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립지 집어삼킨 「권력기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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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검찰이 적발한 매립업자납치·폭행사건은 정부폭력사상 최대 액수인 98억원의 이권을 빼앗았다는 점과 주범 이륙내씨(42)의 주먹계에서의 위치, 잔혹한 폭행방법 등에서 주목을 끈다.
특히 검찰수사결과 주범 이씨가 피해자 송성정씨(47)에게 검사행세를 하고 행동대원들은 수사관을 사칭하면서 송씨를 경찰서에까지 데리고 들어간 대담성은 이들 폭력배들의 공권력에 대한 인식을 여실히 드러낸 것이다.
◇청부=구속된 최동철씨(59)는 87년 피해자 송씨로부터 『매립허가를 받게 해주면 15억원을 주겠다』는 부탁을 받았으나 그 후 송씨가 독자적으로 매립허가를 받아 약정금을 주지 않자 조직폭력배 이씨에게 15억원에 청부폭력을 의뢰했다.
이씨는 87년 9월7일 부산지검검사·수사관을 사칭하며 송씨를 납치, 일부러 부산동부겅찰서에 들른 후 부산 태양호텔로 데려갔다.
이들은 송씨에게 『허가기관인 부산해운항만청에 얼마를 주고 허가를 받았느냐』며 수사관 행세를 한뒤 매립지의 30%를 지분으로 줄 것을 요구하다 송씨가 이를 거절하고 실신해버리자 서울로 데려갔다.
이들은 다시 송씨를 팬티차림으로 토끼뜀을 뛰게 하고 구둣발로 짓밟는 등 3박4일 동안 감금하며 폭행, 송씨로부터 96억원 상당의 매립지 포기각서와 항만청에 뇌물 2천만원을 주었다는 자인서를 받아냈다.
이들은 또 사건은폐를 위해 송씨에게 『교통사고 환자로 법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으라』고 강요했다.
◇주범 이씨=검찰수사결과 이씨는 국내 3대 폭력조직인 OB파 (두목 이동재·해외체류중) 양은파 (두목 이양은) 서방파(두목 김태촌)의 대부.
이씨는 전남보성 B중학교를 졸업한 뒤 상경, 서적·한약재 판매 등으로 돈을 번 뒤 광주 동아파 두목 김모씨와 친교를 맺은 것을 계기로 OB파 두목 이동재씨를 만나 조직폭력배 세계에 발을 디뎠다.
검찰은 이씨가 그 후 유흥업소의 지분을 인수받은 뒤 조직폭력배를 동원, 경영권을 빼앗고 여기에서 번 돈으로 각종폭력 조직의 사건수습에 도움을 주면서 암흑세계의 대부로 군림하게됐다고 설명했다.
이씨는 최근 OB파·양은파·서방파 조직 사이에 세력다툼이 일어나고 조직폭력배에 대한 수사기관의 일제단속이 시작되자 신변의 위협을 느끼고 서울혜화동에 단독주택을 구입, 숨어 지내다 26일 오후 수사관들에 의해 검거됐다.
검거당시 이씨는 평소 데리고 다니던 3∼4명의 경호원이 모두 외출한 뒤여서 별다른 저항이 없었다.
◇수사방침=검찰은 조직폭력배를 초기단계에 진압하지 못할 경우 한국에서도 조직폭력배가 마피아형태를 띠면서 기업화·고급화·광역화할 것으로 보고있다.
현재 빠찐꾜·나이트클럽·주류도매 등 유흥향락관련업소에서 세력다툼을 벌이는 폭력배들이 앞으로 부동산투기·마약 등에 손을 뻗칠 가능성을 예상, 이에 대한 대비책이 시급한 것으로 보고 있다.
따라서 조직폭력·마약·인신매매 등은 별도의 범죄가 아니라 하나의 범죄군이기 때문에 마약·음란퇴페업소·인신매매 등에 대한 지속적인 단속과 함께 자금원 차단을 통한 조직폭력배 소탕이 급선무라는 것이 수사관계자들의 지적이다.
최근 조직폭력배들은▲타조직과의 마찰▲이권의 정부개입▲자체조직내에서 갈등과 도전이 있을 때엔 생선회칼로 상대방의 아킬레스건을 절단하거나 갈비뼈를 부러뜨리는 등 「피의 보복」을 서슴지 않고 있어 일반시민들에게 공포의 대상이 되고 있다.<이상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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