 2일부터 일본의 직접 수출규제를 받기 시작한 3개 소재(포토레지스트·에칭가스·플루오린 폴리이미드)를 미국·중국·유럽연합(EU) 등에서 대체 수입하는 데 드는 자금을 일괄 보증하기로 했다. 규제 대상 물품 수입 시 신속하게 처리할 수 있도록 ‘24시간 상시 통관지원 체제’도 가동 중이다. 장기전에 대비해 내성을 키우는 ‘내화(耐火)’ 전략도 추진한다. 28일 발표한 ‘소재·부품·장비 연구개발 투자 전략 및 혁신 대책’이 대표적이다. 100개 이상 핵심 품목에 대한 연구개발(R&D)에 내년에서 2022년까지 3년간 5조원 이상을 투자한다. 1조9000억원 규모의 대형 R&D 사업 세 건에 대해선 예비타당성조사(예타)도 면제했다.

관련 규제도 완화한다. 부품·소재 기업의 애로사항으로 꼽힌 화평법(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화관법(화학물질관리법)의 인허가 절차에 ‘패스트트랙’을 도입하는 식이다. 핵심 부품·소재 개발에 필요한 화학물질 취급시설 인허가 신청 때 심사 기간을 기존 75일에서 30일로 단축한다.

기업 “일본 규제 품목 예측불허” 긴장 

“일본에서 들여오는 배터리 소재가 당장 내일 막힌다면 솔직히 답이 없어요.” 기업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대부분 기업은 복잡해질 통관 절차에 대비한 시나리오만 검토할 뿐 구체적인 전략은 세우지 못하고 있다. 2차전지가 대표적이다. 국내 배터리 기업 관계자는 “이미 확보한 재고로 어느 정도는 버티겠지만 일본에서 수입하는 소재가 막히면 결국엔 감산을 고려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배터리 기업 관계자는 “일본산 소재를 대체할 수 있는 공급처를 찾아도 미리 주문받은 배터리의 경우 계약조건을 변경해야 하므로 당장 소재를 바꾸는 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기업의 하소연이 늘어나고 있는 건 일본 정부의 수출규제 품목과 규제 시점을 예측하는 게 불가능해서다. 재계 관계자는 “일본 정부가 어떤 품목을 언제 어떤 방식으로 수출규제 장벽을 높일지 예단하기 힘든 상황”이라고 말했다. 특히 일본 경제산업성이 홈페이지를 통해 고시하고 있는 중점 감시 품목 40가지가 문제다. 원심분리기·인공흑연·대형트럭이 중점 감시 품목의 대표적인 예다. 전략물자관리원 관계자는 “어떤 품목을 수출규제 대상에 올릴지는 일본 정부가 공개하기 전까진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이동기 한국무역협회 혁신성장본부장은 “현재 기업이 겪는 가장 큰 애로는 불확실성”이라며 “일본 정부가 어떤 조치를 추가로 취할지 예측하기 힘든 상황”이라고 말했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징용 문제에 대한 한국 측의 조치를 요구했다. 스가 장관은 28일 정례 브리핑에서 “일련의 대법원 판결에 의해 한국 측이 만든 국제법 위반 상황을 해결하라고 계속 강하게 요구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화이트국가에서 한국을 배제한 것에 대해 스가 장관은 “(징용 문제에 대한 보복조치가 아니라) 안전보장상의 관점에서 수출관리 제도를 적절히 실시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라는 주장을 되풀이했다.

강기헌·김기환 기자, 도쿄=서승욱 특파원 ssw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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