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공무원 복지포인트는 통상임금 아닌 복지제도"

중앙일보

입력

대법원 전경 [연합뉴스]

대법원 전경 [연합뉴스]

"공무원이나 공기업 직원이 매년 받는 복지 포인트는 통상임금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2일 서울의료원 근로자 강모씨 등이 낸 임금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했던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강씨 등 548명은 2013년 10월 서울의료원을 상대로 임금 등을 청구하는 소송을 냈다. 서울의료원에서는 2008년부터 재직자에 한해 매년 1월 1일에 공통 포인트와 근속연수에 따라 차등 부여하는 근속 포인트를 배정해 1월과 7월에 나눠 지급해왔다. 휴직자나 중도 퇴직자에게는 그해 근무 기간에 따라 별도 계산해 지급됐다.

직원들은 각자에게 배정된 복지 포인트 한도 내에서 미리 설계된 다양한 복리후생 항목 중 각자가 원하는 복지항목을 선택해 누릴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직원 전용 온라인 쇼핑 사이트에서 물품을 구매해 복지 포인트를 쓰거나, 복지 카드를 이용해 복지 가맹업체 등에서 물품을 우선 구매한 뒤 복지 포인트 사용 신청을 해서 포인트 상당액을 돈으로 돌려받는 식이었다. 이들이 맺은 단체협약상 복지 포인트는 임금에 포함되지 않았는데, 강씨 등은 복지 포인트가 임금과 다름없으므로 이를 통상임금으로 포함해 차액을 구하는 소송을 낸 것이다.

복지 포인트는 임금?…1·2심 "근로 대가성 부정 어려워"

소송의 쟁점은 복지 포인트가 근로기준법상 임금에 해당하는지에 맞춰졌다. 근로기준법상 임금은 사용자가 '근로의 대가'로 근로자에게 임금, 봉급, 그 밖에 어떠한 명칭으로든지 지급하는 일체의 금품을 말한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어떤 금품이 근로의 대상으로 지급된 것인지 판단하려면 금품 지급의무 발생이 근로 제공과 직접적ㆍ밀접하게 관련돼 있어야 한다.

1ㆍ2심은 이 복지 포인트가 임금 및 통상임금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사용자가 복리 후생 명목으로 지급한 금품이더라도 근로의 양이나 질과 관련 없다는 등의 사정이 명백하지 않은 한 근로 대가성을 부정하기 어렵다고 본 것이다.

전합, "복지 포인트는 임금 아니다" 

전합은 이를 뒤집었다. 다수의견을 낸 대법관 8명은 복지 포인트가 ‘선택적 복지제도’ 운영에 따라 제공된 포인트인 점을 근거로 이 포인트는 임금으로 볼 수 없다고 판결했다. 서울의료원이 운영해온 선택적 복지제도는 근로복지기본법에 근거하는데, 이 법에서 정하는 근로복지 개념에는 임금이나 근로시간 등 기본적인 근로 조건은 제외한다고 정해져 있다. 즉 복지 포인트의 전제가 된 선택적 복지제도는 그 근거 법령과 개념상 임금에 포함될 수 없다는 뜻이다.

전합은 "우리 법과 기업들이 도입한 선택적 복지제도는 근로자의 임금 상승이나 임금 보전을 위해 도입된 것이 아니라 기업 내 복리후생과 관련해 새로운 기업복지체계를 구축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런 도입 연혁 및 취지에 비춰볼 때 사후적으로 선택적 복지제도를 임금이라고 해석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봤다.

대법원은 복지 포인트가 근로자들에게 일률적으로 지급됐기 때문에 일부 임금과 비슷한 성격을 가진다는 점은 인정했다. 하지만 복지 포인트는▶사용처를 복지에 맞게 한정하고 ▶근로자 지출 후에 정산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점 ▶통상 1년 내 사용하지 않으면 소멸하고▶양도 가능성도 없는 점 ▶근로 제공과 무관하게 매년 초 일괄 지급된 점 등에 비춰볼 때 비임금성 복지제도로 봐야 한다고 판결했다.

4명의 대법관(박상옥, 박정화, 김선수, 김상환 대법관)은 반대 의견을 냈다. 서울의료원의 복지 포인트가 계속적, 정기적으로 배정돼왔고 근로자들 역시 복지 포인 틀을 별도의 임금으로 인식해왔으므로 복지 포인트는 근로의 대가로 지급되는 금품으로 볼 수 있다는 의견이다.

김재형 대법관은 별개 의견으로 "이 사건에서 복지 포인트를 지급하고 사용하는 과정은 임금 지급으로 볼 수 있지만, 이 중 실제 사용된 것만 임금 지급이 최종 이뤄진 것으로 봐야 한다"고 파기환송의견을 냈다.

대법원 관계자는 "그동안 복지 포인트가 근로기준법에서 말하는 임금 및 통상임금에 해당하는지에 대해 하급심 판결이 엇갈렸는데, 이 쟁점을 최초로 명확히 한 대법원 판결"이라고 설명했다.

이수정 기자 lee.sujeong1@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