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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에서 활개치는 '푸틴 사병들', 옛소련 부활 꿈꾼다

중앙일보

입력

민간용병으로 아프리카 정권 마음 사로잡아

중앙아프리카공화국(CAR) 수도 방기의 거리에 "CAR은 러시아와 손잡는다. 말은 적게, 일은 많이"는 글이 담긴 포스터가 걸려 있다. 러시아가 아프리카 국가들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하며 아프리카로 돌아오고 있다고 미 CNN이 특집기사에서 보도했다.[사진 CNN 캡처]

중앙아프리카공화국(CAR) 수도 방기의 거리에 "CAR은 러시아와 손잡는다. 말은 적게, 일은 많이"는 글이 담긴 포스터가 걸려 있다. 러시아가 아프리카 국가들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하며 아프리카로 돌아오고 있다고 미 CNN이 특집기사에서 보도했다.[사진 CNN 캡처]

“중앙아프리카공화국은 러시아와 함께.”
“러시아 : 당신 군대와 손잡을 것.”
아프리카 대륙 중심부에 있는 중앙아프리카공화국(CAR). 수도 방기의 거리엔 위와 같은 문구의 포스터가 걸려 있다. 라디오에선 러시아 음악이 흘러 나온다. 러시아어를 교육하는 라디오 프로그램도 방송 중이다. CAR 군인은 러시아제 무기를 들고 러시아어로 훈련을 받는다.
이는 미국 CNN 방송이 전한 최근 CAR의 풍경이다. 러시아가 아프리카에서 영향력을 키워가고 있다. 용병을 통해서다. 러시아는 민간군사기업(PMC)을 통해 CAR을 비롯한 아프리카 여러 국가의 군대를 훈련하고 있다. 정정 불안에 시달리는 아프리카 여러 정권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이유다.

CNN "러시아 PMC는 푸틴의 사병"

CNN은 최근 탐사보도를 통해 러시아의 민간군사기업(PMC)을 ’푸틴의 사병(私兵)“이라고 표현했다. 그러면서 러시아가 PMC를 통해 아프리카 국가의 다이아몬드나 금, 광물 등 자원 채굴권을 얻어가고, 대통령 선거 등 현실정치에도 개입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사진 CNN 캡처]

CNN은 최근 탐사보도를 통해 러시아의 민간군사기업(PMC)을 ’푸틴의 사병(私兵)“이라고 표현했다. 그러면서 러시아가 PMC를 통해 아프리카 국가의 다이아몬드나 금, 광물 등 자원 채굴권을 얻어가고, 대통령 선거 등 현실정치에도 개입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사진 CNN 캡처]

중요한 것은 PMC가 사실상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지시를 받는 군사조직이란 점이다. CNN은 아프리카에서 활동 중인 러시아 PMC를 “푸틴의 사병(私兵)”이라고 표현했다. 러시아는 PMC를 통해 다이아몬드나 금·광물 등 자원 채굴권을 획득하고, 그 나라의 대통령 선거 등 현실정치에도 개입하며 세력을 키우고 있다. CNN은 “러시아는 PMC로 아프리카에서 경쟁 중인 (미국·중국 등) 라이벌 국가의 허를 찌르며 (옛 소련 시절) 존재감을 회복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푸틴 셰프' 프리고진, 군사지원하고 채굴권 챙겨

2010년 예브게니 프리고진(왼쪽)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그에 있는 프리고진의 회사 시설을 둘러보고 있는 모습. 러시아 신흥재벌인 프리고진은 '푸틴의 셰프'란 별명을 가질 정도로 푸틴의 뜻을 실행하는 측근이다.[AP=연합뉴스]

2010년 예브게니 프리고진(왼쪽)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그에 있는 프리고진의 회사 시설을 둘러보고 있는 모습. 러시아 신흥재벌인 프리고진은 '푸틴의 셰프'란 별명을 가질 정도로 푸틴의 뜻을 실행하는 측근이다.[AP=연합뉴스]

CNN의 탐사보도에 따르면, 푸틴의 아프리카 프로젝트 선봉엔 올리가르히(러시아 신흥재벌) 예브게니 프리고진과, 그의 자금으로 움직이는 PMC조직 '바그네르'가 있다. 프리고진은 ‘푸틴의 셰프(요리사)’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푸틴의 뜻대로 움직이는 측근이다.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 댓글 부대를 동원해 개입한 혐의로 지난해 미국 재무부의 제재 대상에도 올랐다. 바그네르는 러시아의 대표적 PMC 조직이다. 지난 2014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크림반도 강제 병합 당시 우크라이나 친러 반군 편에 서며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이후 시리아, 리비아 내전에서 활동해 왔다.

