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뮤직] 6. 쿠바 혁명의 산물 '누에바 트로바' <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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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라는 명칭은 원주민 언어로 중간지대를 의미하는 '쿠바나칸(Cubanacan)'에서 유래했다. 쿠바는 스페인 식민지 시절부터 남미로 가는 중요한 중간 기착지이자 풍부한 문물이 모이는 곳이었다. 이러한 지리적 위치는 다양한 문화의 융합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브라질이 '음악의 대륙'이라면, '만(灣)의 열쇠'로 불리던 쿠바는 '음악의 섬'이다. 이토록 다양한 음악 가운데에서도 가장 독특한 쿠바음악을 꼽으라면 '누에바 트로바(새로운 발라드)'다. 대부분의 쿠바음악이 흥겨운 댄스뮤직인데 비해 누에바 트로바는 사색적인 어쿠스틱기타 선율에 뚜렷한 메시지가 담긴 쿠바음악의 또 다른 얼굴이기 때문이다.

누에바 트로바의 뿌리인 트라디시오날 트로바(전통 트로바)를 듣기 위해 올드 아바나 시내에 위치한 '카사 데 라 트로바(트로바의 집)'를 찾았다.

무척 고풍스러운 카사 데 라 트로바에는 할머니 관객들이 일찍 자리를 잡고 있었다. 60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기타연주자는 진지한 표정으로 손때 묻은 기타를 조율하며 공연 준비 중이었다. 세월을 잔뜩 머금은 낡은 의자, 할머니관객, 노(老)연주자…. 전통 트로바는 고풍스러운 느낌으로 다가왔다.

공연은 스페인무곡 풍의 감미로운 기타 선율로 시작했다. 그 반주에 맞춰 걸쭉한 목소리의 싱어가 노래를 부르는데, 부드러운 기타연주와 굵은 목소리가 묘한 감칠맛을 낸다. 기타반주 하나만으로도 꽉 찬 맛을 내니 정말 쿠바인들은 음악기질을 타고나는가보다.

한 곡이 끝나자 어느새 객석이 다 찼다. 관광객이 많은 것도 의외였지만, 젊은 관객이 다수 자리를 채운 것도 뜻밖이었다. 관객의 반응이 좋아지자 가수는 한 소절마다 표정과 몸짓으로 노래의 의미를 전달했고, 기타연주자의 표정도 드라마틱해졌다. 나이든 관객들은 노래 한마디마다 고개를 끄덕이며 음미하는 모습이었다.

그렇다면 전통 트로바와 누에바 트로바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평론가 기예르모 빌라르는 누에바 트로바에는 새로운 어법이 담겨 있다고 말했다. 사랑노래가 많았던 전통 트로바에 비해 보다 현실적인 메시지를 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메시지가 필요해진 건 1959년 쿠바혁명이 일어난 직후였다. 당시 향락의 도시였던 아바나에서 유행하던 댄스뮤직으로 혁명의 의의를 전달하기란 어림도 없었다.

그래서 카스트로의 측근이었던 카를로스 푸에블라는 20세기 초부터 '관타나메라'같은 세계적인 히트곡으로 인기가 있었던 전통 트로바에서 그 돌파구를 찾았다.

스페인의 기타음악과 샹송, 그리고 트로바도르(Trovador:유럽의 음유시인)스타일이 혼합된 전통트로바를 바탕으로 조국사랑.자유.이상실현.평등의 메시지를 담은 누에바 트로바를 선보인 것이다. 어쿠스틱기타 반주에 맞춰 잔잔하게 노래하는 이 음악은 댄스뮤직으로 흥청거리던 쿠바음악계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이후 누에바 트로바는 실비오 로드리게스(Silvio Rodriguez)와 파블로 밀라네스(Pablo Milanes)같은 걸출한 아티스트를 배출하면서 쿠바음악을 대표하는 또 하나의 장르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길에서 만난 40대 후반의 아바나 시민은 "몇 년 전부터 누에바 트로바의 인기가 시들해졌다"고 말했다. "경제적으로 어려워지면서 사람들이 고된 현실을 잊고자 댄스뮤직을 많이 듣는다"는 것이다. 누에바 트로바는 쿠바의 힘겨운 경제상황과 발걸음을 함께 하고 있었다.

쿠바는 사회주의국가답게 나라의 정책적 지원이 음악발전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특히 쿠바혁명 이후 만들어진 '쿠바예술학교'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서양음악과 쿠바음악.클래식.대중음악.다양한 악기연주 등 체계적인 교육을 통해 오늘날 쿠바음악계를 리드하는 주요 뮤지션 대다수를 배출했다. 쿠바에서 만난 음악인 대다수가 이곳 출신이었다.

아바나=송기철 <대중음악평론가.mbc-fm '송기철의 월드뮤직'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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