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방·개혁의 거센 물결 타고|소 예술계도 "자유화 바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개혁과 개방의 물결이 소련은 물론 동구 여러나라를 강타하고 있는 가운데 소련의 예술계도 변화의 바람을 맞고있다.
엄격한 통제와 검열로 표현의 자유를 제한 당해온 소련의 음악·미술등 예술계가 바야흐로「페레스트로이카의 봄」을 맞아 러시아 혁명 70여년만에 깊은 잠에서 깨어나려 하고 있다.
그간 철저히 금기시 돼왔던 인물들, 예컨대 레닌, 스탈린은 물론 고르바초프까지 회화된 채 예술의 소재로 이용되는가 하면 군복차림으로 독재정권을 비난하는 내용을 노래하는등 여기저기서 우상과 터부를 깨뜨리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다.
이러한 변화를 특히 실감하게 하는 곳은 소련예술의 본향으로 일컬어지는 레닌그라드.
제정 러시아의 수도였으며 예술에 관한 한 모스크바와 항상 「정통성 시비」를 벌일정도로 자타가 공인하는 예향 레닌그라드가 다시 개방과 개혁의 시대를 맞아 젊은 예술가들의 본거지로 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레닌그라드 아방가르디즘」으로 불리는 이들의 작품은 KGB의 감시에도 불구하고 과감하고 직선적이다.
이를테면『러시아를 민주화제도에 올려놓은 표트르대제만세』라는 말도 서슴없이 해댄다.
마이클 잭슨을 흉내내 광란적인 춤을 추던 적군군복차림의 가수 2명은 표트르대제를 칭송하며 레닌을 「검은 짐승」이라고 비난하기도 하는 데소련의 수도를 레닌그라드로부터 모스크바로 옮긴게 바로 그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거리에 전시된 어떤 그림은 고르바초프를 귀걸이에 아이섀도와 연지를 바른 우스꽝스런 모습으로 그려놨다. 블라디미르라는 23세의 청년미술가가 그린 『고르바초프의 돈 환식 초상』이란이 그림은 고르바초프가 서구를 유혹하고 있는 것을 비아냥대는 작품이다. DDT라는 록그룹의 노래는 『늙은 영감, 당신이 고문자가 아니라고 부드럽게 속삭이지 말아요. 당신이 어제 우리에게 한 짓을 잊으셨군요』라고 정부, 나아가 국가원수를 정면으로 모독하고 있다.
패션디자이너 스베틀라나 페트로바는 군복차림에 스타킹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요염한 차림을 한채 레닌의 초상화를 허벅지와 주위에 붙여놓고 『러시안 룰레트, 혹은 장교의 명예』라는 행위예술을 연출하고 있다.
미국 혹인암살단 KKK복장을 소재로 한 그녀의 최신작이 TV에 방영될 예정이었다가 갑자기 취소되자 그녀는 『이 복장이 미국이나 소련사람 모두를 위해 디자인 된 것』이라며 소련사람들은 유머감각이 없다고 불평하고 있다.
이밖에 매주 금요일밤이면 경기장 주변에 젊은이들이 모여 서구의 록음악에 열광하며 경찰과 숨바꼭질하고 있고 카잔성당앞 광장은 민주화운동의 무대가 되고있다.
이러한 젊은 예술가들의 「반란」에 대해 소련정부당국은 곧 정상으로 되돌아 올 것을 기대하며 아직 별다른 조치는 취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고르바초프나레닌, 그리고 군대와 AIDS를 직접 묘사하는 노래는 철저히 통제되고 있으며 젊은 예술가들에 대한 감시는 계속되고 있다. 이들 스스로도 아직은 「예술가로서 혹은 하나의 개인으로서 외부에 알리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을 뿐 체제자체에 대한 도전은 삼가고 있다.<유재직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