러시아는 2017년부터 CAR에 경호, 안보 자문 및 군사 훈련을 위해 바그네르 소속 용병 250명을 파견했다. CNN 취재 결과 바그네르는 프리고진의 자금 지원을 받고 있다. 포스탱 아르샹주 투아데레 CAR 대통령의 안보고문인 발레리 자하로프(바그네르 소속)는 “투아데레 대통령으로부터 월급을 받는다”고 말했지만, CNN은 그가 프리고진의 회사 M-파이낸스로부터 급여를 받았다는 문서를 확보했다. 프리고진의 또 다른 회사 ‘로바예 인베스트’는 군사지원 대가로 CAR로부터 7곳의 다이아몬드와 금광, 광물 채굴권을 얻어냈다.

바그네르 용병 "난 푸틴의 그림자 부대" 

바그네르 용병들은 조직의 리더가 푸틴 대통령임을 알고 있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용병은 CNN에 “우리는 푸틴 대통령의 지시는 무엇이든 해내는 전투원”이라며 자신들이 러시아의 힘과 영향력을 확장하는 ‘그림자 부대’라고 고백했다.

한 러시아인 용병 교관이 중앙아프리카공화국 군인을 지도하고 있다,[사진 CNN 캡처]

한 러시아인 용병 교관이 중앙아프리카공화국 군인을 지도하고 있다,[사진 CNN 캡처]

푸틴은 바그네르 등 러시아 용병과의 연관성을 부인하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푸틴의 승인 없이 바그네르가 활동하는 건 상상할 수 없다고 말한다. 바그네르의 훈련 캠프는 러시아 남부 몰키노에 있다. 몰키노엔 러시아군 제10 특수여단이 주둔하고 있다. 지난해엔 CAR에서 바그네르의 활동을 취재하던 러시아 언론인 3명이 피살됐는데, 이들은 푸틴의 정적인 러시아인 망명 재벌 미하일 호도르콥스키의 지원을 받고 있었다.

PMC를 앞세운 러시아의 군사적 영향력이 미치는 곳은 CAR만이 아니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러시아는 내전 중인 리비아에서 한 리비아 전직 장성을 지원해 그가 남부 리비아에서 세력을 키우는 걸 돕고 있다. 수단의 오마르 하산 알-바시르 대통령은 지난 1월 반정부 시위에 맞서 러시아 용병들을 데려왔다. 지난해 봄에는 말리와 니제르, 차드, 부르키나파소 및 모리타니 등 사하라 사막 이남 5개국이 러시아에 군사지원을 요청했다. 테러단체 이슬람국가(IS)와 알카에다에 맞서 싸우고 있는 자국 보안군을 도와달라는 것이 이유다. CNN에 따르면 러시아는 아프리카 국가들과 약 20개의 군사협정을 맺고 있다.

아프리카서 20개 군사협정…선거까지 개입

러시아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는 아프리카 주요 국가들. [자료 : CNN]

러시아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는 아프리카 주요 국가들. [자료 : CNN]

지난 6월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아프리카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러시아의 전략이 담긴 문건을 입수해 보도했다. 문건에는 프리고진과 연계된 기업과 아프리카 각국 정부의 협력 관계를 1∼5등급으로 분류해 놓고 있다. CAR과 수단, 마다가스카르가 최고 등급인 5등급이었다. 가디언은 러시아가 마다가스카르와 수단의 대선에 개입했으며, 프랑스령인 인도양의 코모로와 프랑스 정부사이의 갈등을 키우려고 했다고 보도했다.

냉전 시절 아프리카에 본격적으로 진출했던 러시아는 소련 붕괴와 함께 아프리카를 떠났었다. 자하로프는 “아프리카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했던 소련의 영광을 재연하려는 듯 러시아가 다시 아프리카로 복귀하고 있다”고 말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크림반도 강제병합 이후 강도 높은 경제제재를 받은 러시아가 '아프리카'라는 새로운 외교 파트너를 찾았다”고 보도했다. 푸틴은 올해 하반기 아프리카 나라들과 정상회의를 개최할 예정이다.

美 경계 눈초리…"러시아 아프리카서 부패한 거래"

이같은 러시아의 움직임에 미국은 경계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고 있다. 존 볼턴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지난해 12월 “러시아가 아프리카에서 벌이는 부패한 경제 거래는 아프리카 성장을 저해할 뿐 아니라 국제사회 안보를 위협한다”고 비난했다. 미군 아프리카 사령부의 스티븐 타운센드 사령관은 지난 4월 “아프리카의 러시아 용병은 크렘린(러시아 대통령궁)과 밀접하게 연관된 준 군사조직”이라며 “아프리카의 미군 병력이 감소하는 상황에서 러시아의 영향력이 커지는 것을 우려한다”고 말했다.
이승호 기자 wonder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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