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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양가 상한제 도입해도 강남 집값 잡기 어렵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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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집값 안정화 정책의 역설

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정부가 아파트 분양가 상한제 도입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지난해부터 하락 조짐을 보였던 서울 아파트값이 최근 들어 조금씩 다시 오르는 모습을 보이자 급한 불을 끄려는 의도다. 당분간 일본의 경제보복 대응에 전념하면서 속도를 조절하기로 했지만 도입 의지엔 변함이 없다. 정부는 고분양가로 인해 서울 집값이 다시 오를 수 있기 때문에 분양가를 통제하면 집값이 안정될 수 있다고 보는 것 같다. 과연 그런지 짚어보자.

80년대 도입하자 주택값 두 배 뛰어 #수요 늘고 공급 줄면서 가격 급상승 #수만호 분양권이 350만채 못 움직여 #분양권이 로또 되는 현상만 심해져

분양가 상한제는 정부에서 주택분양가에 대해 최고가격을 정한 후 그 가격 이하로만 분양할 수 있도록 하는 가격 규제다. 결국 가격에 관한 얘긴데 경제학 교과서만 봐도 원리를 이해할 수 있다. 정상적 상황에서는 수요·공급이 만나는 지점에서 균형을 이루게 되지만 정부에서 가격을 낮추면 수요·공급에 변화가 생긴다. 즉 가격이 싸지게 되니까 수요의 법칙에 따라 수요량이 급증하고, 공급자의 입장에서는 주택을 싸게 팔아야 하므로 공급량을 줄이는 결과로 귀착된다.

이렇게 줄어든 공급 상태에서는 분양받은 사람이 전매할 경우 시세차익(프리미엄)이 발생하게 된다. 이 프리미엄으로 인해 청약경쟁이 불붙게 되고 로또 청약이라는 단어까지 생겨났다. 최근에는 이 금액이 10억 원이 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런 프리미엄은 어디서 생겨날까. 청약받지 못한 수요자들의 소비자 잉여 손실과, 공급을 더 늘릴 수 있었는데 가격 규제로 공급을 줄임에 따라 발생한 생산자 잉여의 손실을 당첨자가 가져가는 구조다. 즉 사회구성원 대다수의 손실을 특정 수의 분양자에게 몰아주는 것인데, 과연 정당한 정책인지 고민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가격 통제 효과 없어

분양가 규제는 1977년부터 ‘분양 상한가’라는 제도를 도입하면서 시작됐다. 당시 중동 붐으로 인해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면서 사회 문제로 떠오르자 정부는 분양가를 획일적으로 규제하는 분양 상한가를 도입했다. 83년 85㎡ 초과 민영아파트의 평당 가격을 전년 수준인 평당 134만원으로 규제했다. 그러나 가격 규제로 인한 주택공급 위축이라는 교과서적 현상이 나타남에 따라 80년대 말 전셋값 폭등으로 대변되는 부동산 대란이 발생했다. 강남의 일부 아파트는 1~2년 만에 두 배 이상 오르기도 했다.

이에 정부는 주택 200만 호를 건설하면서, 89년부터 분양 상한가 규제를 대폭 완화한 원가연동제를 시행하게 된다. 즉 분양가를 획일적으로 규제한 것이 아니라 택지비·건축비 등에 연동했다.

200만 호 공급 효과로 이후 안정세를 보이던 시장은 외환위기를 맞게 된다. 미분양이 급증했고 건설업체도 상당수 도산하기 시작하자 99년에는 전면자율화를 실시해 분양가 규제가 폐지된다. 이후 택지 부족과 빠른 경제회복으로 인해 주택경기도 빠른 속도로 회복하면서 2000년대 초·중반의 집값 급등으로 이어졌다.그러자 2005년 분양가 상한제를 다시 도입했다. 재도입 초기에는 공공택지에서 개발되는 소형주택에 대해 규제하다가 2007년부터는 모든 공동주택에 대해 분양가 상한제를 적용하게 됐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부동산시장 위축을 극복하기 위해 규제 완화가 추진됐지만 반대 의견에 부닥쳐 2015년 4월에야 민간택지에 대해서만 분양가 상한제가 폐지됐다.

정부는 이 제도를 다시 도입해 분양가를 낮추면 집값이 잡힌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실제 가격 동향을 살펴보면 200만 호 건설 이후에는 분양가 상한제가 가격을 낮추었다고 보기 힘들다. 실제 몇몇 연구에서는 가격안정 효과가 전혀 없다고 보고됐다. 더구나 지금은 가격을 통제할 수 있는 여건이 더 나빠졌다. 200만 호 건설 당시 물량 공급은 주택 재고 물량의 27.8%에 달했지만, 지금은 분양 물량이 전체 재고의 2%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가격안정 효과보다는 오히려 주변 가격 수준으로 급등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서울은 더욱 심각하다. 서울 주택 수가 350만 채에 달하지만, 연간 분양 물량은 보통 수만호에 불과하다. 수만호 정도의 아파트 분양가를 낮춰서 350만 채의 가격을 낮추겠다는 것 자체가 난센스다. 그래서 서울에서 아파트 분양받는 것은 로또라고까지 한다. 금방 주변 아파트 시세를 상회하기 때문이다.

