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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체크]日수입국서 한국비중 4.1%…화이트국 타격 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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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12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일본에 대한 전략물자 수출통제를 강화하는 조치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뉴스1]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12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일본에 대한 전략물자 수출통제를 강화하는 조치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뉴스1]

“일본에 맞대응하는 조치는 아니다.”(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대항 조치라면 세계무역기구(WTO) 위반이다. 다만 일본에 실질적인 영향은 없을 것이다.”(사토 마사히사 일본 외무성 부대신)

12일 한국 정부가 일본을 화이트 국가(안보 우호국)에서 제외한다고 발표한 데 대한 한ㆍ일 정부 관계자의 엇갈린 해석이다. 한국 발표에 대해 요미우리ㆍ아사히ㆍ니혼게이자이 신문 등 일본 언론은 일제히 “보복 조치”라고 규정했다. 한국 조치가 일본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선 “가정을 전제한 영향을 언급하는 건 적절치 않다”며 즉답을 피한 한국 산업부와 “즉시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란 일본 외무성 분석이 대비됐다. 일본을 화이트국에서 배제한 조치의 영향과 의미를 따져봤다.

전면전ㆍ맞대응 맞나

현 상황에서 한ㆍ일 양국이 닮은꼴인 지점이 있다. 화이트 국가에서 서로를 배제하며 “보복 조치가 아니다. 전략물자 관리에 문제가 있어 정상적으로 수출을 통제한 것”이라고 설명한 부분이다. 하지만 일본 조치가 대법원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에 대한 보복인 것처럼 한국의 이번 조치도 ‘맞대응’이란 분석이 나온다. 시점상 일본 조치 발표 직후 내놓은 데다 한국 정부가 “화이트 국가 제외 등 대응 조치를 고려하고 있다”고 수차례 공언해왔다는 점에서다.

그러면서도 ‘맞대응’이란 언급을 피한 건 WTO 제소 시 “정치 이슈에 대해 무역 보복 조치를 했다”고 주장할 한국 측 논리를 일본 측이 그대로 베껴 역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장은 “9월 시행할 화이트 국가 배제 조치를 ‘사전 통보’하고 언제든 양자 협의에 응할 수 있다는 식의 협상 여지를 두는 등 ‘절차’를 지킨 것은 WTO 제소를 염두에 둔 조치로 해석된다”고 말했다.

왜 일본 ‘다’로 안 뒀나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당초 정부는 8일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에서 전략물자 수출입고시를 개정해 기존 ‘가(수출 우대국)’ ‘나’ 국가 분류에 ‘다’ 국가를 신설해 일본을 포함하는 방안을 검토했다. 결정을 한차례 미룬 뒤 12일엔 ‘다’ 대신 ‘가의 2’를 신설해 일본을 포함했다. 정부가 명분과 실리를 동시에 택하는 ‘묘수’를 둔 것으로 해석된다.

8일 회의에 참여한 한 정부 관계자는 “‘가’와 ‘나’ 지역을 나누는 기준은 4대 국제 수출통제 체제를 준수하느냐 여부인데 일본은 (수출통제 체제를) 지키고 있어 ‘나’는 물론 ‘다’를 신설해 넣는 것도 명분이 부족하다”며 “당장 일본을 ‘다’로 두면 ‘나’에 속하는 북한만도 못하다는 반박이 나올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가의 2’로 두면 명분을 지키되 실리를 얻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고 덧붙였다.

타격 ‘동급’일까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렇다면 실리는 제대로 챙긴 것인지 따져봐야 한다. 일본이 화이트 국가 제도를 운용하며 수출을 통제하는 전략물자(1120개)는 한국(1735개)보다 적다. 조항 편제가 달라 숫자에 차이가 있을 뿐 군용 물자와 첨단소재, 전자통신 부품 등 품목은 비슷하다.

문제는 수출 통제로 타격을 입힐 수 있느냐는 점이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올 상반기 기준 일본 전체 수입에서 차지하는 한국산 비중은 4.1%다. 한국은 중국(23.2%)ㆍ미국(11.1%)ㆍ호주(6.4%)에 이어 일본의 4위 수입국이다. 비중도 작지만, 한국산 수입 의존도가 80%를 넘는 정유 제품, 철강 등 ‘알짜배기’ 제품은 범용이라 이번 한국 조치를 실행하더라도 대체하기가 쉽다. 심지어 삼성전자ㆍSK하이닉스 같은 반도체도 마찬가지다. 실효성이 크지 않다는 얘기다. 조경엽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한국은 소비재 위주로 일본에 수출하고 있어 이번 조치가 일본에 피해를 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반대로 일본이 수출을 규제한 반도체 소재 외에 기계ㆍ금속 등은 대일 수입 의존도가 높고 대체도 어려워 타격이 ‘비대칭’이다. 되려 일본으로 수출하는 우리 기업의 수출절차가 까다로워져 우리 기업에 애꿎은 피해가 돌아갈 수도 있다. 일본으로부터의 수입을 막아야지, 반대로 일본으로부터 돈을 벌어오는 수출을 막는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김원식 건국대 경제통상학과 교수는 “한ㆍ일 경제전쟁으로 양국이 다른 나라 거래처를 찾게 되면 반도체 등 첨단산업 외의 분야에서 한국을 턱밑까지 추격한 동남아국가만 유리해질 수 있다”며 “한ㆍ일 관계가 복원된다고 해도 공급 체인은 원래대로 환원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박태성 실장은 “국내 수출 기업이 받는 영향이 최소화하도록 제도를 운용하겠다”고 말했다.

노리는 효과

일본의 경제보복 조치는 ‘현재 진행형’이다. 지난달 초부터 반도체 소재 3종의 한국 수출을 통제한 데 이어 화이트 국가 배제에 따른 조치도 실행을 앞두고 있다. 반도체ㆍ탄소섬유ㆍ이차전지 등 국내업체 피해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일본의 ‘확전’을 막기 위한 ‘경고 카드’ 성격이 있다.

우리 기업에 아직 실질적인 피해는 보고된 바 없다. 문제는 ‘불확실성’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5대 그룹 임원은 “한일 경제전쟁이 확산하면서 대일본 수출입에 불확실성이 커진 것이 부담”이라고 말했다. 바꿔 말하면 양국의 조치가 한국은 물론 일본 기업에도 ‘불확실성’이란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얘기다.

세종=김기환·손해용 기자 kh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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