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무 복귀한 이재오 "당직자 중립적 인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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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 선암사에 칩거 중이던 한나라당 이재오 최고위원이 17일 당무 복귀 선언 뒤 상경을 위해 신발끈을 매고 있다. [연합뉴스]

대리전.색깔론 논쟁으로 심각한 경선 후유증을 앓던 한나라당이 17일 진정 기미를 보였다. 이재오 최고위원이 귀경했고, 강재섭 대표가 내분 수습을 위한 인사 구상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이 최고위원은 당무복귀 의사를 밝혔다. 강 대표는 사무총장 등 당직 인사를 18일 발표한다.

◆ "내년 공정한 경선 보장돼야"=이재오 최고위원은 11일 전당대회 대표경선에서 패배한 뒤 '불공정 경선'과 '색깔론'을 문제삼으며 순천에 은거해 왔다. 그는 17일 새벽 승용차로 순천을 떠나 지역구인 은평구청으로 직행했다. 푸른 점퍼, 운동화의 등산복 차림이었다.

그는 은평구청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당과 내 문제를 개인 차원의 고민으로 끝내지 않고 국민과 더불어 풀어야겠다는 결론을 내렸다"며 18일 열릴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하겠다고 했다. 이 최고위원은 "개인의 아픔을 딛고 내년 경선을 잡음 없이 깨끗하게 치러 대선에서 승리하겠다는 것이 당에 복귀하는 이유"라고 주장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색깔론, 대리전 논란에 대한 진상조사나 사과를 요청할 계획인가.

"내 입으론 재론하지 않겠다. 그러나 내년 대선이 이대로는 어려운데…. 재발방지 차원에서 약속돼야 할 것이다."

-공정한 대선 경선을 이야기했는데.

"신뢰받는 당내 인사들과 후보 측의 추천을 받아 '공정선거 관리위원회'를 만들어야 한다. 여기에선 당 지도부의 활동이 공정 경선을 해치는지도 감시해야 한다. 특정인이 당권을 장악하면, 중앙은 물론 시.도지부까지 특정인사의 인맥을 따라간다. 그대로는 공정경선이 어렵다. 새 지도부는 모든 당직자를 중립적 인사로 교체해야 한다. 이게 안 되면 당내 갈등이 언제든 폭발한다. 대선주자가 경선에 뛰어들어 지더라도 승복하는 공정한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 "권영세 최고위원 지명될 듯"=강재섭 신임 대표는 17일 경기도 여주의 수해 지역을 둘러본 것 외엔 하루 종일 후속 인사 구상에 몰두했다. 경상도당-민정당-웰빙당의 이미지를 상쇄하는 데 초점을 맞춘 것으로 알려졌다.

당대표가 두 명까지 임명할 수 있는 지명직 최고위원 중 한 자리는 경선에서 탈락한 40대의 권영세 의원이 차지할 것 같다. 나머지 한 자리는 호남 출신의 한영 전 최고위원이 중용될 가능성이 거론된다. 사무총장엔 인천 출신의 황우여 의원, 대변인엔 전당대회 당시 강 대표의 홍보업무를 총괄한 나경원 의원과 유기준 의원의 공동체제, 여의도연구소장엔 임태희 의원이 유력한 것으로 전해졌다. 황 의원은 박근혜.이명박의 어느 쪽에도 가담하지 않은 이른바 '무계파 인사'로 분류된다.

강 대표 측은 이 최고위원 측의 의사도 존중한다는 입장을 보여왔다. 그래서 "모든 당직을 중립적 인사에게 맡겨야 한다"고 주장한 이 최고위원의 주장이 어느 정도 반영될지 주목된다.

◆ 일단 잠복한 당내 갈등=전당대회 후유증은 일단 잠복하고 있다. 그러나 강재섭 대표와 이 최고위원, 박근혜 전 대표와 이명박 전 시장 사이의 앙금이 가시지 않은 상태에서 간신히 미봉된 형식일 뿐이다. 이 최고위원이 복귀 일성으로 대선 경선의 공정성 확보를 이야기한 것도 의미심장하다. 이는 "당대표를 뽑는 데도 이렇다면 내년 대선 경선이 어떨지 걱정"이라는 이 전 시장의 발언과 동일선상에 있다.

이 전 시장은 이 최고위원에게 "당 최고위원직을 유지하면서 당의 변화를 주도하라"며 최고위원직 사퇴를 만류했다고 한다. 내년 대통령선거 경선까지 당 안팎에서 벌어질 박-이 양 진영 간의 대립구도를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그리고 '확실한 이명박맨'인 이 최고위원이 당 최고위원회의라는 전선에서 공격의 첨병 역할을 맡은 모양새다.

서승욱.신은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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