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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진국의 퍼스펙티브

정부는 윈윈하고, 나머지는 민간에 맡겨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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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김진국
김진국 기자 중앙일보 대기자·칼럼니스트

일본의 사과와 진정성

“야,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

일본, 자꾸 사과 요구에 불만이나 #계산과 번복 언행에 진정성 의심 #국가 간 충돌 절충점 찾는 게 외교 #사과에 목매기보다 큰 전략 필요

2015년 개봉한 영화 ‘베테랑’에 나오는 황정민의 대사다. 동료 형사에게 자존심을 살리자며 한 말이다. ‘가오’는 일본말(顔·かお)인데도 아직도 쓰이고 있다. ‘명예·체면·허세’ 정도를 가리키는 비속어다.

‘왜색 비속어’지만 이런 생각은 우리 생활에 깊이 배어 있다. ‘양반은 얼어 죽어도 겻불은 안 쬔다’는 속담 같은 것이다. 아무리 궁해도 체면 깎는 짓은 하지 않겠다는 결기는 우리 민족의 자존심이다. 그렇지만 실용을 멀리하다 백성의 배를 곯리고, 나라를 빼앗기는 일도 많았다.

한·일 관계는 특히 자존심 다툼이 날카롭다. 2015년 설치된 ‘화해·치유재단’을 해체한 배경도 ‘진정한 사과’다. 피해자 할머니들의 동의를 안 받았다고 해체했는데, 할머니들이 요구하는 게 바로 ‘진정한 사과’다.

할머니들뿐 아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도 1993년 비슷한 말을 했다. 취임 직후 그는 “일본 정부에 물질적 보상을 요구하지 않겠다”며 “그래야 우리가 도덕적 우위를 갖고 새 한·일 관계에 접근할 수 있다”고 했다. 그해 6월 ‘일제하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생활안정지원법’을 제정했다.

오부치의 결단, 아베의 새길

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일본 정부는 왜 ‘진정한 사과’를 안 하는 걸까. 일본 정부는 여러 차례 사과와 회한의 뜻을 전달했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받은 적이 없다고 한다. 왜 이런 인식의 차이가 발생하는 걸까. 일본 정부는 문제가 제기될 때마다 표현을 다듬으며, 흥정하듯 사과해왔다. 정치인들이 기회만 있으면 뒤집는 발언을 해왔다. 이 바람에 ‘진정성’을 따지고, 번번이 다시 사과를 요구했다.

한국 정부도 맺고 끊는 큰 결단이 부족했다. 배상금을 포기한 중국이나 과거를 이야기하지 말자는 베트남과는 다른 길을 걸었다. 권위주의 정부 시절부터 자극적인 말을 주고받으며 여론에 불을 지르고 국내 정치에 이용해왔다.

한·일 국교 정상화를 한 1965년 시나 에쓰사부로 외상의 발언을 보면 무슨 말인지 알 수 없게 꼬여 있다. “우리의 두 나라, 그곳의 긴 역사는 불행한 시간이었습니다. 이것은 정말로 유감이며 우리는 깊게 후회를 느낍니다.”

84년에는 일본에서 신격화돼 있는 히로히토 일왕이 전두환 대통령에게 사과했다. 일본으로서는 큰 결단이다. 그렇지만 ‘불행한 과거’라는 추상적 표현과 ‘유감’이라는 중립적 단어에 대해 한국 내에서는 불만이 남았다.

위안부 문제는 특히 그렇다. 93년 ‘고노 담화’(고노 요헤이 관방장관)에서 일본군이 위안부 동원에 개입한 사실을 처음 인정했다. 고노 장관은 ‘군 당국의 만행’과 관련해 “일본 정부는 치유할 수 없는 정신적·육체적 상처를 입은 위안부 여성들에게 진심 어린 사과와 참회의 뜻을 전한다”고 밝혔다.

95년 ‘무라야마 담화’는 일본 각의를 거친 공식 사과라는데 의미가 있다. “아시아 국가 국민에게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안겨줬다. 의심의 여지가 없는 역사적 사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여 통절한 반성의 뜻을 표하며 진심으로 사죄한다.”

98년 김대중-오부치 선언은 전환점이었다. 확실한 사과로 과거를 청산하고, 미래를 향해 손잡고 가자고 약속했다. 오부치 총리는 “식민지 지배로 인해 한국 국민에게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안겨줬다는 역사적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이면서 이에 대해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를 했다. 김 전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고, “양국이 과거의 불행한 역사를 극복하고 화해와 선린우호 협력에 입각한 미래지향적인 관계를 발전시키기 위해 서로 노력하는 것이 시대적 요청”이라고 화답했다.