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공급 물량 작아 로또현상 불가피

대규모 물량 공급을 동반하지 않는 이상, 분양가 상한제는 집값을 낮추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거시경제 자체를 왜곡시키기도 한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에 분양가 상한제가 실시되자마자 서울의 주택 인허가 물량이 외환위기 이후 최악의 물량으로 감소했고, 그 직전에는 규제를 피하기 위해 분양물량이 폭증했다. 건설업체가 자율적 사업판단에 따라 공급물량을 조절하는 것이 아니라 경기가 나빠짐에도 불구하고 규제를 회피하기 위해 무리하게 분양을 해서 낭패를 보게 된 경우다. 이후 미분양으로 인한 고통은 전 국민이 떠안아야 했다.

최근 주택 사업자들의 최대 관심사도 분양가 상한제다. 올해 말 혹은 내년 분양을 목표로 사업을 진행했지만, 지금은 중지했다고 한다. 어느 정도의 규제로 발표될지 모르겠으나, 재건축과 재개발 사업들이 지금도 강화된 규제 때문에 연기되고 있는데 분양가 상한제마저 실행한다면 공급물량 위축이 생각보다 더 빨라질 가능성이 높다. 이는 경제여건이 조금만 좋아지면 언제든지 다시 집값이 급등할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다. 정상적인 경우 가격이 오르면 공급이 늘어나고, 가격이 급등하면 공급도 더 빨라져 시장은 균형을 찾아간다. 하지만 지금은 가격이 올라도 각종 규제로 인해 공급이 늘어나기 힘든 상황이다. 그래서 앞으로 부동산 시장이 요동칠 가능성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이제는 어떤 정책이 진정으로 시장을 안정시키고, 득이 되는지 사회 전체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시점이 됐다.

건설업체 주가 영향주고 아파트 품질 저하까지 초래

국토부 장관의 거듭된 분양가 상한제 발언으로 인해 주식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주식시장에서는 유명 건설업체의 주가가 52주 최저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각 경제 주체들에 미치는 영향은 어떨까.

먼저 기업 입장을 살펴보면 수익성이 과거보다 떨어지게 되므로 업계 전반적으로 불황이 다가올 가능성이 높다. 즉 수익이 감소함에 따라 주택사업 물량이 줄어들게 되고, 이에 따라 건설 및 부동산업계 전체가 위축된다. 경제성장의 큰 축을 담당했던 부문이 사라진다는 의미와 동시에 건설업과 밀접한 서민경제의 위축도 예상된다.

일반적으로 기업들은 부단한 노력을 기울여 원가절감과 품질 향상을 도모한다. 이를 통해 수익을 극대화하려는 것인데, 정부에서 가격을 규제하면 이런 노력이 크게 줄어들게 된다. 기술개발과 혁신의 유인이 줄어들어 산업 발전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소비자인 국민은 어떻게 될까. 분양가 상한제하에서는 분양가가 낮게 책정될 가능성이 커진다. 결국 건설업자들은 품질이 떨어지는 자재를 사용하게 된다. 기업이 목표로 하는 수익을 달성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저급 품질 위주의 주택 공급으로 다양한 수요를 만족하게 할 수 없게 된다. 10여 년 전 판교의 아파트 분양 때 생긴 일이다. 판교 입주예정자 연합회에서 비상대책회의를 열고 판교신도시에서 아파트 외벽이 저급 마감재로 시공되는 것에 대한 우려와 함께 대책을 요구했다. 당시에 입주자 중 일부는 입주하자마자 이미 사용된 저급 자재를 뜯어내고 자기가 원하는 자재로 바꾸는 공사를 했다. 오히려 낭비가 더 커진 꼴이다.

무주택자의 경우는 어떻게 될까. 무조건 신규아파트 분양만을 기다리게 된다. 그래서 매매보다는 전세로 머물기를 원하고, 이로 인해 전세가는 더욱 올라간다. 그들만 탓할 수는 없다. 서울에서 새 아파트를 분양받으면 수억 원 이상의 차익을 단기간에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주택매매 대기로 인해 주택거래 절벽현상은 더 지속할 가능성이 커진다.

이제는 청약 당첨자들만 큰 혜택을 보는 정책이 바람직한지 고민이 필요하다. 오히려 시장 왜곡에 따른 사회 전체의 비용을 일부 소수한테 몰아주기보다는, 차익 중 일부라도 공공이 거둬들여 서민주택 건설 등에 사용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지 않을까.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