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깊이읽기] 대쪽 같은 선비들의 금쪽 같은 이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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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사림열전 1
이종범 지음, 아침이슬, 344쪽, 1만3000원

무게 있는 글은 쉬 읽히지 않고, 재미있는 책은 얻는 게 많지 않다. 일반적인 인식이지만 예외가 없으란 법이 없다. 16세기 선비들의 정치적. 학문적 행적과 사상을 살핀 이 책이 바로 그렇다.

'역사는 승패의 차원이 아니라 곧고 바른 의지로 평가되어야 한다'는 독특한 사론(史論)을 바탕으로 '계백론' '백제호걸론'을 쓴 최부 등 8명의 선비 이야기는 묵직하다. 기대승, 김인후 등 익숙한 이름도 있지만 박상, 유희춘, 정개정 등은 역사에서 지워진 선비들을 되살려냈다.

현재 조선대학교 박물관장을 맡고 있는 지은이가 실록 등 사서는 물론이고 문집, 서간, 행장까지 샅샅이 뒤져낸 공들인 연구가 눈길을 끈다. 꼼꼼한데다 시대적 배경은 물론 임금과 신하들이 토론하던 경연(經筵) 모습, 신하들간의 갈등 등을 생생하게 복원해 지식인이자 정치가였던 선비들의 삶은 물론 당대 지성사를 엿볼 수 있다.

그런데 술술 읽힌다. 유희춘 편에 을사위훈론(乙巳僞勳論)을 둘러싼 갈등이 그렇다. 외척 권신들의 공훈을 전면무효화하자는 신진사림, 희생자들의 명예와 재산을 돌려주는 선에서 그치자는 원로중신들이 줄다리기는 오늘날의 과거사 청산을 보는 듯하다.

반정(反正)으로 등극한 중종이 공신, 외척을 중용하자 "공신과 외척이라고 하여 능력도 없는데 관직을 내리면 폐조(廢朝)와 다를 바 없다"며 "벼슬로 인심을 진정시키고 복종시킬 수 없음은 분명하다"고 바른 소리를 한 박상은 어떤가. 역사는 되풀이된다지만 그대로 21세기 한국을 보는 듯해 재미도 있고 생각하게 하는 것도 적지 않다.

김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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