그러나 약속대로 가지 않았다. 위안부 문제가 다시 제기됐다. 2001년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는 위안부 문제를 ‘아시아 여성 기금’으로 해결하려 했다. 이를 받아들인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주한 일본 대사를 통해 사과 편지를 전달했다. “일본의 총리로서 헤아릴 수 없는 고통스러운 경험을 겪고 치료할 수 없는 신체적·정신적 상처를 입은 모든 여성에게 나의 가장 진실한 사과와 참회를 새로 넓힌다.” 그러나 정부 자금에 민간 모금 40%를 포함한 것은 책임을 회피하려는 것이라는 반발에 부딪혔다.

2015년 100% 일본 정부 자금으로 ‘화해·치유재단’을 만들었다. 아베 총리는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전화해 “위안부 피해자에게 사죄와 반성의 마음을 표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피해자의 동의가 없었다는 이유로 문재인 정부가 해체했다. 아베 총리의 사과를 피해자들에게 편지로 전달하는 방안도 논의됐으나 아베 총리는 “합의 밖의 일이다. 털끝만큼도 생각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또 무라야마 담화를 계승하는 문제도 오락가락하며 과거 정부의 사과 노력을 허사로 돌리는 듯한 태도를 보여왔다.

힘이 있거나 국제법을 지키거나

아베. [UPI]

아베. [UPI]

사과는 많이 한 것 같은데 왜 해결이 안 됐을까. 한 전직 외교부 장관은 “일본 사람들은 한국이 필요할 때마다 정치적으로 이용하기 때문에 잘 해보려고 노력해도 소용없다고 주장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국에서 보면 교묘한 표현으로 책임을 피하고, 과거 사과마저 뒤집는 언행을 반복하니 입에 발린 형식적 사과 아니냐고 생각한다.

국가 간의 관계는 100% 만족할 수는 없다. 절충하는 방법밖에 없다. 한국에 대법원이 있지만, 일본에도 최고재판소가 있다. 한국의 민심이 있는 것처럼 일본에도 여론이 있다. 국가 주권이 부딪치면 전쟁 아니면 협상이다. 다른 나라에 외교 협상이 아닌 강요할 수단은 전쟁뿐이다.

힘이 있으면 전쟁도 할 수 있다. 우리는 힘이 센 것도 아니다. 억울하지만 중국의 환구시보가 손자병법을 인용해 “힘이 약한 군대가 강경 대응만 고집하면 강대한 적에게 포로가 될 뿐”이라고 조롱한 그대로다. 힘을 길러야 한다. 우리 유전자는 공존과 상생이다. 안중근 의사의 ‘동양평화론’은 힘으로 침략한 일제에 공영을 훈계한 사상이다.

그동안 미국이 한·일 갈등을 조정해줬다. 전략상 한·미·일 협력관계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한·미동맹이 튼튼하고, 미국의 이익이 될 때 이야기다. 일본도 달라졌다. 패전의 굴욕과 식민지에 대한 부채의식을 털어내 버렸다. 미국은 전략상 그런 일본을 부추기고 있다. 사드 보복에 대한 정부의 어정쩡한 대응이 주변 강대국들의 도발 도미노에 방아쇠가 됐다.

국제법에 기댈 수도 있다. 국제법은 ‘사과’를 받아주지도, ‘진정성’을 판단해주지도 않는다. 더구나 대부분의 강대국이 2차 세계대전 이전 식민지를 경영한 공범들이다. 우리 기대치를 낮춰야 한다. 일본보다 훨씬 냉정하고, 치밀한 준비가 필요하다. 그래도 어렵다. 미국이 보여주는 힘의 외교, 그것이 현실이다.

겻불 쬐느니 얼어 죽겠다고?

정부 간에는 두 번 마무리 지었다. 1965년 한·일 기본조약은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됐다고 확인했다. 김대중-오부치 선언은 ‘20세기의 한·일 관계를 마무리’하기로 했다. 그런데 2011년 헌법재판소는 정부가 개인 청구권 문제도 해결해줘야 한다고 결정했다.

그렇다고 여기에 모든 걸 걸 것인가. 일본 당국자의 사과 표현 하나에 민족의 운명을 걸 수는 없다. 100% 관철하는 것뿐 아니라 외교적 타결도 정부의 몫이다. 65년 체제를 바꾸자는 주장까지 나온다. 미·중 대결이 격화되는 마당에 어디로 가자는 건가. 얼어 죽어도 겻불을 쬐지 않겠다는 결기는 이해하지만, 국민에게 그걸 강요할 순 없다. 전쟁이 아닌 한 100% 만족은 없다. 불만스러워도 윈윈하는 타협점을 찾아야 한다. 정상끼리 마무리하고 새로운 미래를 열어야 한다. 그게 외교다. 그래도 부족한 건 민간에 맡기는 게 현명하다.

김진국 중앙일보 대기자·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