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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전영기의 시시각각

국가 안보 걸고 왜 도박하려 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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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전영기
전영기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전영기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전영기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전쟁의 기본 원리는 나의 강한 것으로 적의 약한 곳을 치는 것인데 우리 정부의 대일 경제전에 미덥지 못한 구석이 있다.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의 파기 카드가 그렇다. 우리가 지소미아를 중지하면 일본도 피해를 보겠지만 한국의 안보엔 더 큰 구멍이 뚫린다. 아군의 더 큰 타격을 무릅쓰고 상대를 공격하는 방식은 병법 어디에도 나와 있지 않다. 고육지책이라는 자해 전술이 있긴 하다. 하지만 이는 면밀한 계산 끝에 최후에 얻을 보상이 훨씬 크다는 판단이 선 뒤에나 쓰는 극약처방이다. 지소미아를 없애 우리가 얻을 것이 무엇인가.

지소미아 파기 전략은 자해 행위 #미국 마음 떠나 껍데기 동맹 우려 #협정 잘 깨는 나라 이미지 조심을

일본과의 지소미아 폐기 검토는 청와대의 김현종 국가안보실 2차장이 8·2 선전포고 후속 조치로 “과연 민감한 군사정보 공유를 계속 유지하는 것이 맞는지를 포함해 종합적인 대응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발표함으로써 정부 입장으로 공식화됐다. 지소미아 폐기론은 정의당의 심상정 대표가 처음 제기했다. 그 당 소속 김종대 의원은 최근 라디오 방송에서 “지소미아로 대단한 정보가 오간 것이 없다. 우리 입장에선 맺을 이유가 없는데 미국이 압박해서 체결했다. 일본이 수혜국이고 미국이 최종 수혜국이다”라고 주장했다. 이런 논리가 집권 세력에 침투해 정부의 의사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듯하다.

진실은 반대쪽에 있다. 국회 국방위 소속인 하태경 의원(바른미래당)이 국방부로부터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과 일본이 지난 4년간 주고받은 군사 정보는 각각 24건씩 총 48건이라고 한다. 한국이 일본한테 얻은 정보는 지소미아가 체결된 해인 2016년 1건, 2017년 19건, 2018년 2건, 2019년 현재까지 2건이다. 2017년 일본의 정보 제공이 급증한 것은 북한의 핵 실험과 단·중·장거리 미사일 발사 도발이 수도 없이 발생해 한국이 최대의 안보 위기를 맞았기 때문이다. 2018년엔 평창 올림픽과 한국·북한·미국 사이의 평화 분위기 조성으로 정보 교환 수요가 떨어졌고 2019년은 북한의 도발이 재개되면서 긴밀한 정보 교환의 필요성이 다시 높아졌다.

정보의 품질은 어떤가. 김정은이 자랑한 7월 25일 발사 신형 단거리탄도미사일은 ‘하강 국면의 궤도 불규칙성’ 때문에 우리 군이 사거리를 두 번이나 수정해야 했는데 최종 확정치는 일본한테 얻은 지소미아 정보 덕분이었다고 정통한 군 관계 소식통이 전했다. 북한의 핵·미사일 동태를 파악하기 위해 일본이 갖고 있는 장비는 군사정보 위성 8개, 이지스 구축함 6척, 탐지거리 1000㎞에 이르는 지상 레이더 4기, 조기 경보기 17대, 해상 초계기 110여대 등으로 현재 한국의 국방력으론 대체가 불가능하다. 지소미아 파기 불사론자들은 북한 미사일의 ‘상승 국면의 초기 정보’는 우리가 일본에 비해 압도적으로 우위에 있어 일본이 입을 피해도 클 것이라고 주장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 점이야말로 상승 국면 정보 수집에 강점이 있는 한국과 하강 국면 정보 분석에 뛰어난 일본이 군사정보를 협력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지소미아를 한국이 파기하면 일본의 기술적 군사 정보가 차단되는 것은 물론 파기를 말리던 미국의 마음마저 떠나게 해 한·미 동맹은 껍데기만 남게 될 가능성이 있다. 무엇보다 국제사회에서 한국은 ‘1965년 한·일 국교정상화 협정’을 흔들고, ‘2015년 한·일 위안부 협정’ 일방 파기에 이어 세 번째 협정도 무효화한 신뢰하기 어려운 나라로 찍힐 수 있다. 그런 이미지는 정상국가로서 한국의 위상을 해친다. 혹자는 지소미아를 반드시 깨겠다는 게 아니라 한·일 경제전에 미국을 중재자로 뛰어들게 만드는 협상 카드로 사용할 만하지 않느냐는 반론을 펴기도 하는데 우리 생각대로 굴러가지 않을 경우 입을 타격이 너무 크다. 국가 안보를 걸고 왜 그런 도박을 하려 하나. 김현종 2차장은 자해 아닌 상생적 해법을 찾아보기 바란다.

전영기 중앙일보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