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재권력의 「?력」 고발|엘살바도르 상황 다룬 영화 『로메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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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끝」자막이 나와도 관객은 일어설 줄 모른다는 선전문구가 그렇게 과장만은 아니다.
관객들은 한 진실했던 사제의 비극적 삶 너머로 지금도 고통받는 엘살바도르의 민중들을 떠올렸을 것이고 80년대 이 땅에서 벌어진 상황과 성직자의 사회적 복무에 대해 곱씹었을 것임에 틀림없다.
『로메로』는 선량한 인간을 투사로 내몰고 끝내는 죽음을 강요하는 파쇼체제의 폭압구조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부활을 담보로 스스로의 죽음을 예비하며 비폭력의 항거를 결심한 후에도 로메로대주교는 죽음의 그림자에 가위눌려 소스라쳐 깨는 온건하고 때로는 소심한 인간이다. 학살과 만행을 보다못한 젊은 사제들이 총을 드는 상황속에서도 그는『폭력에 대한 폭력은 결국 우리 모두에게 하나님만을 잃게 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그는 복음과 호소를 택했다.『우리는 존엄한 가치를 지닌 인간』이고 『저들이 쏘아대는 민중 한사람 한사람이 예수』라고 절규한다.
누구도 사람을 죽일 권리는 없으며, 이를 하나님의 이름으로 명령하는 80년3월14일의 미사에서 그는 물건 맞히듯 쏘아댄 군부의 총탄에 쓰러지고 만다.
그가 택한 항거방법이 평화적이었던 만큼 그의 죽음은 더욱 감동적이지만 한편으로는 파쇼를 상대로 한 대화나 호소가 부질없음을 일깨우기도 한다.
존 두이건감독은 로메로대주교의 삶을 영웅시하는 극적 복선을 과감히 생략하면서까지 그의 고뇌를 충실히 따르는 다큐멘터리기법을 썼고 이 선택은 옳은 듯 하다.
대주교는 민중의 편에 섰고 그의 순국 후 올해까지 인구 5백여만명의 엘살바도르에서 6만명이상이 학살됐다.
이들을 바로「제2, 제3의 로메로」로 이름붙여 마땅하고 파쇼가 무너지는 날, 그 승리의 과실은 이들의 몫임을 두이건감독은 계산했을 것이다.
대주교역을 맡은 라울 줄리아의 묵직한 내면연기는 다소 경직된 조연진의 연기를 상쇄해 냈다.<이헌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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