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美보다 높은 규제 장벽이 소재 국산화 가로막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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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서울 여의도 전경련 컨퍼런스홀에서 한국경제연구원 주최로 열린 '소재 부품산업 한-일 격차의 원인과 경쟁력 강화방안' 세미나에 참석한 참석자들이 소재 산업을 주재로 토론하고 있다. [사진 전경련]

12일 서울 여의도 전경련 컨퍼런스홀에서 한국경제연구원 주최로 열린 '소재 부품산업 한-일 격차의 원인과 경쟁력 강화방안' 세미나에 참석한 참석자들이 소재 산업을 주재로 토론하고 있다. [사진 전경련]

“화학물질 관리 규제를 일본 수준으로 풀지 않으면 소재 산업 국산화는 불가능하다”

한국경제연구원 12일 소재산업 세미나 #"일본 수준으로 화학물질 규제 낮춰야" #"완벽한 국산화는 꿈에 불과해" 지적

곽노성 한양대 과학기술정책학과 특임교수는 일본의 경제보복 이후 힘을 얻고 있는 소재 산업 국산화에 대해서 이렇게 분석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이 12일 연 ‘소재・부품산업 한일 격차의 원인과 경쟁력 강화방안’ 세미나에 참석해서다.

곽 교수는 “한국의 화학물질 규제 강도는 일본은 물론이고 미국보다 높다”며 “가장 높은 화학물질 규제를 가지고 있는 유럽연합(EU)과 비슷하거나 이보다 높은 수준"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화평법(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에 관한 법)을 현장에 적용할 수 있는 전문인력이 턱없이 부족해 법에 맞춰 이를 관리할 수 있는 능력도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재계에선 일본 정부가 수출 규제한 3대 반도체 핵심 소재를 포함해 각종 소재 국산화에 있어 화학물질 규제가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정부도 이런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다. 산업부 등은 지난 5일 일본의 수출규제에 대응하기 위해 화학물질관리법(화관법) 등 관련 기업이 의무적으로 거쳐야 하는 환경 절차를 간소화하기로 결정했다.

정부가 지난 5일 관계부처 합동으로 내놓은 ‘소재·부품·장비산업 경쟁력 강화 대책’에 따르면 수급위험 대응 물질에 한해 화학물질 취급시설 인허가 및 기존 사업장의 영업허가 변경 신청 때 심사에 필요한 기간을 기존 75일에서 30일로 단축기로 했다.

이에 대해 곽 교수는 “현재 환경부가 보유하고 있는 전문 인력 등으로는 화관법 등을 운용할 수 있는 능력이 되지 않는다”며 “화관법과 화평법을 없애고 한국 정부의 능력에 맞는 새로운 법을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선 EU 수준이 아닌 일본 수준에 맞춰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세미나에선 일본의 무역보복이 일본 정부의 패착이 될 것이란 해석도 나왔다. 이홍배 동의대 무역유통학부 교수는 “한국과 일본의 기술격차는 1985년 20배에서 2000년 14배, 2015년 3.8배로 축소됐다”며 “반도체를 포함해 전기·전자 관련 품목에 대해 한국과 일본의 산업 구조가 밀접하게 연결돼 있기 때문에 일본 정부의 수출규제는 결국 일본 정부의 패착이 될 것”이라고 해석했다.

정부가 내놓은 대책과 달리 완벽한 소재 국산화는 불가능하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교수는 “한국은 자원 부족국가로써 필요한 소재를 수입하기 때문에 정부가 내놓은 대책과 달리 완벽한 국산화는 꿈에 불과하다”며 “(국산화를 통해) 소재 수입은 거부하면서 완제품인 반도체는 수출하겠다는 발상은 자유무역 원칙에도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비상시국인데 정부 대응은 기가 막힐 정도로 안일하다”며 “과학기술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없는 상태에서 정부가 현실성이 없는 대책만 내놓고 있다”고 쓴소리를 내놨다.

이 교수는 “불화수소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아는 장관이 단 한명도 없다”며 “(불화수소) 국내 생산 능력이 충분한데도 대기업이 이를 구매하지 않는다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께서 말씀하셨는데 이는 산업 현장을 알지 못하고 한 말”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이번 사태의 원인을 국내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갈등으로 몰아가는 건 잘못됐다”며 “당장 반도체 기업에 필요한 3가지 소재를 어떻게 확보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정부가 구체적인 대안을 내놓는 게 우선”이라고 지적했다.

강기헌 기자 emck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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