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바람을 부르는 바람개비 39 '공단 길병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1면

인근 공단에서 일하는 외국인 근로자를 무료 진료하고 있는 남동길병원 의료진.

'원진레이온' 사건은 1990년대 초 산업재해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됐다. 30년 가까이 이황화탄소에 노출돼온 공장 근로자들이 경련과 마비증세를 보이고 심하면 생명까지 잃는, 끔찍한 직업병이 세상에 알려진 것이다. 이들 환자의 일부는 80년대부터 길병원을 찾아왔다.

의사들은 내게 공장 근로자들의 슬프고 안타까운 사연을 들려주었다. 의사들이 치료 과정에서 보고 들은 공장의 작업환경은 기가 막힐 정도로 열악했다. 얘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근로자들이 너무 불쌍해서 나도 모르게 눈시울을 적시곤 했다.

80년대 후반 구월동 길병원이 개원한 뒤 산재 환자는 갈수록 늘어났다. 길병원은 공업단지인 반월.시화.주안.부평.남동공단이 이어지는 길목에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에 산업재해를 입은 많은 근로자들이 하루가 멀다하고 우리 병원으로 달려왔다. 손가락이 잘리고, 손목과 팔이 으깨져 병원을 찾아온 '구릿빛' 산업전사들을 보면서 나는 착잡한 마음을 달랠 수 없었다. '이 분들을 돌보자면 구월동 길병원의 본원만으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체 일부가 잘려 분초를 다투는 환자에게는 더 빨리 접합수술을 해주고, 미리 직업병과 산재 예방에 관한 교육도 해주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공단 길병원'을 하나 더 세워야 했다.

93년 인천시 남동공단 내에 문을 연 남동길병원과 산업의학연구소는 그런 동기로 설립됐다. 본원의 산업보건과를 확대 발전시킨 '산업전사용 병원'이었다.

예상대로 공단 환자들이 물밀듯 몰려들었다. 당시엔 작업장에서 사고가 나면 응급조치도 못하고 허겁지겁 서울로 이송하느라 치료시기를 놓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우리는 남동병원과 본원 간에 유기적인 협진체제를 구축해 응급조치부터 건강을 되찾을 때까지 산재 근로자의 재활에 만전을 기했다. 그래서 환자들은 이른 시일 내에 직장에 복귀할 수 있었다.

어느 날 손목이 잘린 환자가 남동길병원을 찾아왔다. 그런데 그 환자의 잘린 손이 없었다. 급한 마음에 그냥 몸만 병원으로 달려온 것이다.

"잘린 손은 어디 있어요?"

"그냥 버렸는데요…."

"빨리 찾아오시면 붙일 수 있습니다."

환자 보호자는 부랴부랴 쓰레기통에 버려진 손을 찾아 가져왔다. 우리 의료진은 오랜 시간 가는 혈관과 신경을 이어 접합에 성공했다. 당시만 해도 절단사고가 많았지만, 이렇게 미세수술로 접합을 하는 전문병원은 드물었다. 일반인은 그런 의술이 있는지조차 잘 모르던 시절이다.

공단이 커지면서 외국인 근로자도 늘어났다. 불법 취업이든 산업연수생 제도를 통해 들어오든 공단의 외국인 근로자들은 의료 사각지대에 방치되기 일쑤였다. 원훈이 '박애'인 병원에서 그들을 보고 눈 감고 방치할 순 없었다. 남동길병원은 2002년부터 '외국인 노동자 무료 진료'를 정례화했다.

이길여 가천길재단 회장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