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세 말레이 최고 갑부의 증언 "일본군, 내 친구들 학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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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이시아 최고 갑부 로버트 쿠옥. [말레이메일=연합뉴스]

말레이시아 최고 갑부 로버트 쿠옥. [말레이메일=연합뉴스]

 말레이시아 최고 갑부인 로버트 쿠옥(95·郭鶴年)이 일본에 대해 “다시는 멍청한 행동을 반복하지 않길 바란다”고 말했다. 쿠옥은 16일(현지시간) 아사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말레이시아의 일제 강점기 시절 일본의 만행을 증언했다.

쿠옥은 샹그릴라호텔 체인 등을 소유한 갑부로, 언론과 거의 인터뷰를 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쿠옥은 “젊은 세대가 역사를 알았으면 좋겠다”며 인터뷰를 수락했다. “전에 일본 여성의 부탁으로 10분∼15분 정도 일제 시절 경험을 털어놓았더니 ‘믿을 수 없다. 일본 역사 교과서에는 이런 이야기가 없다’는 반응을 보여 충격받았다”면서다.

인터뷰에 따르면 쿠옥이 살았던 조호르바루에서 50㎞ 떨어진 마을 ‘울루 티람’에서 학살이 이뤄졌다. 일본의 침략으로 유라시아인 80~90명이 가톨릭 성당이 있는 울루티람으로 피신했다. 일본군이 어느 날 소녀들을 만져 주민들이 항의하자, 며칠 뒤 일본군들이 몰려와 모두 살해했다고 쿠옥은 증언했다. 쿠옥은 “피해자 중 한 명은 유라시아인들과 가까운 내 친구였다”며 “내 학교 선생님을 포함해 내가 알고 있던 15∼20명이 한꺼번에 죽임을 당했다”고 덧붙였다.

쿠옥과 함께 중국학교에 다니던 반 친구들도 살해됐다고 쿠옥은 말했다. 그는 “여학생들이 일본인들에게서 강간당하고 온 가족과 함께 잔인하게 살해당한 뒤 운동장에 묻혔다는 말을 들었다”고 전했다.

쿠옥은 전쟁 중 무역회사인 ‘미쓰비시 쇼지’에서 일하고, 일본어를 공부했다. 그는 ‘말레이시아는 영국의 식민지배에서 해방해준 일본에 감사해야 한다’는 일본의 주장에 대해 “믿고 싶어하는 것을 바꿀 수 없기에 할 말이 없다”고 답했다. 이어 “나는 일본 기업과 함께 일했고, 일본 국민을 이해하며 일본의 친구다. 하지만 동시에, 나는 그들이 멍청한 행동을 반복하지 않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일본은 정직하고 근면한 민족이다. 그들은 평범한 삶을 살기 원한다. 그들은 소수의 범죄자로부터 현혹됐다”며 “이런 끔찍한 악행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길 간절히 바란다”고 강조했다.

쿠옥은 설탕 정제업, 부동산, 농장, 호텔, 물류 등 다방면의 사업에서 부를 일궈 올해 3월 포브스 추산으로 128억 달러(15조5000억원)의 재산을 소유하고 있다.

추인영 기자 chu.in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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